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된 아프가니스탄인, 혹은 고국을 위해 싸우기를 거부하고 유럽이나 인도, 미국에서 스스로 택한 안락한 망명 생활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 서구화된 아프가니스탄인, 소련과 아프가니스탄 공산 정권을 위해 일한 전문기술자나 관료, 파키스탄이나 인도 난민촌으로 피신해 총살을 모면한 부족 지도자, 로마에 근거를 마련한 축출된 아프가니스탄 왕과 측근들, 총 한 발 쏘아 보지 않은 구찌 양복 차림의 ‘야전지휘관들‘, 심지어는 막 패배한 공산 정권의 우두머리 도살자 나지불라 등이 그런 사람들이었다. 늘 그랬듯이 서방 외교관들은 10년 간 초강대국과 싸워 이긴 것외에는 내세울 것도 없으면서 우스꽝스런 파자마 같은 옷차림에 턱수염을 기르고 있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말쑥이 차려입고 영어나 불어를 대충 말하며, 종교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반감을 나타내는 세련된 사람들을 선호했다. 늘 내실보다는 겉모습이 우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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