장승 벌타령 우리문화그림책 온고지신 2
김기정 지음, 이형진 그림 / 책읽는곰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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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일곱 살 조카들은 고향집 어귀에 있는 장승만 보면 슬금슬금 어른들 뒤로 숨곤 합니다. 퉁방울만 한 눈이며 주먹만 한 코며 삐죽삐죽한 이까지, 조카 눈에는 장승이 무슨 괴물처럼 보이나 봅니다. 제가 보기엔 울 아버지 얼굴 같기도 하고, 울 할아버지 얼굴 같기도 해서 정겹기만 한데 말입니다.

얼마 전 서점에 나갔다가 <장승 벌타령>을 보고 장승을 겁내는 조카들에게 이 책이 딱이겠구나 싶었습니다. (조카가 지방에 있는지라 웹서점에서 사 보내려고 책을 찾아 봤더니 설맞이 이벤트로 복주머니까지 준다더라고요. ^^) 변강쇠가 장승을 뽑아 땔감으로 썼다가 동티가 났다는 가루지기타령의 한 대목을 모티브로 해서 쓴 책이라는데, 그 한 대목으로 어쩜 이렇게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어 냈는지 서점에 서서 읽는 내내 감탄이 절로 났답니다.

이야기는 게으름뱅이 가로진이가 어머니 성화에 못 이겨 나무를 하러 갔다가 귀찮은 김에 장승을 뽑아오면서 시작돼요. 억울하기 짝이 없었던 장승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두 눈 부릅뜨고, 마을 사람 보살피고, 나쁜 귀신 물리치고, 몹쓸 병 막아 주고, 도적 놈 혼내 주고, 나그네 길 가르쳐 주고, 두루두루 좋은 일만 하였는데, 웬 날도적 같은 놈이 요리도 착한 나를 땔감으로 쓴다네. 아이고, 분하도다!” 하고 신세 한탄을 합니다. 그 소리를 듣고 팔도에서 모여 든 장승들이 가로진이 온몸에 병을 발라주고 가는 바람에 어미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 가지요. 아들을 낫게 하려고 백방으로 수소문 하던 어미는 우두머리 장승에게서 뽑아온 장승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장승제를 지내 주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 말대로 하니까 가로진이 병이 싹 나은 건 물론이고 덤으로 게으름병까지 나았다지요.

얼핏 보면 재미있는 옛이야기 같은데, 그 안에 장승에 대한 정보가 잘 녹아 있어서 더 좋아요. 사실 조카들에게 장승을 어떻게 설명해 줘야 할지 조금 난감했었거든요.

가로진이를 벌주려고 모여든 장승들이 저마다 자기 동네 사투리를 쓰는 것도 너무 재미있어요. 아이들이 원래 사투리 좋아하잖아요. 우리 조카들도 부모님 사투리나 지금 사는 곳 사투리를 따라 하면서 굉장히 재미있어 하거든요.

팔도 장승들이 잔뜩 화가 나서 가로진이네 집을 에워싸고 있는 장면은 조금 무섭기도 한데, 이 녀석을 어떻게 벌줄까 의논하는 장면에 이르면 피식 웃음이 나요. 하나가 “터럭 하나 안 남기도 다 뽑드래요.” 하면 다른 하나가 “아녀, 여우 꼬리털로 살살 간질러도 참 죽을 맛일겨.” 하고 신이 나서 떠드는 게 꼭 애들 같거든요.

조카들도 이 책을 보면서 장승을 친근하게 느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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