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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평점 :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를 읽다.
20대 후반 그리고 30대 초반의 비혼 여성 이야기는 몇 년전부터 꾸준히 인기를 끌면서 이제는 거의 흥행보증 수표가 되어 버렸다. 시트콤의 고전 '섹스 & 더 시티'를 시작으로 '브리짓 존스의 일기'. '싱글즈'.'걸혼하고 싶은 여자','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여우야 뭐하니'까지.
결혼적령기를 이미 지났으나 여전히 결혼이 멀고 두렵게, 또는 어렵게 느껴지는 이들의 이야기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점점 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의 고민은 결혼에 집중되어 있는 것 같아 보이나, 사실은 꿈과 현실 사이에서 아직 방향을 정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여자의 신분(?!)으로 4년제 대학을 나와, 자기 한 몸 먹여살리기엔 나름대로 충분한 직장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이 서른해를 살아오면서 어떤 꿈을 키워 왔으리라는 점은 당연하다. 그것이 멋진 영화 한 편을 찍겠다거나 소설가로 이름을 날리겠다는 식의 다분히 비사회적이고 낭만적인 꿈이건, 또는 성공가도를 달리는 커리어 우면이 되겠다는 현실적이고 속물적인 꿈이든 간에, 어쨌거나 4년제 대학에 진학할 때, 집에서 살림이나 하면서 그냥저냥 살겠노라 다짐한 여성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물이 어느 정도 들면서 어떤 꿈도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성공한 커리어 우먼은 커녕 오늘 당장 자리지키기에 급급하고, 낭만적인 꿈을 쫓자니 배곪는 것도 싫고 그만한 열정이나 천재성도 없다. 그리하여 아직 풋풋하고 꿈을 쫓고 있는 연하의 남자친구 윤태오는 사랑스럽고 가슴을 설레게 하지만 대신 막막하고 불안하며 때론 한심하기까지 한 미래이다.
그 어떤 꿈도 현실화시키기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이 비혼 여성들은 '전업주부'로 도피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아등바등 직장생활하는 것도 지치고, 이제와서 딱히 다른 꿈을 꾸어보겠다는 열정도 없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생활이, 내가 꾸던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사람은 한없이 피곤함을 느낀다. 그래서 현실에 안주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전업주부-결혼이란 현실 역시 만만한 것은 아니다. 결혼과정부터 답이 보이지 않는 갈등을 겪고, 심하게는 첫번째 결혼기념일을 맞기도 전에 이혼서류를 작성하게 된다. 또는 참고 산다해도, 자식들이 모두 자라 새 가정을 얻을 30년을 살을 섞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에게 등을 돌리고 다른 삶을 꿈꾸게 된다. 주인공 오은수의 친구 재인처럼, 또는 은수의 어머니처럼. 따라서 설레임은 없지만 옆에 있으면 편안하고, 내 사정을 꼬치꼬치 캐묻지 않으면서도 내 갑작스런 결정들을 말없이 지켜보면서 힘이 되어주는 남편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다. 오은수가 결혼하기로 결심했던, 평범의 결정체같은 남자 김영수가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던 것처럼.
꿈을 쫓는다는 모험을 하기에는 꿈도 용기도 없고, 평범한 삶도 결국은 허상이란 것을 깨달은 뒤 은수가 가야할 길은, 그냥 삶을 생활 자체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물론 그것은 정답도 아니고 은수 자신은 물론 독자들을 만족시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산다는 것의 정체일게다. 정답도 아니고 만족스럽지도 않다. 아무리 두 팔 벌려 사랑하려 해도. 우리를 계속 속이고 배신하는 것이 삶이고, 노여움을 잊고 다시 한 번 지치지도 않고 삶에 구애하는 것, 그게 우리다.
소설은 결혼적령기를 넘긴 비혼 여성들의 불안함을 전형적으로 그려낸다. 소재와 주제가 전형적인 것 만큼이나 전형적인 등장인물들과 전형적인 사건들, 심지어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려 한 듯한 오은수의 독백마저 전형적이다. 이제 비혼 여성들의 결혼에 대한 갈등은 넘칠 정도로 이야기됐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될 때가 됐다는 깨달음을 주는 것이 이 소설의 역할인 듯 하다.
결론을 말하자면, 빨리 읽히되 새롭지 않고, 나름대로 재미있되 생각할 거리를 주진 않는다. 정이현은 뭐가 잘 팔리는지 만큼은 확실하게 알고 있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