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베틀라나 오늘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제 책상에는 당신의 책이 숨겨져 있어요. 들키고 싶지 않아 거꾸로 꽂아뒀지요. 때문에 그 책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만 없는 것과 같아요. 모두들 두눈으로 그곳을 보고도 그 책이 존재함을 인지하지 못해요. 그들이 모르는 것은 그래서 제 탓일지도 모르겠어요. 그 여자들.. 전쟁에서 돌아온 후의 침묵했던 기간 동안은 없는 여자들이었잖아요. 목소리를 내었을 때 새어나왔던 존재의 증명은, 이를테면 부존했던 기록이고 허락받지 못했던 역사의 이면이었을 거에요. 당신이 쓴 페이지에서 없는 여자들이 생존자가 되어 말을 했잖아요. 만약 그들이 끝까지 침묵했더라면 인류가 잃어버린 것은 그저 한권의 책일 따름인가요? 아니면 진실이었을까요. 밤이 되면 집집마다 이름을 잃은 여자들의 울음과 한숨이 등불을 껐을 거에요. 어두컴컴한 밤하늘은 그래서 더더욱 존재했었음을 반증해줬을 겁니다. 그런데 울음이 말소리가 되고 글자가 되어 만질 수 있는 물질로 등장했을 때 비로소 실존을 인정받는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에요. 제 책상에 거꾸로 꽂혀 제목이 불리지 못하고 있는 당신 책과 같은 처지에요. 그 책을 볼 때마다 전 인터넷에 흘러나오는 또 다른 이름 없는 여자들을 봐요. 분명히 존재하고 그것이 행해졌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공동체 안에서 침묵하도록 강요받는 사람들 말이에요.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행한 것을 자랑스럽게 남발하는 사람들의 말도 보아요. 이름 없는 여자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아서 밤하늘 수놓은 별만큼 반짝이는데, 세상에는 이미 태양이 가득해서 그 빛을 볼 수가 없대요. 어쩌면 여자아이에게 가르쳐야할 것은 리본과 스파이시가 아니라 너를 함부로 대할 누군가가 존재할 것이고 그에 항의했을 때 질타는 바로 너에게로 향할 것이란 미래일지도 몰라요. 너무 흔해빠지고 넘쳐나는 이야기라서 너만 조용하면 우리모두 해피엔딩이기에 기록할 수 없나봐요. 기록될 수 없나봐요. 지금은 이름을 불려줄 수 없을거에요. 왜냐하면 또 인터뷰를 했다가 악몽을 재현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에요. 제 글은 현실을 묘사하고 타인을 설득하기엔 너무 부족해요. 그리고 제 글은 목소리를 담기엔 너무 감정적이래요. 허락한 범위 안에서의 사고와 비판과 증언과 변호와 감정만 이름을 불러주거든요. 그러니깐 저도 존재하지 않는 이름이에요.
해설)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 벨라루스 저널리스트, 작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외 다수
+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본문 서술 형식 적용
+ 책을 읽지 않으면 흐름과 내용 이해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책의 내용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참전했던 우크라이나 여성병사들의 인터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이 나오기 전에는 구전민요처럼 떠돌던 이야기였고 출판 후에 실존했다는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일본 성노예(위안부) 역시 최초의 증언이 나오지 않았다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 우리 할머니들입니다. 그리고 일상 성폭력도 언제나 존재하지만 바로 나와 같은 사무실, 같은 카페,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일상 속 사람이 가해자나 피해자일 것이란 현실을 인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가해자도 피해자도 엄연히 존재하는 사람들입니다. 때로는 처벌 받아야할 범죄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하더라도 연애의 단면, 일상의 부스러기라 평가하며 마주하려 하질 않죠. 누구나 한번쯤 겪고 흔하다고 해서 그리고 전쟁범죄가 아니라고 해서 없던 일이 되지는 않더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