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_ 선정자 : 묘해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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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음악을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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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차 창작입니다.
  • 기본 설정은 영화 <미스터 홈즈>와 영드 <BBC SHERLOCK> 그리고 아서 코난 도일 경의 <셜록 홈즈>에서 따왔습니다. 스포일러가 많군요.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은 스킵해주십시오 ^^;







디어 왓슨


오늘에 이르러서야 자네에게 편지하는 나를 용서하게. 내가 사후세계를 믿지 않는 고집쟁이임을 알 테니, 자네의 그 붉은 책상에 앉아 펜촉을 잉크를 적시며 존 왓슨 철자를 휘갈기는 게 얼마나 낯선 사건임을 잘 알 것이라 믿네. 그만큼 친구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근래 나는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을 새롭게 알아가고 있다네. 이것은 마치 어린 시절 음식을 받아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어린 날의 나는 아직 이가 나지 않아 음식을 씹을 수 없었기 때문에 어머니께서 밥을 꼭꼭 씹어 연하게 만들어 입에 넣어주면 그제야 삼킬 수 있었다네. 아이러니하게도 지난날 내 어머니처럼 세상을 조각조각 잘라서 접시에 나눠주던 자네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그 후로 서른 해가 더 지나서야 지금의 가족에게 이를 배우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네.

아. 아직 자네에게 내 가족을 소개하지 않았군. 가족이라니! 존 왓슨! 내가 여태껏 가족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적이 있던가. 내 부모님과 마이크로포트를 제외하고, 사실 이들도 family라고 표현한 적이 거의 없지, 가족이라 칭한 존재는 없었다네. 하지만 지금은 이들이 내 가족이야. 가정부 미세스 먼로와 그녀의 아들 로저를 마음속 깊숙한 곳으로부터 가족이라 부르고 있다네.

사연은 이렇다네.
그때 내가 은퇴하게 된 바로 그 사건 말이지. 나는 그 사건을 직시하기로 결정했네. 내가 그 일 이후로 얼마나 상심이 컸는지 왓슨 자네는 알 것이야. 서식스로 내려와 벌을 기르면서 노년을 맞이했지. 노화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시력이 떨어지고 관절이 약해지는 건 반가운 일은 아니야. 특히 노화가 기억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불편하지. 아니 불쾌할 정도라네. 논리란 관찰로부터 나오는 것이야. 그런데 시력과 관절은 관찰의 도구이고 기억은 논리로 이어주는 도구란 말이네. 세월이 나에게 이를 앗아가다니 기력이 쇠약해진 셜록 홈즈는 자네 소설에 나오는 그 탐정과 더 다른 사람이 돼버렸지.

아마 나는 베이커가에서 홈즈를 외치던 벌 떼를 그리워해서 더더욱 양봉을 시작했을지도 모른다네. 로열젤리가 기억력 회복에 좋다는 것은 덤이고 말이지.

어쨌거나 나는 마지막 사건을 다시 풀어보기로 했다네. 로저는 자네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지. 이 아이는 셜록 홈즈 역할도 겸했다네. 사물을 파악하고 주변에 흩어진 정보 속에서 사실을 수집하여 논리를 만드는 데 재능이 있어. 로저가 붉은 책상에서 앤의 장갑을 찾아낸 것만 보아도 나보다 탁월한 관찰력과 끈기를 갖췄음을 방증하지. 물론 인정하기 싫지만, 그 책상 구석구석에 서신과 기록을 숨겨둔 자네의 재능 역시 무시할 순 없지만 말이야.

이제야 공식적으로 인정하네. 자네가 수차례 내게 했던 말이지만 나는 대화엔 소질이 없다네. 기본적으로 대화란 사람과 사람 간의 교류야. 공격과 방어가 낱말로 토스 되는 행위지. 이것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상대방이 그 자리에 있음을 인지하고 듣고 생각하고 반응을 해야 하네. 그런데 나는 상대방을 인지하는 것부터 엉망이었어. 비논리적인 사고 흐름이 공기 중으로 흘러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거든. 누구나 하나쯤은 집착하는 것이 있기 마련인데 나는 유독 논리를 고집했단 말이야. 타인의 상황을 파악하고 수수께끼만 푸는 것으로는 그 타인의 마음을 추리할 순 없다네. 마음을 추리한다는 것 역시 희로애락 같은 원초적 감정을 상황 파악으로부터 합리적으로 기대되는 예측 가능한 감정상태를 미루어 짐작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네. 결국은 감정 그것을 사건으로부터 배제하고 하나의 요소로써 객관적으로 다루어야만 추리는 단단해지고 사건을 풀리기 때문이지.

하지만 무릇 사람의 마음이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라서 듣지 않으면 그의 감정을 파악하려 노력하지 않으면 쉬이 와 닿는 것이 아니라 내가 번번이 실패했던 것이라네. 그 마음이 자네의 것이든 나의 것이든 나는 간단히 무시해왔지. 그것이 내 주위 사람들에게 또 다른 고통이었을 것이야. 그래서 내가 세상사에 어둡고 수수께끼에 나사가 하나 빠질 때마다 왓슨 자네가 설명을 해주지 않았던가. 자네의 설명이 없었다면, 그래 이제는 인정해야 하네, 나는 결코 풀지 못했을 것이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과 말을 섞는 것은 단지 문제를 풀기 위해서만은 아니야. 나는 이것을 여태껏 외면해왔어. 그리고 오늘날 로저에게 다시금 배우고 있다네. 수십 년 전에 자네가 내게 몇 번이고 충고한 것은 콩알만 한 소년에게 배우고 있어. 사람을 대하고 말을 하고 반응하는 것까지 새롭게 배우고 있다네. 옛날에 알았다면 자네에게 그리 모질진 않았을 텐데, 허드슨 부인과 메리와도 더 잘 지낼 수 있었겠지. 지금은 곁에 없는 이들에게 이렇게 한 장씩 편지를 보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말이야.

대화의 기술은 사실만 열거하는 것이 아니었네. 대화의 기술은 관계의 기술로도 이어지지. 난 너무도 미숙했기에 한 사람을 풀어야 할 하나의 수수께끼로만 치부했다네. 그리고 수수께끼를 풀면 카드를 서랍 속에 넣어버렸고 말이야. 이러니 대화가 될 틈도 없었고 카드가 뒤섞여서 앞면을 다시 볼 기회도 없었다네. 인생은 이토록 많은 카드가 섞여서 한 벌의 마을을 사회를 세상을 만드는 것인데 카드에 그려진 무늬와 오타에만 집착했으니 그 카드가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고 어떤 얼굴로 나를 바라봤을지 상상이나 했겠나.

오늘에서야 자네의 책상 앞에 앉아서 내 카드를 펼치고 내가 쥔 패를 천천히 살펴보고 있는 셈이지.
부모님
마이크로프트 홈즈
존 왓슨
허드슨 부인
레스트레이드 경감
아이린
모리어티

그리고 앤


이들을 더 알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삶을 나눌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물론 그것이 내 흥미를 돋울 리는 없지만 나는 아쉽다네. 관계라는 수수께끼를 풀 기회를 스스로 저버렸기에 말이네.

죽음이 가까워져 오니 나도 감상적인 면이 생기는 모양이야. 
자네가 던졌던 말들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 올려 종이 위에 올려놓고 이렇게 하나씩 문장 사이에 숨었던 존 왓슨 바로 자네를 되새기고 있지 않은가.

존. 수수께끼는 단편적인 유괴, 살인, 도둑 같은 사건이 아니었네.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생은 그 자체로 훌륭한 수수께끼야. 그리고 논리로만 풀리는 수수께끼도 아니지. 한 마디의 위로로도 풀리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고 세 마디 협박으로도 범죄를 부추기는 사람의 마음. 이 거대한 문제를 대면하기 위해선 픽션의 세계로 걸어 들어가야만 했다네.


또다시 자네와 사건을 풀고 싶네. 코웃음 치며 흘려보낸 사람의 마음을 이제는 읽어보고 싶네. 감정을 미소를 사연을 알고 싶어졌어.
왓슨. 나는 베이커가 하숙집 방 한가운데 놓인 소파에 앉아 허드슨 부인의 맛없는 차를 홀짝이며 자네와 이야기가 하고 싶다네. 

나의 오랜 벗
나의 친우


자네를 더 알고 싶었네.






안녕. 나의 친구.











William Sherlock Scott Hol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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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_ 선정자 : 헤베
인간을 제외한 사물들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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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_ 선정자 : 지환
두 명이서 어디론가 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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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이마저도 본인 판단 시 아니라고 생각되면 올리지 않을 자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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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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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

524
뭍을 떠난 지 정확히 524일째 되는 날 다시 뭍에 올랐다. 신발 밑창으로 전해지는 흙의 촉감은 대지의 느낌이 아니다. 대기에 퍼진 축축하고 습한 느낌이 신발 안에도 가득 차서 발톱 틈에도 끼인 것 같다. 보급 운동화 발끝으로 땅을 톡톡 쳐봤다. 역시 예전의 땅이 아닌 것 같다. 땅에서 피어오르는 흙내음은 비릿하고 약간의 황 냄새가 섞여 있다. 

사피. 서둘러야 한다. 해가 지기 전에 돌아와라.

식수와 식량을 보급하기 위해 함께 배에서 내린 가디언이 도심지가 있었던 방향으로 향하며 귓속말을 건넸다. 돌아간다니 어디로 말인가.

선발대는 장비를 점검하면서 부지런히 뛰어갔다. 말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들도 곧 참극이 지나간 자리를 보게 되겠지. 선발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나는 짐수레와 둘만 남겨졌다. 적막만 가득하니 오히려 안전한 느낌이다. 이게 언제까지 갈진 모르겠다.

짐수레를 끌고 아스팔트를 따라 걸었다. 비프가 쥐여준 지도에 의하면 이 길 끝에 공터가 있는 보트 관리사무실이 있다. 비프도 네아를 안다. 그러니깐 나와 네아를 배려해준 것이리라. 덜컹 철퍼덕

길 중간에 뭐가 있다. 왼손에 든 지도, 오른손으로 잡은 수레, 시선은 왼손 지도와 현장을 계속 비교하다 보니 바로 밑 장애물도 파악을 못 했다. 발을 걸었던 장애물은 이상하게도 지도를 움켜진 내 손과 비슷하게 생겼다. 손은 어깨까지만 있다. 그리고 누군가의 볼을 어루만졌었을 손의 주인은 길 옆 덤불 밑에 누워있다. 배를 타러 여기까지 이동했던 사람이 틀림없다. 덤불 옆에는 짐가방과 유모차가 있다. 하지만 비극은 무릇 만인에게 공평한 것이라, 가방의 주인도 유모차에 앉아 있던 아이도 이렇게 길옆에 누워 있다. 

감상에 젖는 것도 잠시, 뒤돌아 보니 수레에 실어뒀던 우리도 역시 나동그라져 있다. 

아.. 네아. 미안해. 널 잊은 건 아니야. 

호주머니에서 비프가 넣어준 마스크와 장갑을 꺼내 썼다. 우리를 수레에 올리고 팔은 주인 옆에 놓아뒀다. 잠깐 묵념을 해줄까 했지만, 사치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인도적 행위.

수레를 끌고 8분쯤 더 걸어가니 관리 사무소가 나왔다. 비프는 술만 먹으면 만화가가 되고 싶었다고 부끄럽게 말하곤 했다. 지도에 창작열을 얼마나 쏟아부었는지 길치가 헤매지도 않았다. 이 또한 나와 네아를 생각해준 것이리라.

삐걱대는 문을 밀고 들어가니 바닥에 먼지와 쓰레기와 종이가 잔뜩 있다. 보급 운동화는 군화라서 이런 것쯤은 그냥 밟고 지나가도 된다. 예전의 나라면 이런 어지러운 상태를 못 참았을 것이다. 쓰레기를 치우고 흩어진 종이는 모두 주워다 데스크에 올려뒀을 것이다. 그러면 네아는 뒤에서 팔짱을 끼고 그런 날 못마땅하듯 바라봤을 것이다.

사피. 깔끔 좀 그만 떨어. 우린 갈 길이 멀다고. 팔짱 밑으로 쭉 뻗은 네아의 왼쪽 다리는 허둥지둥하는 나를 재촉하면서 바닥을 퉁퉁 쳐댔지. 그런데 지금은 퉁퉁 소리도 없다. 다 옛날일 뿐인.

보트 관리사무소 뒷문을 열고 나가니 비프 말대로 공터가 있다. 수리하려고 보트에서 뗀 부품이 한쪽에 쌓여 있다. 여기에 바지 호주머니에 있는 성냥으로 불을 붙일 수 있을 거다. 서두르면 해가 지기 전에 노을을 보며 걸을 수 있으리라. 524일 만에 뭍에서 노을을 보다니... 네아는 노을을 보며 산책하는 걸 참 좋아했는데.

생각을 털어내고 보트 부품을 공터 중앙에 모았다. 바지 주머니에서 꺼낸 성냥은 그새 내 땀에 축축해져서 불이 잘 안 붙는다. 사무실에 라이터가 있을까. 아니면 성냥을 조금 말릴까. 

성냥 머리에 있는 붉은색은 붉은 인이야. 인은 푸른 색도 있어. 무덤 가에서 도깨비불 파란 거 알지? 그거 시신이 부패하면서 나는 인화수소가 자연 발화하면서 띄는 빛 색이야. 

네아는 공대를 졸업했다. 무슨 쓰레기 처리시설에서 일했다. 몇 번을 설명해줬는데도 난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는데 어쨌거나 그녀의 직업은 엔지니어였다. 그 덕에 우리가 배에 오를 수 있었지. 그리고 지금은... 우리 안에 있다. 

성냥 한 알을 쥐고 허공에 흔들었다. 붉은 인. 푸른 인. 네아가 그때도 성냥갑에서 성냥을 꺼내 내 눈앞에서 흔들면서 이야길 해줬는데 기억이 안나. 네아의 목소리가 낮게 테이블을 타고 흘렀는데 난 온통 네아의 눈을 들여다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날 내 호주머니 안에는 반지가 굴러다니고 있었지. 

성냥을 그었다. 노란 불꽃이 붙은 성냥을 나뭇더미 위에 던졌다. 날씨는 축축하고 대기는 습기를 머금었는데 이상하게 불이 잘 탄다. 보트 수리하던 사람이 윤활유라도 발라뒀던 건가. 

공터엔 두명이 있는데 네아는 아직도 조용하다. 닥터후가 네아에게 준 약이 정말 독한가 보다. 닥터후는 자신을 돌팔이라고 불렀는데 네아와 몇 시간이고 벤조피렌이 어쨌니 벤조다이아제핀이 어쨌니 이야기를 했다. 난 그들의 대화를 조용히 듣곤 했는데 사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른다. 나중에 네아가 설명해주면 그때도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바라보곤 했지. 

배는 아주 컸는데 아무나 승선할 순 없었다. 정치인들, 군인들, 기술자들, 의료인들, 그리고 과학자와 공학자가 우선이었다. 아이들이 그다음. 가임기 여성이 그다음. 네아는 군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나도 승선시켜주지 않으면 배에 올라타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놨었다. 군인은 곤란해하더니 비프에게 권한을 넘겼다. 네아는 비프에게 이력을 설명했고 망망대해에서 고립된 배,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배출하는 것, 배에서 나올 쓰레기 같은 걸 설명하면서 왜 네아와 내가 함께 배에 타야 하는지 설명했다. 나름대로 이력을 쌓은 역사 선생님인데 이곳에선 쓸모가 없었다. 생존에 우선한 것은 로마나 나폴레옹이 아닌 기술이니깐. 아비규환이 항구 코앞까지 들이닥치고 있고 배는 한정된 공간이다. 꼭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면 짐만 된다. 그러니까 이렇게 쉽게 한 인간의 가치를 바로 앞에서 뭉갤 수 있겠지. 인류가 쌓아올린 이데올로기와 인권헌장은 재난 앞에서는 성냥 한 알보다 무가치해지는 것이겠지.

불이 활활 타오르자 나는 우리의 자물쇠를 풀었다. 벌써 네아의 얼굴까지 검은 핏줄과 반점이 올라왔다. 땀으로 미끈거리는 장갑을 벗어 던졌다. 가슴에 귀를 대보니 아직 들썩인다. 숨을 쉬고 있어. 심장이 뛰고 있는데. 피가 흐르는 인간인데 왜 나는...




<네아>

520
드디어 육지에서 움직임이 사라졌다. 나는 사피와 육지를 떠나는 마지막 함선 그린티호를 탔다. 당시 과학자들은 30일이면 좀비가 남은 인류 하나까지 찾아낼 것이라 점쳤다. 그리고 또 50일 지나면 극심한 기아상태를 맞이해 동족포식과 살육이 일어나리라 예측했다. 좀비 내분이 길어야 100일이면 끝날 것이고 살아남은 좀비들 역시 기아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100일이 지나면 모두 죽을 것이다. 군인은 40일 후 220일째 되는 날 상륙을 주장했다. 나는 여기에 300일을 더 주장했다. 사람의 시체와 좀비의 시체가 땅에서 썩어갈 시기에 굳이 그 지옥을 볼 필요는 없다. 그리고 300일이면 최후의 좀비 후에 자연이 청소할 수 시간이다. 뭍에 올랐을 때 시체와 폐허가 아니라 대지에서 수풀과 식물이 있을 것이다. 생태계가 적응하고 처리해나갈 시간을 충분히 준다. 자연의 자정작용이 진행 중일 때 인간이 땅을 밟아야 한다.

닥터후와 비프는 내 편을 들어줬다. 난 이 배에서 유일한 환경공학자로 배 안의 수질처리시스템과 공기순환장치, 기타 오염처리시스템을 모두 책임지고 있다. 좀비의 끔찍함은 그것이 가진 경악할 전염력과 감염체 위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좀비 시신에서 배출될 알 수 없는 오염물질에도 있다. 이 전쟁에서 인류가 최후 생존자가 되더라도 좀비가 부패하면서 나올 물질과 병균을 처리할 수 없다면 토양은 인류를 받아들일 수 없다. 땅에서 자라난 동식물도 위험할 수 있다. 과학기술과 진보이념이 커버하지 못한 그 틈새를 뚫고 나온 좀비균은 순식간에 대도시를 점령하고 시골과 반도를 공격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인간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실체의 공격 앞에서는 순순한 동물로서의 본능만 표출했다. 어쩌면 좀비가 살육한 인간보다 인간 종 자체의 내분과 갈등에 의해 국가가 더 빨리 무너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520일째 되는 날 마침내 육지에서 마지막 대형종의 움직임이 사라졌다. 어쩌면 설치류와 바퀴벌레는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다. 바퀴벌레와 설치류, 곤충이 있다면 오히려 잘된 일이다. 그만큼 생태계가 회복 불가능한 것은 아니란 의미다. 전기가 끊겼으니 지구 궤도를 도는 위성은 무용지물이다. 오직 망원경과 배의 관측기구로만 육지의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다. 비프와 가디언은 4일 후 가까운 항구에 정박하기로 했다. 아마도 육지에서 통조림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숯과 필터를 찾아야 한다. 건전지도 가져와야지. 지금 배 후미에 있는 배출 파이프에 걸린 수초만 제거하고 나면 가방을 챙길 수 있을 것이다. 어떠면 육지에서 사피가 그렇게 노래 부르는 책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은 노자랑 장자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아무리 들어도 동양철학이 서양철학이나 종교와 달리 동양국가의 정치, 사회제도, 문화를 구성한 그 해설을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사피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좋다. 사피는 내가 경청하는 것을 알아차리면 더 조근조근 설명해준다. 문장 속에 불필요한 단어도 수식어도 없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 자체로 수학공식과 같이 깔끔하고 아름답다.

수초 더미를 끄집어 올리는데 너무 무겁다. 대체 무슨 놈의 수초가 이렇게 미친년 머리카락 마냥 엉켜 있나 모르겠네. 그렇게 작업팀과 끙끙대며 배출 파이프 입구에 걸린 것을 모두 끄집어 올렸다. 갑판에 끌어올렸던 뭉텅이를 바다로 밀어 넣는 순간, 수초 더미 끝에서 검은 입이 달려들었다. 입속에 빨간 목구멍이 보였다. 검은 입이 순식간에 내 왼손을 물어뜯었고,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사피가 가디언의 총을 뺏어 들어 입이 달린 머리를 쏴버렸다. 목 위에 있던 것은 검은 바다로 굴러떨어졌다. 작업팀에게 갑판을 정리와 후처리를 지시했다. 사피가 티셔츠를 찢어서 내 손에 감아줬다. 닥터후 진료실로 내려가면서 복도 불빛으로 사피의 얼굴을 흘끔 봤다. 화가 난 것 같아..

비프와 가디언은 임시총회를 수집했다. 520일이면 더는 좀비가 생존해있어선 안 된다. 그런데 왜 수초더미에서 좀비가 발견되었단 말인가. 식수와 의료품은 모두 바닥났다. 애초 예상보다 더 오랜 기간을 바다에서 머물렀고 더이상 지체했다간 이 배 자체가 망망대해에서 무덤선이 되고 만다. 위험을 부담하고서라도 뭍에 올라야 하지 않나. 시끌벅접한 토론이 진행되는데 닥터후가 들어왔다.

시드니 인근입니다. 온대 기후라고요. 바닷물이 따뜻해서 체온저하를 막아줬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수초에 걸려서 바닷속으로 가라앉지도 않고 부유했던 것 같네요. 이례적입니다. 예정대로 진행해도 됩니다.

총회는 나흘 뒤에 시드니 항에 정박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의 처분은 규칙대로 사피에게 넘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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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_ 선정자 : 7월
부끄러움에 대하여 일화건 생각이건 진지하게 생각하고 깊게 생각해서 글 써주세요.
가능하면 이성적 부끄러움 외에 대해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지만, 가능하면 이니까, 저의 썩소 보고 싶으시면 첫사랑 쓰세요. 
전 인간으로써의 부끄러움이 보고싶습니다. 구린 부분들을 파헤쳐주세요.
글 장르는 상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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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싶은 말
능력부족을 느낍니다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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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틀라나 오늘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제 책상에는 당신의 책이 숨겨져 있어요. 들키고 싶지 않아 거꾸로 꽂아뒀지요. 때문에 그 책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만 없는 것과 같아요. 모두들 두눈으로 그곳을 보고도 그 책이 존재함을 인지하지 못해요. 그들이 모르는 것은 그래서 제 탓일지도 모르겠어요. 그 여자들.. 전쟁에서 돌아온 후의 침묵했던 기간 동안은 없는 여자들이었잖아요. 목소리를 내었을 때 새어나왔던 존재의 증명은, 이를테면 부존했던 기록이고 허락받지 못했던 역사의 이면이었을 거에요. 당신이 쓴 페이지에서 없는 여자들이 생존자가 되어 말을 했잖아요. 만약 그들이 끝까지 침묵했더라면 인류가 잃어버린 것은 그저 한권의 책일 따름인가요? 아니면 진실이었을까요. 밤이 되면 집집마다 이름을 잃은 여자들의 울음과 한숨이 등불을 껐을 거에요. 어두컴컴한 밤하늘은 그래서 더더욱 존재했었음을 반증해줬을 겁니다. 그런데 울음이 말소리가 되고 글자가 되어 만질 수 있는 물질로 등장했을 때 비로소 실존을 인정받는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에요. 제 책상에 거꾸로 꽂혀 제목이 불리지 못하고 있는 당신 책과 같은 처지에요. 그 책을 볼 때마다 전 인터넷에 흘러나오는 또 다른 이름 없는 여자들을 봐요. 분명히 존재하고 그것이 행해졌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공동체 안에서 침묵하도록 강요받는 사람들 말이에요.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행한 것을 자랑스럽게 남발하는 사람들의 말도 보아요. 이름 없는 여자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아서 밤하늘 수놓은 별만큼 반짝이는데, 세상에는 이미 태양이 가득해서 그 빛을 볼 수가 없대요. 어쩌면 여자아이에게 가르쳐야할 것은 리본과 스파이시가 아니라 너를 함부로 대할 누군가가 존재할 것이고 그에 항의했을 때 질타는 바로 너에게로 향할 것이란 미래일지도 몰라요. 너무 흔해빠지고 넘쳐나는 이야기라서 너만 조용하면 우리모두 해피엔딩이기에 기록할 수 없나봐요. 기록될 수 없나봐요. 지금은 이름을 불려줄 수 없을거에요. 왜냐하면 또 인터뷰를 했다가 악몽을 재현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에요. 제 글은 현실을 묘사하고 타인을 설득하기엔 너무 부족해요. 그리고 제 글은 목소리를 담기엔 너무 감정적이래요. 허락한 범위 안에서의 사고와 비판과 증언과 변호와 감정만 이름을 불러주거든요. 그러니깐 저도 존재하지 않는 이름이에요.

 

 

 

 

 

 

해설)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 벨라루스 저널리스트, 작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외 다수 

+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본문 서술 형식 적용 

+  책을 읽지 않으면 흐름과 내용 이해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책의 내용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참전했던 우크라이나 여성병사들의 인터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이 나오기 전에는 구전민요처럼 떠돌던 이야기였고 출판 후에 실존했다는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일본 성노예(위안부) 역시 최초의 증언이 나오지 않았다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 우리 할머니들입니다. 그리고 일상 성폭력도 언제나 존재하지만 바로 나와 같은 사무실, 같은 카페,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일상 속 사람이 가해자나 피해자일 것이란 현실을 인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가해자도 피해자도 엄연히 존재하는 사람들입니다. 때로는 처벌 받아야할 범죄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하더라도 연애의 단면, 일상의 부스러기라 평가하며 마주하려 하질 않죠. 누구나 한번쯤 겪고 흔하다고 해서 그리고 전쟁범죄가 아니라고 해서 없던 일이 되지는 않더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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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글 24주차 주제]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이해하기 힘든 것'에 대해서 써주세요.

시나 수필로 작성하되 소설로 전개하면 안 됩니다.


*주제 선정자의 말

이해하기 힘들다는 감정에 대해서 쓸 필요는 없고, 대상이 뭐든 상관없어요.

'신이 존재하는 걸 믿는 사람들' 이런 추상적이고 딱딱한 걸 수도 있고, 엄마가 나를 왜 사랑하는지,

서울 사람들은 왜 순대를 소금에 찍어먹는지, 등등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분량, 장르, 전개 방향 자유입니다.


맞춤법 검사기

http://speller.cs.pusan.ac.kr/PnuSpellerISAPI_201504/


+ 합평 받고 싶은 부분

양말만 신고 공연하는 기분이 들어서 부끄럽습니다. 살살 때려주세요


+ 하고 싶은 말

잠금쇠는 튼튼한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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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군은 다정했다. 그는 매일 밤 내 머리맡에 누워 긴 머리칼을 쓸어주곤 했다. 불면증으로 지독한 나날을 보냈던 나에겐 작은 위로였고 큰 애정이었다. 낮 동안의 시끄러움이 두개골을 두드리다가 F군의 쓰다듬으로 잦아들면 나는 이윽고 잠들었다. 그것은 그 시절 우리만의 의식이었다. F군과 나 사이의 우리 둘만의 일과.

 


그런 그가 내 곁을 떠났을 때, 나는 그의 의사를 존중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이별은 으레 마음의 준비 없이 닥쳐오는 것이라 며칠을 멍하게 보냈던 것 같다. 그를 그리워했고 다시금 보고 싶었기에 그날 떠난 날 그가 걸어갔을 골목길을 몇 번을 되밟아 보았던 기억이 난다. 복도를 계단을 골목길을 주차장을 하염없이 걷다가 계절이 바뀌어 눈이 소복이 내렸을 때가 돼서야 나는 그의 귀환을 포기했다.

 


나는 그가 그날 밤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지 않았을까 걱정된다. 혹시나 차에 치이진 않았을까. 무서운 사람에게 해코지 당하진 않았을까. 그리고 마침내 나 자신에게 F군은 아마도 좋은 사람에게 발견되어 귀염받으며 지내고 있으리라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뇌다 보면, 그날 닥친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라 주문을 외웠다.

 


지금도 F군과 닮은 묘옹을 보면 그를 떠올리게 된다. 그는 사춘기령에 접어든 수컷 고양이였고 우리는 단란한 가족이 되어가고 있었다. 적어도 난 그렇게 믿었다. 키보드를 두드리면 조용히 다가와 내 무릎을 탐냈던 F. 컴퓨터 화면 속 등장인물을 질투하며 솜방이로 때리던 F. 내 어깨와 머리끝에 올라앉아 갸릉거리며 벽지무늬를 관찰했던 F. 밤마다 내 한숨을 먹으며 작은 혀로 머리카락을 하염없이 핥아줬던 F. 그리고 말랑말랑 묘족으로 사람보다 능숙하게 대문 잠금쇠를 따고 가출을 강행했던 F. 그는 왜 집을 나갔을까. 외출을 했으면 다시 귀가를 해야지 왜 우리 집에 나만 두고 나간 거야.

 


그 후 어떤 고양이를 만나도 그의 안부를 물어본다. 그런데 어떤 고양이도 대답을 주지 않는다. F군은 왜 우리집을 떠난 걸까. F군은 왜 매일밤 내 머리칼을 핥아줬을까. F군에게 나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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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03. 1차 수정



F군은 다정했다. 그는 매일 밤 내 머리맡에 누워 머리칼을 쓸어주곤 했다. 불면증으로 지독한 나날을 보냈던 나에겐 작은 위로였고 큰 애정이었다. 낮 동안의 시끄러움이 두개골을 두드리다가 쓰다듬으로 잦아들면 이윽고 나는 잠들었다. 그것은 그 시절 우리만의 의식이었다. F군과 나 사이의 우리 둘만의 일과.

 

 

그런 그가 떠났을 때 나는 F군의 의사를 존중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이별은 으레 마음의 준비 없이 닥쳐오는 것이라 며칠을 멍하게 보냈던 것 같다. 그가 지나쳤을 복도를 계단을 골목길을 주차장을 되밟아 보았던 기억이 난다. 계절이 바뀌어 눈이 소복이 내렸을 때가 돼서야 기다림을 그쳤다.

 

 

그날 밤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지 않았을까 걱정된다. 차에 치이진 않았을까. 무서운 사람에게 해코지 당하진 않았을까. 그리고 마침내 나 자신에게는, 아마도 좋은 사람에게 발견되어 귀염받으며 지내고 있으리라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뇌다 보면, 그날 닥친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라 주문을 외웠다.

 

 

지금도 그와 닮은 묘옹을 보면 가만히 이름을 불러본다. F군은 사춘기령에 접어든 수컷 고양이였고 우리는 단란한 가족이 되어가고 있었다. 적어도 난 그렇게 믿었다. 키보드를 두드리면 조용히 다가와 내 무릎을 탐냈던. 컴퓨터 화면 속 등장인물을 질투하며 솜방이로 때리던. 내 어깨와 머리끝에 올라앉아 갸릉거리며 벽지무늬를 관찰하던. 밤마다 내 한숨을 먹으며 작은 혀로 머리카락을 하염없이 핥아줬던. 그리고 말랑말랑 묘족으로 사람보다 능숙하게 대문 잠금쇠를 따고 가출을 강행했던.

 

 

F군이 졸던 방바닥을 쓸면 형용사만 수북 쌓이고 그 자리는 식어만 간다. 왜 집을 나갔을까. 외출을 했으면 집으로 돌아와야지. 왜 우리 집에 나만 두고 나간 거야.

 

 

그 후 어떤 고양이를 만나도 그의 안부를 물어본다. 그런데 어떤 고양이도 답을 주지 않는다. 왜 우리집을 떠난 걸까. 왜 매일밤 내 머리칼을 핥아줬을까. F군에게 나는 우리는 무엇이었을까.




F군은 다정했다. 그는 매일 밤 내 머리맡에 누워 <s></s> 머리칼을 쓸어주곤 했다. 불면증으로 지독한 나날을 보냈던 나에겐 작은 위로였고 큰 애정이었다. 낮 동안의 시끄러움이 두개골을 두드리다가 <s>F군의</s> 쓰다듬으로 잦아들면 <s>나는 </s>이윽고 나는 잠들었다. 그것은 그 시절 우리만의 의식이었다. F군과 나 사이의 우리 둘만의 일과.

그런 그가 <s>내 곁을 </s>떠났을 때, 나는 F군의 의사를 존중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이별은 으레 마음의 준비 없이 닥쳐오는 것이라 며칠을 멍하게 보냈던 것 같다. <s>빈자리를 손바닥으로 몇 번이고 쓸어보아도 식어가기만 했다. 그를 그리워했고, 다시금 보고 싶었기에 그날 떠난 날 그가 </s><s>그날 그 시간 </s><s>그가 걸어갔을 골목길을 몇 번을 되밟아 보았던 기억이 난다. </s>그가 지나쳤을 복도를 계단을 골목길을 주차장을 <s>하염없이 걷다가</s> 되밟아 보았던 기억이 난다. 계절이 바뀌어 눈이 소복이 내렸을 때가 돼서야 기다림을 멈추었다.

<s>나는 그가 </s>그날 밤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지 않았을까 걱정된다. <s>혹시나 </s>차에 치이진 않았을까. 무서운 사람에게 해코지 당하진 않았을까. 그리고 마침내 나 자신에게 <s>F군은</s> 아마도 좋은 사람에게 발견되어 귀염받으며 지내고 있으리라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뇌다 보면, 그날 닥친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라 주문을 외웠다.

지금도 <s>F군과</s> 그와 닮은 묘옹을 보면 가만히 이름을 <s>떠올리게 된다</s><s>. 이름을 </s>불러본다. F군은 사춘기령에 접어든 수컷 고양이였고 우리는 단란한 가족이 되어가고 있었다. 적어도 난 그렇게 믿었다. 키보드를 두드리면 조용히 다가와 내 무릎을 탐냈던<s> F군</s>. 컴퓨터 화면 속 등장인물을 질투하며 솜방이로 때리던 <s>F군</s>. 내 어깨와 머리끝에 올라앉아 갸릉거리며 벽지무늬를 관찰했던 <s>F군</s>. 밤마다 내 한숨을 먹으며 작은 혀로 머리카락을 하염없이 핥아줬던 <s>F군</s>. 그리고 말랑말랑 묘족으로 사람보다 능숙하게 대문 잠금쇠를 따고 가출을 강행했던 <s>F군</s>. <s>그는 왜 집을 나갔을까. 외출을 했으면 다시 귀가를 해야지 왜 우리 집에 나만 두고 나간 거야.</s>

F군이 졸던 방바닥을 쓸면 형용사만 수북 쌓이고 그 자리는 식어만 간다. 왜 집을 나갔을까. 외출을 했으면 집으로 돌아와야지. 왜 우리 집에 나만 두고 나간 거야.

그 후 어떤 고양이를 만나도 그의 안부를 물어본다. 그런데 어떤 고양이도 대답을 주지 않는다. <s>F군은 </s>왜 우리집을 떠난 걸까. <s>F군은 </s>왜 매일밤 내 머리칼을 핥아줬을까. F군에게 나는 우리는 무엇이었을까.

 

 

 

- 2016.05.02. 19: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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