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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 주제의 바다 이야기는 사행성 게임은 아니고 주제 그대로 바다를 주제로 한 배경이 바다든지, 바다가 나오는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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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년도에 쓴 글과 16년도에 쓴 글을 나란히 배치했습니다. 9년 동안 퇴보했는지 어쩐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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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정이를 제대로 긁어내는 법

작성 : 2008.01.11 23:25






스포주의 >ㅡ<


 요즘은 “케빈 스페이시”에게 빠져있다. 그냥 아무생각 없이 “usual suspect”를 봤는데 완전히 배우의 재발견이었다. 너무나도 흠 잡을 때 없는 연기력하며 그 역할을 완전히 자기 자신으로 받아들여서 이 아저씨가 연기를 하는 건지 그냥 평소 일상생활을 보여주는 건지 구분이 안 갈 정도. 물론 어렸을 때는 혀를 내두르는 악동이었단다. 일대기만 봐서는 불량채권의 길을 걸었을 말썽쟁이가 이제는 관객을 좌지우지하는 배우가 되다니... 갑자기 내가 감개무량해진다. 뭐 여하튼 그 케빈 아저씨에게 꽂혀서 케빈 스페이시 일대기를 답습하고 있다. “데이비드 게일”, “LA 컨피덴샬”, “네고시에이터” 등을 봤는데 “쉬핑 뉴스”는 촬영한지도 몰랐다. 아주 우연히, 지나가다가 클릭 한번 잘 해가지고 이 영화를 알게 되어서 냉콤 다운 받아서 봤다. 별점은 별 억만개 주고 또 주겠다는 거 아니야~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 그 영화에 흥미가 있다면 내용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보는 편이 좋다. 하지만 귀를 막고 눈을 막아도 정보가 콧구녕으로 흘러들어오는 이 정보의 세계에서 그런 천지일우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나도 아무생각 없이 쉬핑뉴스의 줄거리를 읽었는데 “흐음~ 그렇단 말이지”하고 감을 잡았다. 아마도 이거 성장영화인거 같은데 하는 느낌이 번쩍 들었다. 성장 영화라, 수많은 성장영화와 성장소설이 있지만 제대로 된 작품 만나기가 정말 힘든데 이거 이야기가 잘 가다가 삼천포로 빠지는 건 아닐런지 적잖이 걱정이 되는 가운데 플레이 버튼을 누질렀다.

 

 그러나 소개를 하기 전에 이 말을 먼저 하고 싶다. 누구나 살면서 가슴 속에 상처 하나쯤은 새기게 된다. 나도 살면서 많은 상처를 받았고 또 때로는 상처를 주면서 살아왔다. 이런 가슴 속의 상처들은 대게 치료를 못 받는 경우가 많다. 그냥 벌어진 가슴을 부여잡고 손 틈으로 줄줄 세어나오는 피웅덩이에 가만히 서서 시간이 지나가기만 바란다. 세월이 흐르고 바람이 불면 벌어진 상처는 서서히 딱정이가 생기고 그렇게 아물어 간다. 그러나 간혹 인생은 우리를 배신하기에 그 누덕누덕 기운 상처를 억지로 벌리고 벌겋게 탁색된 피부를 다시금 가른다. 그때 우리는 미처 치료하지 못한 그 상처 틈 사이로 끔찍하게 버글거리는 벌레들을 보게 된다. 실로 대충 때우기만 한 흉터 뒤로는 사실 기억이라는 벌레가 그 상처를 끊임없이 파먹으면서 괴롭히기만 했던 것이다. 그 흉한 상처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꺼이꺼이 울면서 밤을 지새운 적이  한번쯤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 영화는 그 상처와 누더기 흉터와 그리고 벌레를 짓밟아 으깨버리는 용감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코일 일가는 사실 엉망진창에 해적질과 살인으로 얼룩진 불명예스러운 성(姓)이다. 그 성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코일은 뭐하나 할 줄 아는 게 없는 쓸모없는 인간이다. 어린 시절, 수영을 배우라고 물에다 집어던진 아버지의 말대로 그는 말주변도 없고 주변머리도 없고 어영부영 세월아 내월아 하다가 대학도 중퇴하고 어느 신문사 윤전자로 일한다. 말할 것도 없이 지루했던 그의 삶 속에 페틀이라는 여인이 들어오게 되고 그 여인과의 사이에서 버니라는 이쁜 딸을 얻게 된다. 그러나 페틀은 엄청난 날라리, 얌전한 코일과 아기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이 남자 저 남자 놀아나다가 딸을 불법입양원에 팔아먹고 자동차 사고로 죽어버렸다. 그런 아내라도 사랑했기에 그는 주저앉아서 엄마를 찾는 딸을 안고 울기만 한다. 설상가상 아버지의 장례식에 등장한 고모 아그네스. 아그네스는 코일에게 고향인 뉴펄랜드로 이사할 것을 권한다.

 

 5월인데도 눈이 함뿍 쌓인 그 어촌 마을의 끄트머리에서 코일가의 50년간 버려졌던 집을 수리해서 살기로 하는데 그 집의 네모난 꼭짓점에는 쇠줄로 매달아서 땅에 고정못을 박아놨다. 어린 버니는 집이 울고 있다는 기묘한 소리를 한다. 코일은 부양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신문사에서 언감생신 기자가 되게 된다. 평생 보잘것없게 살아온 코일에게 그런 부르조아적(?)인 일이 어울릴리 없기에 그는 손사레를 치지만 보스 잭은 “느낌으로” 그에게 쉬핑뉴스를 맡긴다. 종이에 끄적끄적 배 이름이 옮겨적던 그는 그 느낌의 인도로 히틀러의 배에 관한 기사를 쓰게 되고 그 기사는 히트를 치면서 배와 인생과 운명에 관한 기사를 계속 쓰도록 권유를 받는다. 설상가상으로 버니가 다니는 어린이 집을 운영하는 웨이비에게서 사랑을 감지한다.

 

 아직은 물을 무서워하는 코일은 아그네스가 12살의 어린나이에 자기 아버지에게 강간을 당하고 유산까지 한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된다. 아그네스는 그 진절머리 나는 기억과 마주하기 위해서 고향에 돌아온 것이었다. 아그네스의 상처를 보듬은 그는 그뿐만 아니라 가족, 이웃 모두가 상처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웨이비의 남편은 배사고로 죽은 것이 아니라 임신한 그녀를 두고 틴에이저 소녀와 눈이 맞아서 도망간 것이었고 작은 버니마저 엄마가 자기가 미워서 집을 나간 줄 알고 어린 마음을 닫고 있었던 것. 마침내 코일은 끔찍한 태풍 속에서 코일가의 상징이었던 누덕누덕 기운 집이 바람에 날려가 버리자 어린시절의 상처와 페틀의 기억에서 벗어나서 진정한 자기자신을 맞이하게 된다.

 

 영화는 코일이라는 한 남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지만 그 주인공을 둘러싼 조연에게서도 시선을 떼지 않는다. 오히려 그 조연들의 삶과 상처를 코일과 대비시키면서 코일 자신이 어떻게 상처와 마주하고 그 상처를 치유하게 되고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게 되는지를 군더더기 없게 그러나 거슬리지 않게 조근조근 이야기한다. 작은 신문사를 꾸려가는 심술꾸러기 편집장은 코일을 잡아먹지 못해 으르렁거리기만 하고 친구들은 그에게 오징어버거를 먹이면서 수다떨기에 바쁘다. 해외기사를 소개하던 한 친구가 드디어 초호화 배를 완성해서 배를 타고 브라질로 가겠다고 하자 송별회에 온 마을 사람들이 톱과 망치로 배를 망가뜨린다. 나무 작대기로 열심히 배를 때려 부수던 코일은 갑자기 상처들과 마주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떠나버린 남편과 지체아 아들 사이에서 서성이던 데이비와 그 데이비에게서 페틀을 보게되는 코일이 술에 취해 그녀를 찾아가서 사실을 말해달라고 하는 그 밤, 그 폭풍우 같은 밤이 지나가면서 코일의 머리도 맑아진다. 더 이상 사랑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것, 그리고 상처에 앉은 먼지 수북한 딱정이를 제대로 긁어내겠다는 것. 아그네스에게 여자라도 당하고만 살아서는 안된다고 말하며 그만 떨쳐버리라는 말을 하자 그녀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시집 속에서 사실 그녀가 매일 보고 있었던 사진 한 장을 꺼낸다. 6년 전에 죽은 그녀의 사랑. 두 여자를 안아주는 코일은 아프고 쓰라리지만 상처를 덮은 딱정이를 단번에 떼버린다. 학대하던 아버지의 저주나 코일이라는 이름을 들먹거리며 한심한 인생의 방패막이를 세웠던 그도 이제는 진정한 성인으로 거듭나게 된다.

 

 영화 초반부에는 기운 없고 의욕 없는 누런 얼굴의 그가 서서히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너무나 큰 그림자를 보여준다. 죽은 엄마를 살려내라며 투정을 부리는 딸을 가만히 알아주면서 “너도 알지? 죽는 거란 그런 거란다”라는 말을 삼키는 그는 더 이상 한심하고 무쓸모한 인간이 아니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 한 목소리를 보태도 되는, 그만의 인생을 살 권리가 있는 아름다운 일원이 된다. 그런 것이다. 산다는 것은 그렇게 자기자신과 마주하며 세상의 일원으로써 자립하게 되는 과정이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잔인한 의식을 치른다. 그러나 그 잔인함은 독이 아니라 성장통과 같은 것이기에 외면할 수만은 없는 기억과의 싸움과 같은 것이다. 안락함 속에 숨어 ‘그 인간 때문이야’라고 되뇌며 현실에서 도망치기만 하는 나에게 변명거리를 앗아가는 몹쓸 영화다.








p.s. 여신 케이트 블란쳇이 검은 머리에 초날라리로 나온다. 뇌쇄적인 눈빛에 빠져보아용

p.s.2 케이트 모에닉이 초반부에 애보기 알바생으로 나온다. 깜짝 놀랬다. 마성의 미모는 어렸을 때도 여전하군뇨 ;ㅁ;












After 9 years 


작성 : 2016. 07.26. (화)




오랜 시간 풍랑 속을 표류했지만 매번 부딪치는 파도는 또 다른 것인지라 그 때마다 새로운 좌절과 고통을 맛본다. 그리고 다시금 깨닫는다. 나의 고통은 나만의 것.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고 짐작할 수 없는 크기를 가졌다. 다만 바라 마지않는 것은, 찬란한 위로의 단어가 아니다. 태양이 떠오르지 않는 칠흑 같은 밤바다 위에서 내 몸 하나 뉘일 수 없는 작은 나뭇조각을 붙잡고 파도와 소금기와 발 끝을 스치는 상어떼를 인정해 주는 것. 그리고 가만히 곁에서 지켜봐주는 것. 홀로 사투를 벌이는 와중에도 혼자가 아님을 조용히 밝혀주는 등대와 같은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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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열대야
권장 조건 : 
1. 소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2. 밝게는 아니더라도 결말을 너무 처지지 않게 써주세요.
3. 어두운 글이면 비꼼으로 유우머러스하게 써주세요.
4. 위트있는 소설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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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 왼쪽으로 돌아누웠다. 등 뒤로 차오른 땀이 셔츠를 축축하게 적셨다. 매년 이 계절에 찾아오는 열대야는 해를 거듭하면서 더 지독해지는 것 같다. 불면증도 깊어진다. 김은 선풍기 예약 버튼을 누르려다 그만뒀다. 에어컨 없는 8평짜리 원룸은 창문이 딱 하나라 바람 길이 없다. 정체된 공기를 억지로 순환시키기 위해 하루종일 선풍기를 돌리다 보면, 모터는 터질듯이 뜨거워졌다. 핸드폰 액정이 반짝이며 새벽 3시를 알려줬다. 그러나 좀처럼 잠이 들지 않는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렇게 오늘도 한 시간쯤 눈을 붙이고 출근 준비를 하겠지. 잠 못 자는 날들이 쌓이다보면 포기하는 법도 배우게 된다. 의사는 순응이나 적응 같은, 집착을 버리라는 말을 던지지만 의학적 조언이 위로를 주진 않는다. 왼쪽 브라 끈 밑으로 땀이 주룩 흐른다. 와이어가 갈비뼈를 지긋이 눌렀다가 몸을 뒤척이면 허공에 뜬다. 거추장한 와이어와 그 틈 사이의 뜬 공간 같은 어중간한 존재. 너무 어중간해서 갖다 붙일 이름조차 없는 그런 존재가 바로 나라는 생각을, 김은 밀어내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었다.


“뭘 봐 이 자식아”


“너 내가 유통기한 지난 우유라고 시방 무시하냐?”


김은 눈을 꿈뻑이며 냉장고 손잡이를 잡고 잠자코 서있었다. 잠을 하도 못 자다 보니 이제 꿈에서도 이런 취급을 받는구나.


“야 너 꼴아 보면 다냐? 이 몸 식는다. 문 곱게 닫고 쳐 자라”


“말 곱게 하세요. 초면에.”


손잡이를 움켜쥔 오른손에 힘을 주면서 내뱉었다. 무슨 정신으로 받아쳤는지 모르겠다. 다만 냉장고에서 흘러나온 냉기 덕에 가슴 한 켠이 시원해진 기분이다.


“얼씨구? 가게 주인한테 속아서 산 이 몸을 환불 요구도 못 하길래 숙맥인 줄 알았더니 것도 아니네?”


“… 어쩐지 그 인간 우유를 내 쪽으로 밀더라니 역시”


“뭐 그런거지. 인간사 자체가 약하면 사기 쳐도 된다는 불문율로 굴러가지 않던가.”


“정확하겐, ‘나에게도 갑질 할 기회만 달라’겠지요.”


“그래. 결론은 니가 얕보였다는 거야.”


유통기한 지난 우유가 김을 바라보면서 깔깔 거렸다. 김은 당장 우유를 냉장고에서 꺼내 바닥에 패대기 치고 싶었지만, 야밤에 방바닥 청소를 하고 싶진 않았다. 그보다는 꿈을 빌미로 다른 것을 해보고 싶었다.


“당신 냉장고에서 끌어낼 거에요”


“뭣?”


“어제 오늘 시원한 냉장고에 누워서 빈둥거린 게 당신의 일과였겠죠. 하지만 나는 당신이 쓴 전기세 번다고 에어컨도 안 틀어주는 사무실에서 갈렸어요. 적반하장은 이럴 경우 쓰라고 있는 말이겠죠. 지금까진 냉장고에서 냉기를 쏘며 지냈겠지만, 책상 위에 올려두면 어떨까요. 이 방은 아주 더워요. 그리고 선풍기는 제 껍니다. 당신은 책상 위에서 이 뜨거운 열기를 면마다 고루 받으면서 서서히 온도가 올라가겠죠. 하지만 초반에는 당신 온도가 이 방 온도보다 낮아서 곽 표면에 물방울이 맺힐 거에요. 아무리 우유곽에 방수필름이 붙어 있다고 해도 땀이 차서 흘러내리는 축축한 느낌. 당신도 느껴보세요.”


“야이XRDGSDJFIOJSJOOFJJSOJD~!!!"


김은 아름다운 욕을 속사포로 쏟아내는 우유곽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왼손으로 움켜쥐었다. 우유는 비명을 고래고래 질렀지만 그 자체가 몸을 흔들진 않았다. 그래서 이 비현실적인 상황이 더 현실적인 장면으로 느껴졌다.


2차 건강검진 통지서를 펼치고 그 위에 우유를 올려뒀다. 김은 책상 아래 철푸덕 앉고는 선풍기를 틀어서 바람을 얼굴로 돌렸다. 땀에 젖은 머리가 바람에 휘날리는가 싶더니, 얼굴에 챨쌱 붙어버렸다. 김은 눈을 감고 선풍기 바람에 흔들리는 손눈썹을 느끼며 그대로 묵묵히 바람을 맞았다. 선풍기 날개 돌아가는 소리에 우유가 뱉어 낸 욕도 파묻히는 듯 싶었다.


“이봐 냉장고 주인. 선풍기 좀 같이 쐽시다요.”


“흥입니다.”


“아 뭐 서른 넘어서 유치하게 이러지 말고 선풍기 같이 쐬자니까요.”


“말 곱게 해도 돌려줄까 말까에요. 계속 그렇게 자극해도 얻을 건 없습니다.”


“아씨. 야. 나 꿈 아니라고. 니가 하는 말 다 들어줄테니까 선풍기 좀 돌려봐라 진짜.”


김은 입술을 옴싹 거리다가, 무언가 결심한 듯 눈을 떴다. 회전 버튼을 꾹 누른 뒤 입을 뗐다.


“저도 이렇게 살고 싶은 건 아니에요. 고집스럽게 높임말을 쓰고 있지만, 그게 당신을 존중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는 체면을 차리고 싶은 까닭이에요. 물론 당신 말고 나 자신에게. 이것 만큼은 제가 스스로에게 내가 어느 정도 급이라는 최면을 걸고 싶어서예요. 이게 뭐가 그렇게 대단한 거냐고. 거추장스럽기만 하다고 그렇게 평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저는 제가 바라는 수준이 있고 그 수준이 지향하는 개인적 목표와 다짐도 있어요. 그리고 그것을 고수하는 게 자존심과도 같아요. 당신은 처음 보는 저에게 다짜고짜 반말을 하고 비속어를 날렸지만, 그게 친근감의 표시는 아니었을 겁니다. 저 역시 그런 당신을 높임말로 응수하면서 당신과 나 사이에 선을 그었어요. 아무리 제가 유통기한 지난 우유 환불 요구도 못하는 소심하고 맹한 사람이라도 당신처럼 글러먹은 수준은 아니라고. 난 당신보다 높은 등급이라고. 그렇게 어줍잖은 엘리트 의식을 내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경멸을 표현하는 덴, 욕만 있는 게 아닙니다. 이렇게 선을 긋고 이쪽과 저쪽을 구분해서 언어 표현으로 분명한 계층을 나눠버릴 수도 있어요. 어떤 면으로 이렇게 우월 의식을 표현하는 게 더 저급한 수준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 결론이 뭐야?”


“반말하지 말라고요. 기분 나쁩니다.”


“싫은데? 너도 그냥 반말하면 되잖아. 새벽에 땀 뻘뻘 흘리면서 잠도 못자는 사람이 무슨 예의를 차린다고 자존심이고 등급이야. 워낙 어중간해서 이름도 없는 존재는 서로 간에 지금보다는 더 편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편하다는 게 예의를 글러먹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닐겁니다.”


“그 예의란 놈은 서로 간에 합의를 하면 허들을 낮출 수는 있을텐데.”


“우리가 그런 사이가 아니니까 그렇습니다.”


“그러게 그런 사이가 되려고 지금 말 걸고 있잖아. 아 짜증. 너 엄청 꽉 막혔구나.”


김은 양반다리를 풀고 벌떡 일어나서 우유곽 머리를 눌러 입구를 찢었다. 찰랑 거리는 하얀 액체를, 미지근하게 걸쭉한 그 액체를 목구멍에 탁 털어 넣었다. 외곽에 송글송글 맺혔던 물방울들은 경사로를 따라 또르륵 흘러 그대로 김의 얼굴로 떨어졌다. 김은 얼굴 위로 후두둑 떨어진 물방울을 맞으면서 곧 해가 뜨겠구나. 기어이 밤을 새는구나. 허무감을 느꼈다. 밤을 지새는 날은 전구도 켜지 않고 어두운 방에 누웠다 앉았다 하면서 망상을 펼치기 일수다. 그런데 오늘은 모르겠다. 상상인지 아니면 꿈인지. 혹은 현실인지. 아무렴 어떨까 싶어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샤워 물줄기를 묵묵히 맞고 섰다가 외쳤다.


“아오 신발. 유통기한 지난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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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 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최영감은 뒷꼭지에서 애옹대는 소리를 모두 무시하고 현관바닥에 놓인 에스빠드를 꿰신었다. 마당에 한발짝도 떼기 전에 거센 비가 후두둑 떨어져서 황급히 문을 닫았다.

 

"아시바 신발 밑창이 그새 다 젖었잖아"

 

쿵쿵대는 이어폰을 빼서 호주머니에 넣고는, 삼선 운동화로 갈아신었다. 무릇 사람은 외양이 전부다는 신조를 가지고 살았지만 단칸방을 애옹이네가 차지하고 부터는 무채색 패션만 고수 중이다. 그나마 삼선 운동화는 방수가 되고 튼튼하여 이렇게 비가 추적거리는 날에도 달리기를 하기엔 손색없다.

 

"삐용 삐용"

 

"애옹애옹애애애애옹"

 

"아오 시끄러 망할노무 괭이생키들"

 

신발을 갈아신고 뒤를 돌아보니 그새 방안에 누워있던 녀석들이 몰려나와 애옹거린다. 초롱한 눈빛이며 연신 입술을 핥아내리는 혓바닥이 마음을 붙잡지만, 최영감은 욕지꺼리부터 내뱉고 본다.

 

"계속 시끄럽게 울면 다 나비탕으로 만들어버릴테다. 이딴 인력거 모는 것 보다 네 식구 다 탕재료로 내다파는게 훨 이득이라고!!"

 

"냐아아아앙ㅇ냐앙냐아앙앙앙"

 

"아 알았다고 올때는 캔 사올게 흑 내팔자야"

 

고양이줄 왼쪽 맨 끝에 앉아서 배웅한답시고 삐삐-거리는 삐약이가 눈에 밟혔다. 콧물을 연신 흘리고 재채기도 하는데 이틀 전부터는 눈꼽도 끼기 시작했다. 고양시 지식인에서 찾은 허피스인가 쿨피스인가 하는 병에 걸린 건가 싶어서 걱정이 된다. 하지만 라면 끓일 가스비 내는 것도 빠듯한 형편이다. 고양이 다섯마리를 키우는 것도 분에 벅차는 일이다. 비만 그치면 이번에는 기필코 내쫓고 말리라. 피맛골 구석탱이 월세촌을 내달리면서 최영감은 오늘은 따불 손님만 걸려라 주문을 외웠다.

 

보통 비오는 날은 인력거 장사가 잘된다. 왜냐하면 28년 은평올림픽을 위해서 나라 전체에 탄소계엄령이 내렸기 때문이다. 뭐 이제사 하는 말이지만, 그건 신의 한수였다. 블렉시트 후 유럽 권력구도가 재편되나 싶더니 텍사스보다 먼저 은평구가 서울시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리란 건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기대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고 더 놀라운 것은 정말로 은평구가 독립을 했다는 데 있다. 어디서 재력을 긁어모았는지는 모르겠다만, 지자체 자립도 1위 성남시를 누르고 은평구는 한반도 최고의 인프라와 금융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새에 올림픽을 개최하겠단다. 88년 이후로 30년 만에 올림픽 재탕이라니 이것 참. 18년도에도 온실가스 감축으로 나라 체면이 어쩌고 저쩌고 하더니 이제는 행정은 스탈린이 최고랜다. 나랏님께서는 매연을 내뿜는 자차를 말끔히 허가운영제로 바꾸고는 이윽고 타이어값을 아파트 한채 값으로 올려버렸다. 그러니 유가가 떨어지고 전기차가 나오면 뭐할까. 바퀴가 없으니 말짱 도루묵이다. 그리고 은평구에서는 서울시와 협력을 맺고 인력거조합을 만들었다. 청년실업을 해소한다는 명분까지 내세웠다. 바퀴 파동 후엔 택시도 수지타산이 안맞아 멸종 수준이고 버스카드는 부의 상징이 돼버렸지.

 

구질구질한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종로 차고지까지 도착했다. 철인59호를 꺼내서 말끔히 닦고 뒷자리에 폭신한 방석도 깔고 방울을 손가락으로 살짝 밀면서 영엽개시를 했다.

 

그런데 손님이 없다. 왜죠.

 

빗방울은 가늘어지는데 그칠 기미는 안보인다. 종로에서 종각을 지나 광화문까지. 조선시대에는 왕이 행차하던 길이라고 역사책에서 본 적 있다. 그렇게 왕이 앞으로 뒤로 사람을 잔뜩 끌고 마실을 나가면, 하찮은 백성들은 머리를 땅바닥에 조아리며 왕을 찬미하거나 뒷길, 즉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피맛길을 이용했다고 한다. 조선이 끝나고 일제가 끝나고 현대전이 오면 뭣하나. 여전히 종로바닥은 있는 자들의 통로다. 나 같은 불가촉천민은 피맛골에 기거하고.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자가 성씨를 가질 수 있게 되고, 호주제가 폐지되고, 그리고 노력을 하면 누구나 대학을 가게 되었다. 세월이 현대에 가까울수록 과거보다 더 많은 사람이 언문을 깨치고 대학을 갔다. 학력은 천청부지로 올라갔는데 그 고학력으로 뚫을 수 있는 자릿수는 고꾸라지기 시작했지. 누군가 내게 너도 대학 나와 인력거 몰 거라 귀뜸해줬으면 웃어 넘겼을테다. 멱살을 잡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내 장점은 흙수저 동기 중에 유일하게 학자금을 다 갚았다는 점, 그리고 4대보험에 퇴직금에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는 직장을 가졌단 것 뿐이다. 그런데 손님이 없다. 사납금을 어케 납부해야 하지...

 

"이보시오. 인력거 양반"

 

상념에 젖어 터덜터덜 종로바닥을 훑은지 3시간째, 이제 점심때가 다가올까 싶어 단성사 골목까지 내려왔더니 자그마한 손님이 우산을 들고 나를 불렀다.

 

"예에. 타십시오. 어디까지 가십니까"

 

"읏챠. 이 인력거는 방석도 폭신하니 좋구만. 내 담배 하나만 물고 목적지를 알려줄테니 자네도 잠깐 숨고르게나."

 

뻐끔뻐끔

 

작은 손님은 앞섶에 손을 넣고 부시럭 거리더니 본인 팔길이보다 더 긴 곰방대를 꺼냈다. 그리고 또 앞섶을 뽀시락 거리더니 부싯돌을 꺼내 불을 피웠다.

 

최영감의 눈이 휘둥그레지기엔 아직 더 남았다. 그는 그보다 더 요상한 것을 보았다. 부싯돌을 탁탁 튕기는 손가락에, 곰방대 중간쯤을 살짝 움켜진 손에 복슬복슬한 털이 잔뜩 나있는 것이 아닌가. 최영감은 노골쩍으로 침을 꼴딱 넘겨버렸다.

 

"저어.. 어디까지 가십니까?"

 

"뻐끔뻐끔. 날이 축축해서 그런가 담배가 눅눅하구만. 일단은 여기 종로에서 종각까지 갑세. 가서 내 자세한 길을 한번 더 알려주겠네"

 

아무래도 오늘은 재수가 옴 붙은 날인 것 같다. 최영감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와서 소개팅 때 신으려 샀던 새 에스빠드를 홀딱 적셔버렸다. 급한데로 거꾸로 세워는 뒀는데 물이 빠져도 쪼글쪼글해지진 않을런지 냄새가 나진 않을까 싶다. 게다가 내 뒷통수에 점을 찍고 애옹대던 고양이들. 연신 코를 훌쩍이던 삐약이도. 여느 때와 달리 손님이 없는 한산한 종로길도 이상하다. 이윽고 첫손님을 이렇게 박물관에서 튀어나온듯 괴이쩍은 인물로 태워버렸다.

 

첨벙첨벙

 

빗방울이 떨어지는 종로 도로를 뛰면서 최영감은 어짜피 대로에 아무도 없는데 이 손님을 패대기 쳐버릴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 순간!

 

"이보게. 자네 옷에 괴이한 털이 잔뜩 묻어있구만?"

 

"아..아하. 네. 집에 고양이가 잔뜩 있어서 그놈들이 벗어놓은 옷 위에 자꾸 올라탑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고양이 털이 묻었네요."

 

"호오. 고양이가 한마리가 아니라 여러마리란 말인가?"

 

"네. 작년 겨울부터 밥 달라고 앵앵 거리던 조그만 애옹이를 몇번 방에 재웠더니 아예 올 봄에는 배가 불러서 해산하려고 찾아왔더라구요. 그덕에 집에 입이 늘었습니다."

 

"새끼들이 털 색이 다 다른가 보군. 자네 옷에 묻은 털이 그렇네."

 

"네. 눈 빼고 죄다 시커먼 녀석도 있고 고등어도 있고 발만 하얀 깜둥이도 있고 그리고 삼색이도 있습니다. 삼색이가 막내라 날때부터 조그맣더니 근래는 코를 훌쩍이네요."

 

"그렇구만. 쩝쩝. 그런데 자네는 이름이 뭔가?"

 

"저요? 음.. 이름은... 인력거꾼에게 무슨 거창한 이름이 있겠습니까. 애늙은이 성질이 있어서 친구들은 최영감이라 부릅니다."

 

"껄껄 나이도 젊어 보이는데 영감이 뭔가 영감이. 그래도 부모가 지어준 이름이 있을 것 아닌가."

 

“그게 하도 사람들이 놀려서요. 최모호입니다. 모을 모() 여섯 냥쭝 호() 자를 씁니다.”

 

“아주 의미심장한 이름이구만. 그래 여섯 냥씩 모으고 있는 건가?”

 

“네에. 보통 그런 반응을 하십니다. 이름보다 육백원으로 더 불리기도 했고요. 그래서 최가나 최영감 쪽이 더 편합니다.”

 

뻐끔뻐끔

 

“그런데 손님. 이제 종각까지 거의 다 왔습니다. 어디에 내려드릴까요?”

 

“기왕 온 김에 광화문까지 가보겠나? 실은 내가 서울시청으로 가는 길이거든”

 

“음.. 손님 저는 종로대로 출입권만 가진지라 광화문 지나 서울시청 가는 길은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내게 출입권이 있으니 걱정말게. 인력거도 출입 가능하단 말이네. 영 저어하면 내 요금을 따따불로 줌세. 어떤가?”

“시켜만 주십시오

 

괴이쩍다 괴이쩍다 했지만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린가 싶기도 하다. 은평구가 서울시로부터 독립할 무렵부터, 국가 체제가 바뀌었고 나랏님이 연임을 했다. 자립도 1위 은평구와 2위 성남시가 버티고 있어도, 행정수도 세종시가 있어도 여전히 힘을 가진 곳은 서울시이다. 서울시에서 모든 계약이 이뤄지니까. 때문에 나랏님은 경찰 외에도 군을 투입해서 통행을 엄격히 차단하고 있는 게 바로 광화문 너머 서울시청이다. 서울시청에 근무하는 자들도 고작 서울시 공무원일텐데 세종시 정부청사보다 더 엄중한 경비를 선다니 우습기도 한다. 여하간 출입권이 있다니깐 좋으면 들어가서 따따불로 받는거고. 아니면 입구에서 요금만 받고 손놈은 패대기를 칠 테다.

 

“그런데 말이네. 아마도 자네는 날 내려주고 바로 집으로 내달려야 할거세.”

 

“네? 무슨??”

 

“글쎄 자네는 날 내려주고 바로 집으로 가야한다니깐”

 

“저.. 그게.. 손님. 제가 오늘 끼니도 거르고 종로바닥에서 4시간째 인력거를 몰고 있는데 손님이 첫손님이에요. 따따불로 주신다고 해도 오늘 사납금을 다 낼 수 있을지 모르고요. 때문에 퇴근시간대는 물론이고 밤까지 해야됩니다.”

 

“내 요금을 5배 줌세. 그러면 어떻겠는가.”

 

최영감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대체 이 손님은 누구일까. 목소리 가운데 가릉가릉 소리가 들린다. 담배를 사탕처럼 쩝쩝거리며 피운다. 게다가 손에 잔뜩 난 복슬복슬한 털은 무엇이란 말인가. 최영감은 손님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혔다. 손님의 정체가 무엇이든 여느 손님과는 아니 일반 사람들과 확연히 다르다는 의심이 솟구쳤다.

 

최영감은 광화문 사거리 앞 우체국 앞에서 멈춰섰다.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는 엉거주춤 허리를 들었다.

 

“손님”

 

“뭔가?”

 

“잠깐만 실례를 해야겠습니다”

 

“자네는 후회할걸세. 이대로 왼쪽으로 돌아 목적지에 날 내려주는게 나을텐데.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이는 법이지”

 

“하지만 저는 고양이가 아닙니다”

 

“난 이미 자네에게 꼭 필요한 조언을 주었다네. 그런데 자네는 그걸 무시했지. 여기까지는 괜찮았어, 이제는 불필요한 호기심으로 오늘 단 한번의 여섯냥쭝 기회를 걷어차려하고 있네. 이제 고양이가 무엇인지 알겠는가.”

 

최영감은 허리를 들다 말고 멈췄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을 계속 달리느라 신발께부터 무릎 아래까지 죄다 엉망이다. 그런데다 지금 자세가 민망하리만치 어색하다. 이대로 허리를 돌려 좌석 가림막을 젖히고 손놈의 얼굴을 확인해야할까.

 

 

손님이 피우던 곰방대로 팔걸이를 세 번 두드렸다. 최영감은 마른침을 꼴깍 삼키고 허리를 다시 구부려 손잡이를 잡았다.

 

아. 모르겠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혹시 지금은 꿈 속이고 나는 귀신에 홀린 게 아닐까. 삐약이 놈이 가슴팍에 또 올라와 웅크리고 자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게 꿈이라면 일어나서 삐약이 눈꼽이나 떼줘야겠다.

 

모퉁이를 돌아 왼쪽으로 꺽자마자 헌병이 인력거를 막아섰다. 해골그림 마스크, 두툼한 방탄헬멜, 선글라스를 낀 시커먼 장정이 총을 오른팔 위에 얹어놓고 집게손가락을 걸쇠 옆에 뒀다. 위압적인 모습 아래 중저음으로

 

“민간인 출입금지 구역입니다.”

 

“그게.. 저...저는...(꼴깍)”

 

최영감이 또 침을 꼴깍 삼키는 순간, 뒷좌석의 가림막이 촤르륵 걷혔다. 덩달아 지붕의 방울이 딸랑거려 최영감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리고 놀랍게도 방석 위에는!

 

커다란 삼색 고양이가 왼손으로 곰방대를 오른손으로 술병을 쥐고는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있는게 아닌가. 이 비오는 날 연보라색 도포를 입고 머리엔 갓을 쓴 고양이가 형형한 칼눈으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뚱뚱한 삐약이를 본듯하여 입을 벌리고 꿈뻑꿈뻑 뒷좌석을 지켜보던 최영감은 빗물이 묻은 손등으로 연신 눈알을 비볐다. 두 눈을 다시 크게 뜨고 보아도, 뒷 좌석 손님은 삐약이, 아니 큰 고양이였다. 아까 내가 태웠던 손님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어리둥절했다.

 

“통과하십시오”

 

어리숙하게 고개를 반쯤 젖히고 섰던 최영감은 헌병이 통과를 외치고 통행문은 열고 거수경레를 붙이는 광경이 이제 놀랍지도 않았다. 그냥 이 모든 것이 꿈밭을 거니는 느낌이었다.

 

“자네 좀 놀란 기색이더군”

 

“지금 꿈인지 생신지 모르겠습니다.”

 

“꿈은 아닐걸세. 빗물이 자네 몸을 차갑게 젹시고 있지 않은가”

 

“대체 손님은 누구십니까”

 

“나? 나는 대낮에 도포를 입고 곰방대를 물고 인력거 방석 위에서 홀짝홀짝 술을 들이키는 한량이지”

 

“종속과목강문계 중에서 어디에 속하시나요?”

 

“음... 자네들 인간계 분류로는 아마도 고양잇과가 아닐까 싶네만. 그런데 그게 중한 것인가? 아까 자네도 군인을 보아서 알겠지만, 세상엔 자네가 모르지만 당연한 것도 많다네”

 

“제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손님이 제 돈을 떼먹지 않을까 싶은 걱정뿐입니다요”

 

“하하핫 자네의 소심한 호방함이 마음에 든다니깐. 당연히 보수를 두둑히 챙겨줌세. 그러니 나를 내려주고는 곧장 집으로 달려가게. 아직 늦지 않았다니까. 대문을 넘자마자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걸세. 자 저만치 팻말이 보이는가. 저 앞에서 나를 내워줌세”

 

인력거는 손님의 곰방대가 가리킨 팻말 앞에서 정확하게 정차했다. 가림막을 확 젖히고 예의 우산을 펼치고 손님은 내렸다. 최영감은 멀뚱히 서서 손님의 그 우아하고 사뿐한 발사위를 감상하고 있었다.

 

손님은 붉은 비단 주머니를 건넸다. 최영감은 손가락을 휘감는 비단 감촉 너머로 묵직한 은전의 무게를 분명히 느꼈다. 사르륵 비단 촉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손님은 들고 있던 술병을 건넸다. 얼떨결에 술병까지 잡고서 어리둥절하여 말을 더듬었다.

 

“어...쓰레기 처리는 아무리 그래도 좀...”

 

“이녀석아. 그건 쓰레기가 아니야. 모양새가 볼품없어도 조선백자니라. 그리고 백자 값만 해도 타이어 10개는 사고 남을 거다. 하지만 병보다 그 안에 든 것이 더 귀한 것이지. 자네 집에 골골대는 삼색이에게 먹이게. 명심해야 하네. 그건 고양이에겐 명약이지만 인간에겐 독이야. 해로워도 이보다 해롭지 않을 만큼 해로운 약이라네. 한 방울도 먹어서 안된다네. 알겠나. 지금 당장 집으로 달려가게. 이따위 인력거는 여기다 버리고 집으로 가란 말이네. 자네 집에 있는 삼색이는 아주 귀한 분이라네. 나도 왜 그분이 자네를 택했나 모르겠다만, 역시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 있지. 그 분께 그 약을 먹이게나”

 

“어.. 삐..우리 삐약이 말씀이죠?”

 

“.....”

 

“꼭 그런 촌시런 이름으로 그분을 칭해야겠나”

 

“그치만 삐약이는 막내라 그런지 조그맣고 젖도 잘 못 물고 소리도 희미하게 지르는데다 형제들이 눈도 뜨고 제 어미 사료를 뽈뽈 거리며 뺏어먹는데도 발걸음도 잘 못 떼는걸요. 오늘 내일 할정도로 기침이랑 콧물이 심하고 눈꼽도 꾀어서 영 비실..”

 

딱!

 

곰방대가 허공을 가르고 최영감의 이마 정중앙을 찍어버렸다.

 

“아이코 내 대가리가 깨진다. 고양이가 사람을 친다. 아이고 아이고 두야”

 

“이녀석아. 여기서 나랑 농담 따먹으며 엄살 피운 시간이 없다. 어서 한달음에 달려가거라. 그 분을 살려야 너가 산다.”

 

“... 근데 진짜 이거 제가 먹으면 안되나요?”

 

“응 안돼. 그거 먹으면 너 고자된다”

 

“후딱 가겠습니다.”

 

최영감은 비단 주머니와 술병을 가방에 넣고 달음박질을 치기 시작했다. 뭐가 먼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건지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이 안되는데 그런데 그냥 질주했다. 일단은 그 뚱뚱한 고양이가 시키는 대로 해볼 셈이다. 밑져야 본전이니까. 술병 안에서 찰랑 대는 술을 들이키고 싶은 충동이 스믈거리지만 그게 무슨 맛인지도 모르는데 혹시 먹었다 진짜 고자가 되면 안되니...깐. 그리고 두둑이 넘긴다던 보수는 5배가 훨씬 넘는 것 같다. 그런 촉이 온다. 그러니깐 집으로 가자. 가는 길에 애들 캔도 사서 가자.

 

끼이이익

 

문을 열어젖히고 축축한 신발을 벗지도 않고 방에 들어왔다. 아침과 달리 고양이들은 방 한가운데 동그랗게 모여 집주인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최영감은 전구불을 밝히고 방 가운데로 갔다. 고양이들이 모두 모여 체온을 옹기종기 나누고 있는 그 가운데 삐약이가 축 처진 채 누워있었다. 최영감은 손바닥만한 삐약이를 주워들어 자기 심장께에 올렸다. 찬장에서 깨끗한 수건을 꺼내 조심스럽게 감싸고는 손바닥을 비벼 삐약이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조그만 녀석이 움찍거리지도 않는다. 뭔가 배꼽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것 같다. 연신 손바닥을 비벼서 삐약이의 가슴 언저리와 머리를 문질렀다. 그러기를 30분째. 드디어 가늘게 삐-삐- 하는 소리가 들렸다. 최영감은 조심스럽게 왼쪽 어깨에 삐약이 머리를 걸치고는 부엌에서 미지근한 물을 만들었다. 아까 손놈이 건넨 붉은 비단 주머니 끝을 젹셔서 눈꼽이 붙어 더러운 삐약이의 눈을 살살 닦아 주었다. 손눈썹이 엉켜붙어 애를 먹었지만 마지막 눈꼽까지 떼어내니 살짝 눈을 뜬다. 연한 녹색과 초록색과 노란색과 그리고 보라색이 뒤섞인 눈동자가 최영감과 시선을 맞추더니, 눈을 감았다 다시 가늘게 눈을 떴다. 최영감은 술병의 액체를 그릇에 부어 바닥에 놓았다. 삐약이는 그것에 처음부터 제것인양 핥기 시작했고, 다른 식구들은 애옹대는 소리 하나 없이 이를 모두 지켜보았다.

 

비는 좀처럼 그치질 않았다. 그 일이 있고부터 열흘을 더 쏟아부었고, 강한 비바람이 몰아쳐 대문 여는 것도 버거웠던지라 최영감은 방구석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버텼다. 마침내 비가 그친 뒤, 대문을 살포시 열고 나가니 근 이주만에 보는 햇살이 하얗게 부셔서 최영감의 눈을 마구 때렸다. 햇살조각을 함빡 들이마시며 주위를 둘러보니, 최영감네 단칸방 외엔 건물이 죄다 부서졌다. 마치 산사태라도 난 모양새로 토사와 나뭇가지가 지천에 깔렸다.

 

이게 무슨 일이야

상황 파악이 되지않는 최영감은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꿈인지 생신지 자기 볼을 마구 꼬집었다. 바로 그때

 

“이보게 인력거 양반. 내 가볼 데가 있는데 여기에 내가 아는 인간이라고는 자네가 유일하니, 그대가 나를 좀 데려가 주질 않겠는가”

 

익숙한 손님의 기운을 느끼며 최영감은 대답했다.

 

“삐약이 너이생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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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_ 선정자 : 마스터충달
연재글의 1화 분량을 써주세요.
새 연재글도 좋고, 이전에 썼던 글에 이어서 쓰셔도 됩니다. 

합평 방식
분량은 자유고 합평방식은 자유롭게 댓글에 달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맞춤법 검사기

공지사항
1. 합평 덧글 달아주세요.
2. 출석부에 글/합평 참석여부 남겨주세요
3. 불참 시 필사 과제 '권장'드립니다~!

합평 받고 싶은 부분
재미가 있는가.

하고싶은 말
http://cafe.naver.com/peaceofredtea/457    <- 와 내용이 이어집니다.
상단 브금을 들으면서 읽어주세요.
닥터후 보고서 내용의 진위 여부는 SF로 생각해주십시오 ;ㅅ;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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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총회>



제 3497회 임시총회 결정문



1.

금일 오후에 갑판에서 일어난 불미스런 일로 인하여 임시총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주요 논의점은

가) 정박 일정 재고

나) 감염자 처분

두 가지입니다. 각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결정합니다.



2.
  총회 위원들과 각 전문 위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숙고한 결과, 나흘 뒤 시드니 항에 정박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물론 최근 6개월 간 바다를 표류하는 좀비 시신을 관측하는 일이 극히 드물었습니다. 때문에 오늘 오후에 벌어진 일로 인해 위원진은 물론이고 녹차호 모든 인원이 큰 충격을 받았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러나 닥터후의 진술과 같이 그것은 대단히 예외에 속하는 것일 뿐이고, 우리는 더이상 일정을 미룰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음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식수와 식량 부족으로 배급에 차질을 빚은 지 오래고, 정수 필터 역시 여분이 동이 난지 오래라 서둘러 대체 도구를 찾아야만 합니다. 녹차호 내 구급품과 보급품 역시 턱없이 부족해 개인 배급은 물론이고 가디언 배급도 어렵습니다. 또한 열흘 전에는, 일찍이 녹차호 안에서 제정한 개인 물품 거래금지 규정을 위반하는 암거래 현장을 하위 갑판 제 31호 칸에서 적발한 건을 들어 실제 주민들의 상황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방증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녹차호 임시총회에서는 녹차호 주민의 사회와 생존을 두고 급박한 민생 어려움과 불확실한 좀비 공격을 저울질 했을때 후자를 감내하고 뭍에 오를만한 상황까지 왔다고 판단했습니다. 녹차호는 쾌항을 하여 시드니항구 근해 13km까지 접근한 후 금일로부터 나흘 뒤, 정오를 기하여 하선하겠습니다. 일반 주민과 승무원 60%는 그대로 배에 머무르고, 가디언 50%와 승무원 30%가 육지로 진입하여 필요 물품을 신속히 확보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항구에 가디언 10%와 승무원 10%가 만인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역시 대기하도록 합니다. 가디언 그룹은 승무원 단체와 협의하여 세부 항목을 정하고 위원회에 전달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3. 
  녹차호 규칙 제2조 3항에 따라 네아 위원은 감염자로 간주하고 그 처분을 친족 사피에게 위임합니다. 이는 동조 4항 '심리적, 신체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가 직접 처분하는 것으로 한다.'를 적용한 결정입니다. 
  위원회에서는 전문위원 닥터후가 제출한 관찰보고서를 물론 살펴보았습니다. 네아 위원의 신체 반응이 기존 감염자와 다른 부분도 분명히 있고, 특히 녹차호의 의료집단을 총괄하는 닥터후 위원의 보고서 4장 7번째 단락을 인용하자면 '기존의 감염자와 달리 N은 호흡수, 혈압의 변화가 5~7배 정도 천천히 일어났으며, 이 변화의 폭도 역시 기존 감염자 데이터와 다른 점이 있다. 가령 감염자는 감염 후 1시간 내 헤모글로빈의 철분자 탈리가 일어나 체내 산소량이 급감하고, 호흡수가 기이하게 적어지며 혈압 역시 60 이하로 떨어진데 반해, N는 혈압이 60~70 사이이며 호흡수 역시 이상을 기록할 정도로 떨어지진 않았다. 그러나 헤모글로빈 철분자 탈리는 분명히 관찰된 것으로 기존의 것과 속도와 정도 면에서 다르다고는 할 수 있어도 감여자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N은 분명히 기 감염자에게 물렸고 체액 감염이 되었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위원회는 녹차호를 하나의 사회로 규정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분명하고 엄격한 규칙을 제정했으며 이 규칙은 녹차호 주민이라도 그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평등한 규칙입니다. 특히 네아 위원은 총회의 임시 위원과 자문직을 겸하는 전문 위원으로서 규칙의 무게를 더 무겁게 적용받는 당사자입니다. 이는 네아 위원의 기여와 노고가 이 배안에서 특출나고 대체 불가능할 정도라고 하여 예외적 적용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점 역시 이해하고 있으며, 이 조항을 만든 바로 그 본인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번복되지 아니할 규칙이기에 결정을 미룰 수도 없으며 지체할 이유도 없습니다. 다만 상기 언급한 닥터후 보고서 동종 단락을 참고하여 타인을 공격할만한 위험 감염체로 전환하기까지는 시일이 더 걸릴 것으로 미루어 예상할 수 있기에, 그 처분을 시각을 다투는 즉결처분이 아닌 나흘 뒤 시드니항에 정박한 후 그 육지에서 사피 위원이 행하도록 결정하였습니다. 이러한 일정 배분이 특칙도 아니고 예외 적용도 아닌, 규정에 있는 조항을 모두 적용했으나 단지 상황적 특성과 전문위원 보고를 적용한 맥락적 용통성 합의에 지나지 않음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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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우울>, 앤드류 솔로몬, 민음사, 652쪽 맨 마지막 문단

주제 _ 선정자 : 얼그레이
 '잠', '짝사랑', '홍차' 세가지 단어를 활용하여 글쓰기
- 분량, 장르, 전개 방향 자유입니다.

* 필수 조건
세가지 단어가 모두 들어가야 합니다.

[추가 과제 - 필사하기]
불참하시는 분들 중에서 가급적이면 권장해드립니다.(의무는 아니에요)
자신이 좋아하는 글귀를 최소 노트 반장 분량의 글을 써주세요.
필사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문체나 표현등을 익히기에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글쓰기가 어려우신 분은 필사를 통해 천천히 시작하시는 방법도 좋은 방법입니다!
시도 좋고 소설도 좋고 수필도 좋습니다.
혹시 꾸준히 작성하실 분은, 일정한 분량을 잡고 꾸준히 진행해나가시는 것도 좋습니다.
글을 쓰신 분들 중에서 원하신다면 필사 과제를 추가로 더 작성하셔도 좋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새로생긴 '타임라인 게시판'을 활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합평 방식
분량은 자유고 합평방식은 자유롭게 댓글에 달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맞춤법 검사기
speller.cs.pusan.ac.kr

합평 받고 싶은 부분


하고싶은 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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