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부터 눈이 계속 내린다, 나름의 강약을 조절하며. 쁘띠꼬숑의 짐들이 없어지니, 집이 엄청 휑하다. 같이 먹던 밥을 혼자 먹으려니, 이틀 전부터 체기가 돌아서, 어제는 타던 버스에서 내려 만약의 사태를 진정시키느라 숨을 고르고 몇 분간을 앉아 있어야 했다. 아무렇게나 주워입고 나온 옷 덕택에 추워서 며칠 간 움추렸더니, 갈비뼈 부분도 아프다. 기말고사를 앞둔 가니도 원인 알 수 없는 몸살이 나서 기운이 영 없는 목소리라 신경 쓰이고. 달뚜 물 달라고 낑낑되는 소리에 일어나는 것도 벅차다는데, 당연지사 달뚜도 조금 골골거리게 될 듯 싶다. 그렇대도 도대체 난 뭐를 할 수 있는지. 나에게 의미있는 것들, 내가 의미가 되는 것들, 그런 것들이 마구 무서워진다.

 

내가 애용하는 두 도서관은 내 연체료 덕에 책 수십권 들여놓을 수 있을 듯도 하다. 어제 겨우, 밀린 책들을 벌금과 같이 반납하고, 또 한뭉탱이 빌려왔다. 그 중 유랑가족을 막 읽었는데, 상황들과 연결되어서 가슴이 조금, 먹먹하다. 난  '겨울의 정취'나 즐기며 탱자탱자 놀 깜냥밖에 되지 않는다. 그 정취안에 묻혀진 삶, 정말 제대로 외면하고 있는걸. "어둡고 부정적"이고 "상투적"인 이야기들, 언제 대체 한번이라도 들을려고 노력한 적이나 있는지. 따져보면 다 기구한 인생이라지만, 내 생활은 기구할 거 없고, 나는 부끄럽기만하다.

 

의미있는 삶이란게 대체 뭐길래.

 

고구마 세개를 삶았다. 여기 얌은 삶으면 뭔가 밍밍한 맛이라길래, 꼬숑과 몇 주전에 한국 식품점에서 한국 고구마라고 사왔는데, 결국 먹고싶어하던 꼬숑은 못 먹고가고 나만 먹는다. 떡볶이 국을 한번 만들고나서, 음식갖고 뭐 하는 일(요리라고도 못하겠다)에 또다시 벌벌거리고 있는데, 고구마는 잘 삶겨졌다. 한번 꺾이고나서 '다시' 뭔갈 한다는 걸, 언제부턴가 많이 무서워하게됐다. 나름의 심지,라는게 언제까진 있었던 것도 같은데. 뭐, (초간단한) 고구마 삶기를 무사히 마쳤으니, 조금의 자신감이라도 다시 붙을까. 이런 엄청난 오버가 있나. 하지만 이런 엄청난 비약을 서슴없이 자주 하고 싶을 정도로, 의미라는게, 절실하다. 무섭고, 뭔가 싶다가도, 그게 다 절실해서 그런 거 같고.

 

어쨌거나, 고구마는 맛있다. 읽을 책들은 널부러져 있고, (나도 널부러져 있고), 파이널은 코 앞이고, (나는 또 널부러져 있고) 체기는 가라앉는 중이고. 조금, 나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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