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내게 오시네
아룬다티 로이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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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극적인 일이 일어날 때마다 “소설 같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얼마 전부터 이런 말이 현실의 놀라움을 썩 잘 담아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는 옛말처럼, 인간의 상상은 결국 현실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그에 반해 현실은 인간의 상식을 자주, 가볍게 뛰어넘는다. 자연을 남보다 깊게 이해하는 과학자들조차 “우리는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다”고 말하고 있듯이. 인도의 소설가이자 활동가인 아룬다티 로이의 자전적 에세이 『어머니 내게 오시네』는 불가해한 현실을 담은 책이었다. 근 몇 년 사이에 읽었던 어떤 소설도 이 에세이보다 강렬하지는 않았다.


책의 제목 속 그 ‘어머니’ 메리 로이는 인도의 전설적인 교육자였다. 영국 선교사가 세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그는 이후 학교를 설립해 남녀 모두에게 평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했고, 인도 전역에 이름을 알린 학교로 성장시켰다. 그는 또한 전설적인 페미니스트이기도 했다. 인도의 트라반코르 기독교 상속법에 이의를 제기했고, 지난 1986년 승소하면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상속권을 인정받게 된다. 그가 없었더라면, 뿌리 깊은 인도의 가부장제는 오늘날 더욱 힘이 셌을 것이다.


위대한 인권운동가였던 그는, 그러나 좋은 엄마는 아니었다. 아니,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는 엄마였다. 딸에게 평생 “개 같은 년” “널 고아원에 버렸어야 했어” 같은 폭언을 쏟아내던 이에게는 ‘엄마’라는 말조차 과분해 보일 지경이다. 폭언의 뒤쪽에 한 톨의 애정이라도 감춰두었다면 그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달라졌겠지만, 부모라면 자녀에게 느낄 법한 애정이 이 책에는 단 한 톨도 담겨 있지 않았다.  


고아원에 버리고 싶었던 딸에게 아들과 동등한 교육을 제공하고, 기어코 건축대학에 입학시키면서 이 아이러니는 절정을 맞는다. 메리 여사의 이런 행보는 오늘날 입시로 인한 부모의 등쌀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 오로지 여성도 남성과 같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그 일념 때문이었다. 70~80년대 인도에서 여성이 이런 신념을 가진다는 것은 책에도 쓰여 있듯 쉽지 않은 일이었다. 폭력에 가둬둔 존재에게 사람다운 삶을 안겨주는 마음은 대체 어떤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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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여기에서 멈췄더라도 충분히 강렬했겠지만, 이야기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평생 엄마의 욕받이로 살아왔던 아룬다티 로이는 건축대학에 입학한 후에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고, 후에 인권운동가가 되어 인도의 모순과 싸워간다. 첫 소설 『작은 것들의 신』으로 부커상을 수상하며 받았던 찬사는 훗날 매국노라는 비난으로 돌변하고, 끊임없는 추방과 투옥, 살해 위협에 시달리지만 인도 사회의 병폐를 들춰내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작가는 어머니는 딸의 전부였다고 고백한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어머니의 그 딸이라는 말이 함께 떠오르는 기묘한 순간이었다.


내 상식으로 폭력은 필연적으로 폭력을 낳아야만 했다. 선한 사람이 훗날 폭력을 휘두르는 일은 자주 보아왔어도, 폭력과 선함이 한 인간에게 동시에 공존하는 건 상상도 못 했다. 그러나 이 공존은 누가 뭐라고 해도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이었고, 그래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소설 같다”는 수식을 초라하게 만든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나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어머니 내게 오시네』가 전한 강렬함은 이 책에 담긴 불가해한 모든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어쩌면 이 에세이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진짜 모습이라고. 인간이 쌓아 올린 모든 지성을 동원해도 납득할 수 없는 현실. 이런 현실 속에서 신념을 강요하는 일은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그러니까 『어머니 내게 오시네』는 상상에나 있을 법한 아이러니를 현실 속 실재로 빚어내는 텍스트였다. 위대한 인권운동가 어머니와 소설가 딸이 함께 만든 이야기는 이렇듯, 세계의 본질, 그리고 겸손함을 알려주었다.





덧. 실패하면 장난감을 주겠다던 작가의 외삼촌 G. 아이작은, 이야기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음에도 이야기를 빛내는 인물이었다. 존재 자체로 위안을 주는 사람을 얼마 만에 만나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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