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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삼국지 - 군웅할거에서 통일전쟁까지 184~280
최진열 지음 / 미지북스 / 2022년 4월
평점 :
『삼국지연의』(이하 『삼국지』)는 아마도 재독을 제일 많이 한 책일 거다. 고등학교 1~2학년 두 해 동안 7~8번을 읽었고 스무 살을 넘긴 후에도 적어도 2~3번은 읽었을 텐데, 이만큼 읽고 보니 조운이 조조의 강남 정벌
때 유비의 아들인 아두(유선의 아명)를 품에 안고 적진을
누비다 우연히 얻은 청명검으로 목을 벤 적장이 하후은이었다는 디테일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고 편의점에서 신분증을 내어놓을 필요가 없을 때에도 『삼국지』는 내 기억 한 구석에
펼쳐놓은 자리를 뺄 기색이 없었다. 다만, 이때의 삼국지는
스펙터클보다는 미스터리에 가까웠는데, 이문열이 남긴 수많은 평론조차 놓친 팩트가 무수히 많다는 걸 알아차린
탓이다. 그렇다고 2800페이지가 넘는 『정사 삼국지』를
읽을 여력은 없어서 보낸 세월이 수십 년. 오랫동안 자외선과 비바람을 번갈아 맞은 탓에 닳을 대로 닳아
버린 삼국지 미스터리를 다시 파헤친 것은 『역사 삼국지』라는 책 덕분이었다. 전자책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한 나는 갑자기 그 시절의 열정이 솟아오르는 걸 느꼈고, 그 순간 대여해 다음 날 아침이 오거나
말거나 책을 새벽까지 읽었다. 그렇게 나는 ‘삼국지’의 세계로 다시 한번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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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제일 큰 수확은 ‘팩트체크’가 체계적으로 가능했다는 점이다. 그 어떤 기록에서도 찾을 수 없는
도원결의부터 시작해 조조의 여백사 살해, 동탁과 여포 사이를 이간질한 세기의 미녀 초선의 존재,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정말 좋아했던 전위와
허저의 낮은 존재감,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의 대활약 등등. 이
책에 정리된 ‘팩트 체크’를 일일이 정리하려면 끝이 없을
테니 여기에서 멈춘다. 1천 페이지 넘는 벽돌책을 읽는 내내,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꼈다. 『삼국지』만 읽어도 다른 오락이 필요 없던 그 시절 말이다.
이것만 해도 충분히 의미 있는 독서 경험이었는데, 책은
여기에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이 책은 『삼국지』가 비틀어놓은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것 이상의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역사를 처음 배울 때부터 시작해 지겨워하는 것조차 지겨워진 그 말,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었다.
이 책을 읽을 때만 해도 나는 『정사 삼국지』만으로 모든 ‘소설’을 바로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그렇지 않았다는 게 반전이었달까.
저자에 따르면 “진수의 『(정사) 삼국지』는 사실을 그대로 기록한 책이 아니어서 논문을 쓰기에 적합한 사료가 아니었다”는 것이다(p.9). 실제로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송나라 때
역사가인 배송지의 주석과 『후한서』, 『자치통감』 등을 번갈아 확인해야만 했다고 한다. 이상했다. ‘정사(正史)’라는 말을 내가 잘못 이해한 걸까? 미스터리 하나를 풀었더니 더
큰 미스터리가 날 기다리던 셈이다.
의문은 『정사 삼국지』 편찬 배경과 함께 스르륵 풀렸다. 정사를
집필한 진수의 목표는 서진(西晉)의 정통성 확보였고, 서진의 전신이었던 위, 촉, 오
가운데 위나라만을 정통으로 인정했으며, 정통성 확보에 방해되는 사실은 제외하고 띄울 만한 일은 만들어서
끼워넣었는데, 특히 사마의에 관한 서술이 그랬다. 이문열은
사마의의 수비를 뚫지 못한 제갈량을 두고 “지략이 부족했다”고
평가한 진수(『정사 삼국지』의 저자)의 서술을 그대로 인용하지만, 정작 다섯 차례 북벌 중 3차까지 제갈량과 대적한 것은 (소설에선 한끗 모자라 보이던) 조진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4~5차 북벌에서 사마의의 전적도 초라하기 짝이 없더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마의는 서진의 시조 격으로 『정사 삼국지』의 주인공이 되어야 했고, 그렇게 제갈량 필생의 라이벌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정리해보면 『정사 삼국지』는 사실을 충실히 기록했다기보다는 정통성을 국가로부터 공인받았다는
의미에서 정사(正史)로 불리는 게 타당해 보인다. 아주 조금 과장을 더해보면 정부가 홍보를 위해 운영하는 KTV 채널에
업로드된 영상 수준의 기록물이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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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가 『정사 삼국지』를 쓰던 시절이나, 그로부터
2000년이 지나 내가 책스타그램에 올릴 서평을 쓰는 지금까지 역사에 대한 논쟁은 끊이질 않는 걸 보니, 이거 하나는 정말 잘 알겠다. 어떤 이들은 ‘정확한 팩트 복원’을 역사학의 유일한 목표인 것처럼 떠들지만, 결국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었다는 것이다. 그 ‘팩트 신도’들조차 자신의 논거를 강화하기 위해 팩트를 선택적으로 꺼내들거나
인과를 곡예 수준으로 끼워 맞추는 이유도 이것 때문일 거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고 말했던 E.H.카 선생의 통찰력은 지금에 와서 보면 눈이 부셔서
쳐다보기 어려울 만큼 밝게 빛나는 것 같다.
그리고 하나 더. 나를 포함한 『삼국지』의 독자들에게
그 시기는 ‘영웅의 시대’였을 터. 하지만 『역사 삼국지』를 읽으면서 깨달은 진실은 중국의 역사에서 흔하디흔했던 분열과 전란의 시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거다. 별다른 문화적 성취를 찾아보기도 어려운데, 서진의
건국을 주도한 사마 씨 왕조의 정통성과 비전 부재, 여기에 무능까지 더해지면서 빠져 버린 수렁의 시간이었달까. 다시 말해 이 시대는 권력 투쟁의 장이었으며 영웅으로 칭송받던 이들은 그저 그런 기회주의자였을뿐. 그 시기에 감소한 인구만 헤아려 봐도 그 시대를 도저히 곱게 봐줄 수가 없다.
이런 시대를 붙들고 현자 놀이를 할 일은 (이전에도
없었지만)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다른 삼국지 마니아들도
꼭 생각해보셔야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