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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로또 - DNA가 사회적 평등에 중요한 이유
캐스린 페이지 하든 지음, 이동근 옮김 / 에코리브르 / 2023년 2월
평점 :
이전에 나는 서평을 통해 결정론의 오류에 대해 여러 차례 말해왔다. 그리고 지금도 같은 생각이다. 그렇다고 해서 환경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가령 중국의 전 농구선수 야오밍의 신장은 229cm이고, 신체 스펙 덕분에 그는 NBA에 진출하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수 있었다. 그리고 짐작건대 환경이 그의 신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번에 읽은 『유전자 로또』의 주제를 짧게 요약하자면, 유전의 영향을 인정하고 그에 따라 발생하는 사회적 격차를 제도적으로 메우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 메시지에 대한 핵심 전제를 하나 증명하는데, 바로 ‘유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다양한 영역에서 차이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여러 영역 가운데 행동유전학을 연구하는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소득(또는 사회적) 격차다. 이는 대개 환경 요인이 영향을 미친 영역으로 간주되어 왔지만, 저자는 유전적 차이가 결코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특히 인지 능력, 그중에서도 수학 실력이 격차 발생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저자도 인정하듯, 이 주장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유전적 차이에 따른 격차를 인정한다면 그에 따른 결과 또한 인정받을 수밖에 없을 거란 두려움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잘 아는 그것, 바로 우생학 이데올로기가 그토록 바라던 세상이다. 많은 이들이 선천적인 부분에 대해 관대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유전적 차이에 따른 소득 격차 또한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을는지.
그렇다고 존재하는 사실을 외면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오늘날 부의 격차는 과학을 인정하지 않아서 일정 부분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가령 선천적으로 시력이 나쁜 이들에게는 안경이라는 도구를 통해 격차를 보정하며, 대부분 사람들은 이를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인지 능력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의 개입이 이루어져야 실질적인 격차 해소가 가능할 터. 책의 요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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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자가 펼치는 논지에 전반적으로 공감하며 책을 읽었다. 특히 인지 능력의 선천적 성격을 학창 시절 내내 실감하면서도 내 형편없는 성적에 대한 변명처럼 들릴까 봐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웠는데, 사실 이게 다 변명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분이 좋아진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읽는 내내 따라다닌 의문을 해소하기는 어려웠다. 이러한 접근이 부활한 우생학의 망령을 막아낼 수 있을까? 아, 이에 대해 말하기 전에 먼저 발생 가능한 오해부터 풀어야겠다. 저자가 근거로 제시한 과학적 디테일이 우생학의 그것과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여러 사례 가운데 인지 능력의 대물림 가능성을 들 수 있겠다. 사람들은 대개 부모의 인지 능력이 높다면 자녀 또한 높아진다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단호하게 부인한다. 기존의 선입견대로라면 형제의 격차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게다가 전설적인 축구 선수였던 지네딘 지단의 첫째 아들인 엔조 지단의 경우, 프로 축구 선수로서 아버지의 명성을 전혀 이어가지 못했으며,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도 역시나 아버지와 달리 머리숱이 매우 풍성하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가 물려받은 유전자는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을 수 있는 70조 가지 유전자 조합 가운데 하나다. 심지어 생식자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유전적 변화, 즉 돌연변이는 감안하지 않은 수치다. 즉, 현대사회에서 주목받는 인지 능력은 책의 제목 그대로 ‘유전자 로또’인 셈이다. 저자가 안경을 씌우듯 인지 격차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우연히 발생한 유전적 차이가 격차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논리에 기반한다(격하게 동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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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우생학의 일차적 기반(좋은 부모-좋은 자녀)을 허물었음에도 덮기 어려웠던 의문은 이런 것이다. 유전자 정보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특히 이 책이 출간된 2021년(원서 기준)과 달리, 세계는 극우의 파도에 휩쓸리는 중이고 다 죽은 줄 알았던 우생학까지 활개치고 있다(자신의 우월한 유전자를 널리 퍼뜨려야 한다고 공공연히 떠들어대는 일론 머스크가 있다). 이들은 유전 정보에 새겨진 인지 격차를 보완하려 들까? 반대로 우월한 인지 능력을 가진 이들을 줄 세우려 들지는 않을까? 내가 아는 우생학은 극단적으로 후자를 선호해왔다. 저자의 바람과 달리 ‘우생학의 지옥’이 펼쳐질 것이라는 우려를 떨칠 수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저자의 논의를 무시하기 어려운 것은, 빤히 존재하는 사실을 외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격차를 해소하자는 저자의 주장은, 유전의 영향과 유전 변화의 가능성까지 함께 인정하는 것이기에 더 주목받을 필요가 있다. 유전자 결정론을 극복하려는 과학적 시도이자 정치적 시도이기 때문이다.
인지 능력의 유전 가능성을 인정하는 책은 읽는 거라, 이 주장이 얼마나 믿을 만한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더 많은 책을 읽어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책의 의미가 가볍지 않다고 생각한 것은, 사회 격차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 논의가 한국 사회에서도 공론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더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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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1. 유전자 편집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길게 이야기하지만, 분량상의 문제로 건너뛰기로 함.
덧2. 편집과 관련해 한 마디 더. 고도의 인지 능력은 특히 현대 사회에서 최고선처럼 여겨지지만, 그만큼 정신 질환의 위험 또한 덩달아 높아진다고 함. 설령 편집이 가능해진다고 해도 저자는 꿈도 꾸지 말라고 당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