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과 민족의 동일시가 이루어지는 순간 이것은 공통된 조상을 갖고 공통된 과거를 공유했고 그리고 공통된 미래를 가질 것이라는 민족정서의 연대성에 연결된다.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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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속적 근대화 노선의 추종자와 군사쿠데타 지지의 관계성에 대해
ㅡ발전과 국력 강화가 민주주의보다 우선한다는 생각 국가 우선주의 등을 갖고 있다면 의외일 것도 없고 당시 그 어느 나라도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냉전시대였으므로 그런 판단이 크게 그를것도 없다
지금의 기준으로 당시를 판단하지 말것
그래서 함석헌이 더 대단해보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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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내 이전투구는 없었는가? 모두 장면 정부를 불신하며 쿠데타의 정당성을 또는 필요성을 고대하던 상황이었다면 쿠데타를 계획하던 이들은 박정희 일당밖에 없었나?

하는 의문과

미국이 쿠데타를 사실상 승인했건 지원했건 묵인했건 장면이나 윤보선이 이를 저지하려 했던 움직임이 없었던 한 미국책임론을 묻는건 나중 일이다. 미국이 남미에서처럼 장면 정부를 무너뜨리고 억지로 군부를 꽂은게 아닌 이상 일차적 책임은 우리나라에 있다. 미국을 왜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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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은 그를 그들의 정치적 대변자로 삼고자했으며, 미국은 그를 필요할 때 언제든 극단적인 이승만을 대처할 수 있는 반공세력 내의 온건파 대표자로 활용코자 했다. 그들로 인한 장면은어쩌면 그와 기질적으로 맞지 않는 정치에 초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정치인으로서의 그의 삶은 그 세계의 주인이라기보다는 영원한손님으로서 지내다가 종내에는 군사쿠데타로 바같으로 나앉는 운명에처하게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 여기에 그의 비극이 있었고 한국 정치의 비극도 있었다.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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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정권의 무능
ㅡ정치권 군 기업의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에 눈감은 것은 물론 동조자였고,
ㅡ미국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함으로써 국가의 자주성을 잃었고
ㅡ내부의 이권다툼으로 사분오열, 장면 본인도 이를 전혀 통제하지 못하였으며
ㅡ자유를 외친 주제에 반공법과 데모규제법 등을 제정, 장면이 주장한 자유의 보장이 자유주의 절대 신봉이라는 철학이라기보다는 그냥 우유부단함 또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철학 및 개념의 부재라는 의혹을 일게 하고
ㅡ통일 또는 대북 정책의 부재

이 모든 것들이 이후 들어선 군사정권의 과장 및 각색이라 하더라도

왜 당시 진보 및 민주 인사들이 쿠데타를 혁신세력으로 오인하거나 환영했는지 이해하게 해 주거니와

솔직히 저 혼란스럽고 답없는 상황을 개선하려면 어떤 조치 또는 어떤 인물이 있어야했을까 존나 까깝한데

어쨌든 저 미친 시기와 이후 군부독재를 겪고도 이 정도 수준의 민주화와 경제 발전을 이룬 우리나라가 새삼 대단하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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