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참전 용사들이 벌어들인 달러는 그들의 부모 형제가 사는 한국사회의 농촌 구석구석까지 전해졌다. 한국인들이 그야말로 고루고루 달러의 맛‘ 을 본 시기가 그때이다. 그것을 대가로 한국인들은 폭력에 대한무감각,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는 소수가 희생되어도 된다는 윤리적 감각의 황폐화, 말하자면 ‘성장의 열매‘ 와 폭력이 공존하는 현실에 적응하는법을 배웠다.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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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지철은 박정희를 속세를 떠난 교주로 받들면서 속세의 세계에선 자신이 박정희 역할을 대신하고자 하였다.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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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인 김대중은 1974년 4월 자신의 집을 방문한 미국 하버드대학의 교수 제름 크엔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남북 쌍방의 정권이 대화를 간판으로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은 지금, 대화에 진전은 없을 것이다. …한국의 박 정권은 통일을 간판으로 정권 강화를 시도하고, 북의 김일성 정권은 통일을 간판으로 국제사회에서 남과 대등한 지위를 획득한 지금에 와서는 이 이상 대화를 진전시킬 필요가 없게 되었다.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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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속성 중에 이처럼 사악한 면이 있는데 어떻게 역사의 발전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어떻게 민주화가 가능하다는 말인가.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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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기는 "박종홍 철학은 본질적으로 권력기회주의적 속성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박정희 체제의 사상적 허약함에 교육을 통한 제2근대화라는 사상적 발상을 제공했다" 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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