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박민규의 첫 소설집 "카스테라"를 읽다.

2003년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한겨레 문학상을, "지구영웅전설"로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한 "기대받는 유망주" 박민규의 첫 단편집에는 표제작 "카스테라"를 포함하여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갑을고시원 체류기"등 박민규의 재치발랄한 유머와 기발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10편의 단편들이 실려있다.

박민규의 소설은 기존 소설과 몇 가지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먼저, 10편의 소설은 전부 "나"라는 화자가 이야기하는 1인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몇개의 문장마다 단락이 구분되어지며, 때로는 문장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단락이 구분되거나 행이 바뀐다. 이야기 자체도 짜임새 있는 줄거리를 가진다기 보다는 화자의 생각이나 느낌, 근래 있었던 일상을 읊조리는 편이며, 등장인물은 입체적인 캐릭터를 보여준다기 보다는, 말 그대로 화자의 주변인물로 화자와의 접촉을 통해서만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소설 한 편을 읽는다기보다는 재미있는 블로그를 읽어내려가는 느낌을 주며(엔터키의 사용은 이야기의 분위기를 바꿀때는 물론, 읽는 이에게 감정의 호흡을 조절할 필요가 있을 때 등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통신체이다.) 따라서 박민규의 소설은 인터넷에 익숙한 요즘 독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며 화자의 이야기에 좀 더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게 한다. 사실 이런 식의 글쓰기는 하루키 이후 낯선 것은 아니지만, 박민규의 경우 엔터키를 사용한 통신체로 이러한 글쓰기를 좀 더 발전시켰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박민규의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형식적인 것보다는 그 내용에 있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보여줬던 일류가 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은 이 소설집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박민규는 이 무한경쟁 사회에서 패배한 자들에 대한 연민을 쏟아낸다.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즐거움을 등지고 험한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사회 초년생에게도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최저임금제에도 못 미치는 시간당 페이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간신히 넘기는 알바생에게도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처음 본 타인에게 갑자기 헤드락을 걸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하고 비겁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당한 폭력을 똑같이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행하는 한 월급쟁이에게도(헤드락), 자신의 신체를 억압하면서까지 한치 발뻗을 공간을 지켜내야만 했던 고학생에게도(갑을고시원 체류기), 박민규의 시선은 따뜻하기 그지없다. 그것은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고 약속한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사기극에 휘말려버린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며 애정이다. 내가 못나서 이것밖에 못산다고 한탄하는 자에게도, 이 개같은 사회가 문제라고 악을 쓰는 자에게도, 박민규는 당신들이 잘못돼서 그런게 아니라고, 당신들이 나쁘거나 못난게 아니라고 감싸안아준다. 현 사회구조속에서 우리는 아무리 애를 써도 패배할 수 밖에 없게 되어 있고, 당장의 생계를 위해서 꿈을 그리고 진정한 즐거움과 신념을 포기할 수 밖에 없게 되어 있다고. 이것이 우리가 갇혀버린 세계이며 우리가 넘어야 할 세계인 것이다.

성공하기 위한 8가지 습관을 몸에 익히고, 아침형 인간이 되라고 강요받는 현대인들에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무한경쟁의 사회에서 언제나 패배하는 사람들에게 박민규의 위로는 한없이 고맙다. 어린 시절 꿈꾸었던 대왕오징어에 대한 로망을 잊고 죄없는 상대방에게 헤드락을 걸어대며 살기위해 발버둥쳤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일당 얼마 하루 밥값 얼마 등 가난한 산수밖에 못하다가 결국 오리배를 타고 좁고 낡은 갑을고시원에 돌아온 소시민들을, 박민규는 카스테라를 음미하듯 따뜻한 입속에 품어준다. 소설속에서처럼 뒤를 돌아보며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단지 그뿐이라는 점에서, 그 지점에서 멈추고 더 이상은 나기지 못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박민규의 미덕이자 한계라고 할 수 있다.

박민규가 등단한 것이 겨우 2003년이니, 앞으로 그의 한 발 더 나아간 모습을 기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