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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정 주제 : SF와 빠루
일곱번째 대멸종
유물을 발굴하는 일은 광고처럼 멋지지 않다. 말머리성운 221b 골목에 붙은 전광판이 번쩍거리면서 광고하는 그런 매끈하게 빗어 넘긴 정수리 갈기와 새까맣게 윤이 나는 치아를 가진 유물탐사꾼은 허구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유물탐사꾼은 30%의 노가다와 70%의 끈기, 10% 오염저항력으로 만들어졌다. 오염저항력보다 끈기가 더 중요한 게 바로 내가 말하려는 포인트다. 방사능이 그득한 잿더미 행성에서 유물을 발굴하는 건, 그만큼이나 지루하고 귀찮은 일의 연속이란 거다. 물론 그런 면이 수명이 하도 길어서 시간 죽이려고 우주여행을 하는 케베로스족이나 나처럼 느려터진 슬로쓰족이 이 직업을 가지게끔 작용하는 것일테다.
“취이, 초초 여기 뭔가 있다, 치이익”
“아아 갑니다요”
설명했지만, 유물을 발굴하는 일은 지루하다. 아주 지루하다. 이렇게 뭔가 있다고 불러도 막상 파보면 방사능에 버물린 고철 덩어리거나, 석탄 근처에도 못 간 화석꿈나무가 나온다. 여기서 의욕이 꺾이느나 안꺾이느냐에 따라 프로 유물탐사꾼이 판가름난다. 프로라고 해도 일생 열 개 남짓의 유물을 파내게 되고, 이들 대부분은 제다이연합 산하 우주역사박물관에 팔게 된다. 개인 소장꾼들이 돈을 많이 쳐주긴 하는데, 이들이 돈을 들이는 대상은 아주 갚어치가 있는 것들이고 그런 건 프로라고 해도 일생에 한번 만날까말까다. 그러니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광고는 거짓말이다. 그런데 속아서 삽을 쥐게 되면 평생 짝찍기도 못하고 폐허 속에서 쓰레기만 뒤지다 죽데 된다. 이게 현실이다.
“취이이이, 초초 여기 있다. 어서 파라. 서둘러다. 태양풍이 온다. 취익 취익”
아아 태양풍. 그건 심각한 문제다. 얇은 대기층이 있는 행성이지만, 태양풍은 여지없이 몰아칠 것이다. 기온차가 달만큼 나지 않는다의 문제일뿐 보호복을 입고 있어도 나를 순식간에 바싹하게 구울정도로 위협적이다. 아무튼 적당히 파서 유물 비슷한 낌새가 보이면 표식을 세우고 철수해야 한다. 그래야 태양풍이 모래를 몰고와서 이 곳을 뒤엎어놔도 내일 다시 찾아올 수 있다. 바삐 삽질을 하다가 퀭!하는 소리가 삽 끝에 걸렸다.
“테라핀, 이거 고철이야. 이거 아니야. 에이 오늘도 버렸네”
“치췻? 아니다. 고철 아니다. 네고가 지도줬다. 파야 한다. 취이이”
“네고? 지도? 야! 너 내 월급도 몇 달째 밀렸는데 네고한테 지도를 샀단 말이냐? 야이 악덕 사장놈아. 이거 삽 끝에 걸린는 묵직한 손맛과 꽹한 소리가 금속이야. 뭔 놈의 유물이라는 거야?”
“칫칫 여기 지도에 보면 유물이다. 같은 고철이 아니다. 이 지도는 어스족 유물 찾는다. 네고 돈 안줬다. 네고가 돈 줬다. 이거 파면 돈 준다.”
“아니 뭔 소리야. 네고가 돈을 줬다니? 네고는 돈 받고 지도를 팔지 돈을 주면서 지도를 준다... 다시 말해보세요. 사장님. 네고가 돈이랑 지도를 주면서 여기 표식점에 가서 파라고 했단 거야? 파서 안에 들 건 가져오라고 했단 거지?”
“그렇다. 췻취잇. 거짓말 아니다. 네고 돈 줬다. 네고 지도 줬다. 우리 가져가야 한다. 치치치치익”
이건 좀 이상한 일이다. 네고시에이터 놈들은 우리 같은 유물탐사꾼이 캐낸 물건을 우주역사박물관에 되파는 일종의 중개업자다. 우주탐사선이 새로 발견한 행성에 우리를 보내서 유물을 캐내게 하청을 주거나 탐사선이 흘린 지도를 빼돌려서 유물탐사꾼에게 파는 일을 한다. 이렇게 지도랑 돈을 쥐어주면서 파오라고 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지. 어쨌거나 돈을 받았단다. 여기를 파내서 뭔가 나오면, 아니 뭐가 나오던 간에 그걸 가져다 주면 또 돈을 주겠다는 거다. 보호복 헬맷 스크린 일기예보엔 정확히 3시간 후에 태양풍이 1km 밖에 도착한다고 떴다. 타이머를 2시간으로 맞췄다. 2시간 안에 승부를 봐야 한다.
나는 덤프지프로 돌아가서 장비백을 들고왔다. 삽 끝에 걸린 건 금속이 분명하지만, 원본을 그대로 가져가려면 좀 더 섬세한 장비가 필요하다. 코토호쿠의 꼬리털로 만든 붓 10종 세트를 펼쳐놓고 현란한 손목 스냅으로 흙을 털어냈다. 흙의 알갱이가 가늘어지면서 점도가 진해졌다. 이건 무언가를 진흙 같은 수분과 점성이 있는 걸로 둘러쌓여져 있단 뜻이다. 삽으로는 점성있는 흙을 걷어낼 수가 없지. 5호를 네 번째 손가락에 걸고 7호를 엄지와 검지로 살짝 잡아서 손목 스냅에 더 탄력을 더했다. 내가 이렇게 한 손에 2가지 붓을 잡고 작고 연약한 손가락을 움직여 기구를 수시로 바꾸면 다들 탄성을 자아내곤 했다. 이게 바로 내가 아직까지 유물탐사꾼으로 고용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지.
마침내 하부까지 다 파냈고, 얇은 진흙으로 뒤덮인 길쭉한 물체를 파내자마자, 타이머가 위험신호를 불렀다. 아뿔사! 집중하다보니 2시간 타이머도 무시하고 태양풍이 한계선 0.8km 안쪽까지 이동 중이다. 허겁지겁 길쭉한 물체를 손에 쥐고 테라핀과 덤프지프로 달렸다. 덤프지프에 AT필드 기능을 키면 방열필름을 선체 표면에 겹겹이 씌워서 아마도 태양풍의 온도를 막아줄 것이다. 그리고 모래에 묻혀도 하루 남짓 기다리면 다시 지표로 나갈 수 있다. 마침 덤프지프 안에는 식수도 충분하니까.
“취이취이 지도에 네비도 달렸다. 이거 스냅챗으로 네고에게 알린다. 초초 한다 취잇”
“어.. 이런 건 사장인 테라핀이 해야 하는거 아냐? 나 네고랑 일면식 없는데”
“취취 네고가 초초 고용했다. 네고가 초초 원한다. 한다 초초 치치치치”
이건 상황이 더 아리송하게 돌아간다. 보통은 무소식이 희소식, 모르는 게 약이다는 신조를 꿋꿋이 지키면서 사는데, 이건 나랑 관련된 일인데 나는 모르게 돈이 왔다 갔다 하니깐 살짝 기분이 나쁘다. 테라핀이 건내 준 지도를 펼쳐서 보호복 스크린 활성화 단추를 연결했다. 연이서 3d 스크린이 푸른선을 그리며 덤프지프 안에 펼쳐졌다. 네고로 보이는 인물 5명이 웅성 거리며 등장했다.
“어.. 유물사냐..아니; 아니지. 유물탐사일을 하는 초초입니다. 지도에 나온 데를 팠더니 뭔가 길쭉하고 끝이 구부러진 물건이 튀어나왔네요. 태양풍이 근처에 와서 순수로 닦아내진 못했습니다. 일단은 프로텍트에 넣어서 밀봉보관을 하고 그쪽으로 이동해서 나머지 작업을 하려고 합니다. ”
“아.. 초초? 당신이 그러니까 <애쉴렌 초초 에피루스>인가요?”
“네. 이름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하핫. 초초는 별명이고 애쉴렌 에피루스가 이름입니다”
“저는 이번 발굴을 의뢰한 술루입니다. 지금 발굴한 물건 말인데요. 그거 구부러진 쪽이 위쪽입니다. 우리도 실물을 보는 건 처음이네요.”
“엇? 구부러진게 위라고요? 그럼 어.. 이렇게 잡으면 되는 건가요? 근데 이거 뭐에 쓰는 물건인가요?”
“지금은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지구족의 무기입니다. 아시죠? 우주력 416년 전에 핵전쟁으로 지구가 멸망한 거요? 거기 살았던 지구족이 사용했던 무기입니다. 유일무이한 살상무기라서 원본을 복원하려고 했는데 문헌으로 설계치를 알아내는 게 영 어려운 일이라서요. 이번에 원본을 찾게 되어 다행이네요. 방사능이 좀 묻긴 했는데, 대충 식수로 닦아내고 한번 쥐어보시겠어요? 사용법이 궁금해서요.”
“예? 제가요? 제가 이걸 왜?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는걸요. 그리고 이게 살상무기라니, 저야 슬로쓰족이라서 이 정도 크기와 둘레를 쥘 수 있지만, 보통의 우주족이 사용하기엔 아주 불편한 모양새와 크기인데요.”
“그건 그야 초초씨가 지구에서 일곱 번째로 멸종한 종족의 게놈을 복원해서 만든 휴매족과 슬로쓰족의 혼혈이기 때문이죠. 아시죠 탄생의 비화는?”
“예예 아무리 다문화 장려하는 우주연합이래도 게놈 복원으로 탄생한 휴매족과 그 혼혈은 태생 때문에 여러 불이익을 받죠.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발끈하지 마시고요. 지구력으로 서기 2020년경에 핵전쟁이 발발했죠. 지구의 역사 시간에 배우셨겠지만, 그 당시의 지구는 멸망 위기가 S급으로 위험행성으로 불류되었습니다. 다들 행성온난화나 바이오 테러, 화학 테러로 멸망하겠거니 생각했지만 의외로 국가간의 자존심 싸움으로 망했죠. 교과서에는 순식간에 지구가 불바다가 되었다고 적혔지만 실은 아니예요. 지구에 핵전쟁이 나긴 했는데, 그건 문명지를 태웠을 뿐이고 몇몇 지구족은 살아남았습니다. 그래서 게놈 복원해서 휴매족을 만들 수 있었던 거죠. 물론 이건 논외지만요. 그때 2020년이 오기 전에 지구에는 여섯 번째 대멸종을 막 마친 시기였죠.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종의 멸종말입니다. 아마 지구족은 자기자신들이 일곱 번째 대멸종의 주인공이 되리라곤 상상조차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핵탄두가 연이어 터지고서 기간 시설과 수도, 전기가 끊기고 나선 비문명 행성과 같은 수순을 밟았던 겁니다. 그때 지구족이 마지막까지 무기로 사용했던 게 바로 지금 쥐고 계신 그 <빠루>라는 기구입니다. 구부러진 끝에는 작은 홈이 나있어서 두 개의 발톱처럼 생겼죠. 튼튼한 금속재질로 지구족의 팔로 흔들면 그만큼의 회전운동력이 전달되어 발톱에 응축된다고 합니다. 그 무기의 효력을 어서 빨리 실험해보고 싶네요. 제가 신나서 떠들었는데, 여하간 태양풍 지나가고 나면 서둘러 여기로 와주세요.”
웅성거리던 네고들이 팟하고 사라지자, 나는 테라핀을 째려봤다.
“내가 휴매족 혼혈인거 어떻게 알았어?”
“칫칫 알코올 먹고 말했다. 초초 말했다. 네고가 휴매족 원했다. 네고가 돈 줬다. 초초 돈 원한다. 테라핀 돈 원한다. 그래서 테라핀이 네고한테 말했다 취잇취잇”
“그래. 알았어. 태양풍 지나가면 일단 돌아가자. 이게 뭔지 모르겠지만, 이번에 말머리 221A 행성에 도착하면 바로 밀린 돈 다 줘야 한다고. 알겠지?”
“취이이 테라핀 돈 다 준다. 초초에게 돈 다 준다. 췻췻췻”
앞서 말했지만, 프로 유물탐사꾼은 평생 열 개 남짓의 유물을 발굴한다. 그리고 그 중에서 돈이 될만한 물건을 만나는 건 아주 극소수다. 나는 방금 그 극소수에 속했다고 제다이 연합 상층부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고 봐도 될 것이다. 일확천금의 기회를 갖게 되자, 쓸로쓰족의 피가 옅어지는 것 같다. 휴매족은 잔인성과 폭력성, 갈팡질팡하는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실험실에서 일찌감치 폐기처분된 복원족이다. 지금 그 피가 빠루를 쥔 왼손에 차오르는 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