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역사 - 위대한 사건은 어떻게 불멸의 이야기가 되는가
심용환 지음 / 민음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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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란 무엇인가? 심용환 작가의 『신화의 역사』를 읽기 전에 이 질문을 받았다면 “인류의 진보와 추악함을 보여주는 우화” 정도로 답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신화를 전혀 몰랐다는 말이다. 그런데 학계라고 신화에 대한 이해가 대단히 깊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가령 많은 학자들이 그리스 신화 속 우라노스와 크로노스의 갈등에서 “성욕의 대상은 어머니이고 아들의 아버지 살해는 필연적이라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정도로 해석했지만, “오늘날 그리스 신들에 대한 해석은 지나치게 심리학적이며 그만큼 단편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p.65). 그간 인간 심리의 이면(aka. 막장 심리) 외에 딱히 다른 걸 읽지는 못했다는 이야기다.


『신화의 역사』를 통해 저자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출발해 게르만,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인도와 중국의 신화를 가로지른다. 이 여정의 끝자락에서, 독자로서 나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신화는 지식이자 역사, 이데올로기, 종교를 한데 담은, 당시 인간 지성 활동의 결정체였다는 것. 동시에 부족의 규모를 넘어선 대규모 집단이 신화를 통해 하나의 정체성을 공유했다는 것. 다시 말해 고대인들이 역사적 사실을 메타포의 형태로 전하면서 그리스는 물론, 게르만, 메소포타미아 등에서 하나의 정체성으로 엮이는 집단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신화가 우화였다면 이런 일을 해낼 순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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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단지 신화만 오해한 것이 아니다. 나는 신화에 대한 오해와 함께 현대인들이 삶의 중대한 무언가를 놓쳤다고 생각한다. 가령 이런 것이다. “신화는 인간 문화에서의 단지 일시적이 아니라 영속적인 요소이다. 인간은 전면적으로 이성적 동물인 것은 아니다. 인간은 신화적 동물이며 또한 그렇게 존속한다. 신화는 인간 본성의 본질적인 부분이다.”(p.364) 나는 본성이란 말을 쓰고 싶지 않지만, 저자가 재인용한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카시러의 주장만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역사는 어떻게 진보하고 왜 퇴보하는가』의 저자 파리드 자카리아는 오늘날 극우의 기원을 “이념적 대의가 없는 사람이 물질적 필요와 욕구를 추구하며 공허하고 외롭고 우울한 하루하루” 속으로 “포퓰리즘, 민족주의, 권위주의가 파고” 든 결과라고 말한다. 카시러와 자카리아의 주장을 한데 모아보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자신의 한계를 뚜렷하게 인지하고 신화에 의지하던 과거인들과 달리, 풍요와 무한한 가능성에 취한 현대인들은 가치를 상실한 채 위기를 맞았다는 것.


리처드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을 쓰면서 완벽한 논증만으로 신(신성, 또는 신앙)을 없앨 수 있을 줄 알았겠지만, 어림없는 소리. 도킨스의 논증은 굳이 신학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반박 가능한데, 가령 신경과학의 ‘예측 처리’ 이론만 보아도 그렇다. 저 먼 곳에서는 사람 같아 보였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허수아비였던 경험이 있다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뇌과학자들은 우리 뇌가 열량을 워낙 많이 먹어치우다 보니, 조금이라도 에너지를 줄이려다 보니 발생하는 현상으로 설명한다. 바꿔 말하면 인간은 필연적으로 세계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함께 모여 서로의 공백을 메우는 과학계조차 이론을 수시로 수정하는 마당에, 무엇의 존재 또는 부재를 무슨 수로 완벽하게 증명할 수 있다는 걸까.


나는 이 한계가 바로 신앙의 자리라고 생각한다. 아주 먼 과거의 신화, 가까운 과거와 오늘날의 종교가 자리를 잡은 곳. 『집단 망상』의 저자 조 피에르는 “사회에서 종교적 신앙이 쇠퇴하면 세속적 이념이 점점 더 일종의 종교적 열정 같은 걸로 대체된다”는 정치학자 샤디 하미드의 주장을 인용하며 “우리는 ‘모든 깊은 신념은 승화된 종교’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 또한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러므로 『신화의 역사』를 덮은 후에 내린 결론은 이런 것이다. 신화를 우화 취급하던 우리가 어리석었다. 과거 사람들이 신화를 통해 가치를 찾았고 그 험한 세계를 최선을 다해 살아냈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가치를 줄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는 것. 비극을 낳지 않는 새로운 신념, 이런 것들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 과거의 신화, 또는 종교를 복원하자는 게 아니다. 『집단 망상』의 인용에서 보았듯, 그것은 신념으로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으니까. 조무래기 책스타그래머가 떠든다고 될 일은 아니므로, 『신화의 역사』 일독을 강력하게 권해야겠다. 서평으로 백날 떠들어봐야 직접 읽는 책 한 권을 따라갈 수 있을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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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풍문에 따르면 영화 <오디세이>의 오디세우스는 원전의 그 인물과 달리, 현대적인 성찰을 그리는 캐릭터인 모양. 나 혼자 넘겨짚어보면, 크리스토퍼 놀란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새로운 신념을 공유하고 싶었던 게 아닐지. 이 짐작이 들어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영화를 꼭 봐야겠다고 결심함.


덧 2. 생각난 김에 사놓은 지 10년이 넘은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도 조만간 읽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어봄. 그렇게 마음먹고 읽지 못한 책이 500권이라는 게 문제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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