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는 박정희 시대의 정치는 제도가 아닌 "박정희라는 한 통치권자의 인간성에 의해 좌우" 되었다고 주장한다. 박정희의 개인적인 성격이국가적인 수준으로 확대 재생산되었다는 것이다.
"눈부신 실적 뒤에는 추악한 모습이 도사리고 있었다. 한없는 욕구와성취욕만 키워 놓았지, 거기에 이르는 수단과 방법의 합리성 내지는 도 덕성에 대해서는 불문에 부쳤다. 5·16 자체가 윤리성을 배제한 변칙이었다."
p.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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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헌장은 권력 기회주의 방식으로 활동하던 박정희 개인에게 교육의 구심점으로서 중후한 권위를 부여했다. 헌장 선포자로서 박정희는 더 이상 정치나 경제에서 성공한 권력자가 아니라국민교육의 지도자로서 정신적으로 내면화한 이미지를 요구할 수 있게되었다. 이런 점들을 배경으로 놓고 볼 때, 역사적으로 헌장의 제정과현은 명백히 유신쿠데타의 정신적 전주곡이었다.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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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잘 것 없는 내게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이 있다 이 말이지? 하찮은내가 인류 공영에 이바지한다 이 말이지? 이게 바로 집단주의의 마력이었다. 집단의 일원이라고 하는 소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때에 그집단의 영광을 나의 영광으로 돌리는 멘탈리티는 이후 수십 년 간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스포츠 민족주의‘ 를 통해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게된다.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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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협정 문제에 이어 이번에도 거의 실현 불가능한 ‘선거 재실시‘ 를 요구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었다.
이는 한일회담 절대반대‘ 주장과 궤를 같이 한 것이다. 이러한 야당의불행한 체질이 이번에도 일을 그르치게 했던 것이다. 강경론과 극한투쟁이란 공허한 명분주의로 야당이 국민으로부터 멀어지고, 독재정권을 돕는 결과를 몇 번이나 초래했는지 모른다.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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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자립적인 계획은 거부되어야 하며 세계 자본주의체제 속에 철저하게 편입될 수 있는 경제체제를 지향해야 한다. 5. 이를 위해 외자의 적극적인 도입, 수출주도형 발전, 불균형 성장론 등이 경제개발 계획에 도입되어야 한다 등으로 정리하였다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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