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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기역 앞 미로 같은 화전골목과 술집을 지나 구석에 위치한 에버그린 고시원. 홈페이지에서 설명하듯 아늑하고 편안한 싱글을 위한 최적의 공간이라는 1.5평 고시원은 의자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바닥에 누워 불을 끄면 관짝에 누운 듯 시꺼먼 우주로 안내한다. 여자층과 남자층이 구분되었다는 푯말이 무색하게 술 먹은 대학생들이 여자층 문고리를 벌컥벌컥 돌렸다가, 신고받고 출동한 경찰의 훈방에 인사불성 알코올이 순식간에 해장되어 술깨는 기적을 목격하기도 했다.  강화된 소방법 때문에 방 마다 소형 소화기를 설치해서 과부처럼 돈 잡아먹는 고시원이라고 주인 영감이 욕했던 바로 그 소화기는 안전핀을 뽑고 아무리 헤드를 눌러도 가스가 나오지 않아 모형이란 게 밝혀지기도 했었다. 나는 창문이 없어 빛도 들지 않는 그 고시원에서 따닥따닥 시체처럼 누워서 해가 뜨고 지고 계절이 가는 것도 무시하면서 1년을 버텼다.
 
  몇 십장의 이력서와 자소서를 출력한 끝에 공기관 육아휴직 대체인력 비정규직에 간신히 붙었고, 직장이 위치한 성남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그날도 박스에 짐을 넣고 테이프를 바르고 있었다. 거지짐도 석짐이라더니 이 콧구멍만한 단칸방에 무슨 짐이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치워도 치워도 버릴 물건은 없고 꼭 이고 져야할 생필품만 그득이라, 새벽 편의점 교대시간에 박스를 줏으러 나가야 되나 한숨을 쉬며 공용 부엌에 물을 뜨러 나왔다. 보통 고시원의 생활이란 방 평수만큼 생활고가 반비례하기에 복도에서 마주치는 얼굴도 밝디 밝은 청춘빛보다는 그늘이 깊다. 그렇기에 다들 얼굴을 알아도 눈인사를 대충대충 끝낸다.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꺼내지 않는다. 그런데 그날은 내 마음에 여유가 생겼길래 그렇게 오지랖을 떨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여기를 탈출한다'는 자부심이 떠밀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하간 불 꺼진 부엌 한가운데 우두커니 앉아 있는 사람이 있었다. 물을 뜨다말고 말을 걸었다. "제가 지금 떡볶이 사러 가려는데, 같이 드실래요? 우리 나가서 먹을까요?"  서 있는 의자를 굳이 치워두고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무릎을 세워 껴앉고 있던 그 히미한 사람은 조금 코를 훌쩍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자기 방에 들어갔다. 나는 그때서야 그 사람의 호실을 알게 되었다. 몇 번인가 인문학관에서 마주쳤었는데 둘다 외면했었던 것 같다.

  점퍼를 걸치고 눈이 녹다 말은 길을 헤치고서 역 앞 포장마차까지 걸어나갔다. 퍼머머리를 얹는 아주머니들이 비슷한 맛의 떡볶이와 튀김을 팔고 역시 비슷한 가격으로 오뎅을 판다. 메뉴와 가격과 머리모양까지 똑같은 그 포장마차 중에 한군데를 골라 들어갔다. 모듬 튀김 2인분에 떡볶이 1인분 얹어 주세요. 오뎅도 먹을께요. 나는 주문을 하고 그 아이에게 내가 낼테니 그냥 먹으라고 했다. 우리는 길다란 널빤지에 가로로 붙어서서 사이에 놓인 떡볶이를 말없이 삼켰다. 서로의 얼굴을 본다거나 정다운 말도 섞지 않고 묵묵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튀김 쪼가리르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그렇게 10분간의 사치를 부리고 또 말없이 같은 길을 걸었다. 그때 내 소맷단이 당겨지는 느낌이 났다.

  "저기 언니 우리 바로 들어가지 말고 학교까지 걷다가 오면 안될까요?"
  "어.. 그래요. 그럼 여기 골목 말고 불 켜진 대로로 걸어요"

  정말 내가 연상인진 모르겠다. 같은 과였나? 후배였나? 아는 사이였던가? 모르겠다. 골목과 달리 통행인이 많아서 얼지 않은 인도를 따라 걸었던 것 같다. 이번에도 가로로 나란히 길을 걸었다. 하지만 뭔가 서먹함이 이전보다는 옅어진 기분이었다. 배가 든든해서 그런걸까, 뜨거운 오뎅 국물을 마셔서 그런지 무릎을 끌어앉고 있던 그 친구가 아니라 조금 더 따뜻한 인상을 가진 것 같다. 그래도 역시 도란도란 대화는 나누지 않는다. 그저 밤이 내려앉은 길을 조용히, 차분하게, 얌전히 걸었다. 그것이 내가 에버그린을 떠나기 전에 했던 처음이자 마지막 교류였다.

  공기관의 육아 휴직 대체 인력은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 일이다. 기관과 부서에 따라서 정규직과 비정규 간에 차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곳도 있고, 팀장이 싹 무시하고 동일하게 대우하는 곳도 있다. 월급은 짜다. 최저임금에 딱 맞춰서 이상도 이하도 아닌 금액이다. 4대 보험과 몇 가지 세금을 절감하고 나면 주 5일, 하루 8시간 근무에 대한 한사람의 노고는 백만원 언저리가 된다. 그 백만원에서 월세를 내고 통신비와 공과금을 제하면 역시 수중에는 돈이 없다. 언제까지 비정규만 할 수 없지 않겠느냐는 팀원의 배려로 업무를 일찍 끝내면 공부를 했다. 그렇게 빈곤한 풍요 속에서 정신없이 지내다 또다시 연말이 왔다. 캐롤이 울려퍼지고 반짝이는 색전구를 휘감은 트리가 있는 길을 지나서, 1년 전보다 조금 더 커진 원룸으로 들어가면 나는 또 혼자다.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글자를 보다가 다운 받은 영화를 보면서 어영부영 연말을 보내고 신년을 맞이하겠지. 하루하루가 그렇게 흘러간다. 이대로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건 아닐까. 아무일이 일어나면 또 어쩌지. 불안감도 나태함도 공존하는 매일이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오늘까지는.

  "김지영씨? 본인이 김지영씨 맞으시죠? 90년생이시고 S대학 철학과 나오셨죠? 그리고 작년까지 에버그린 고시원에 거주하셨고요"
  "아.. 네. 음.. 맞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제가 여기에 앉아있는 건가요?"
  "별건 아니고요. 참고인 진술 때문에 서로 나오시라고 한 겁니다. 이제 하나씩 짚어볼텐데요. 최하나씨 아시죠?"
  "최하나요? 어...모르겠는데요"

  목이 늘어진 티를 입은 형사는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까치집 머리를 긁적였다.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몇장 뒤적이다가 500원짜리 모나미 볼펜으로 철제 책상을 톡톡 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작년 12월 26일까지 에버그린 고시원에 거주하셨던 건 맞으신거죠? 그런데 최하나씨는 모르시나요? 같은 고시원에 503호에 거주했던 분입니다."
  "음.. 에버그린 고시원에 살때는 다른 사람들이랑 말을 섞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요...어? 근데 몇 호라고 하셨죠?"
  "503호요. 503호. 김지영씨가 여기 기록에 보면 508호에 사셨거든요. 그런데 고시원 방이 워낙 마구잡이로 붙어있잖아요. 위치 상 508호랑 503호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방문이 마주보고 있거든요. 마주치신 적 없으신가요? 혹시 이 분에 대해서 뭐 아시는 것 없나요?"
  "이름은 모르겠어요. 그리고 학교에서 몇번 본 것 같긴 한데, 따로 인사나 말을 붙인 적도 없고요. 저는 잘 모르는 사람이예요. 그런데 무슨 일로 그러시나요?"
  "신문 안 읽으세요? 에버그린 고시원에 불이 났었잖아요."
  "보긴 봤어요. 그런데 E고시원이라고 기사에 나와서 그 고시원이라곤 생각을 못 했죠"
  "다행히 사람들 대부분은 불이 나서 탈출했어요. 그런데 조사해보니까 그 고시원에 구비된 소화기가 모두 가짜더군요. 게다가 소방관이 화재진압 후 들어갔더니 503호에서 변사체가 발견되었습니다. 감식 결과 화재로 인한 사망은 아닌 걸로 판명되었어요. 유서가 나왔거든요."
  "아.. 그렇군요. 그 호실에서 발견된 분이 최하나씨란 건가요?"
  "예. 유전자 감식은 기다리고 있지만, 거의 확실해요. 유서나 방 안에서 발견된 증거나 정황들이 자살에 맞춰지고 있어요. 하지만 참고인 조사가 필요해서 말입니다. 정말 모르는 사람이 맞는 건가요?"
  "네. 잘 모르는 사람이예요. 그 고시원에 살았던 사람은 모두 불러서 조사하는 건가요? 전 아직도 제가 왜 여기에 있는지 영문을 모르겠네요."
  "일단은, 최하나씨는 김지영씨랑 같은 학교 같은 과 선후배 사이예요. 작은 학교라서 서로 알고 지낼 거 같았는데 모르셨나보군요. 게다가 같은 고시원 같은 층 마주보는 방에 사셨는데도 모르셨단 말이죠. 이게 이상한게 최하나씨 유서에는 김지영씨 이름이 나왔어요."
  "네? 제가요? 제가 왜요?"
  "유서는 저희쪽에서 증거품으로 조사 중이니 보여드릴 순 없어요. 같은 내용을 최하나씨가 페이스북에 올렸던데 한번 보세요. 일단 오늘은 늦었으니 나가보셔도 됩니다. 저희도 참고인으로 조사 중이고 이정도로 끝낼게요. 아무튼 수고하셨습니다."

  경찰서를 나와서 바로 앞에 있는 카페로 들어갔다. 아이디도 없는 페이스북에서 사람을 어떻게 찾는지 몰라 헤매다가 학교와 학과명을 같이 검색했더니 최하나라는 페이스북이 하나 떴다.

2015.12.25
오늘 새벽에 지영이 언니랑 떡볶이를 먹었다. 방 안에서 혼자 울다가 지쳐서 부엌에 앉아 있었는데, 언니가 나보고 같이 먹으러 나가자고 했다. 아주머니가 주걱으로 떡볶이를 퍼서 튀김 위에 붓는 것을 보고서야 지갑을 안들고 나왔단 걸 알았다. 그런데 지갑을 가져와도 현금도 체크카드도 빵원이었다. 다행히 언니가 계산했다. 나는 내심 안심이 되었다가 미안했다. 그리고 뭔가 다시 방으로 들어가는게 무서웠다. 그래서 언니한테 학교까지 걸었다 오자고 했다. 성탄절로 화기애애했던 길이 기묘하리만치 조용해서 세상에는 가로등과 나랑 언니랑 셋 뿐이었던 거 같았다. 언니는 밤하늘이 어떻고 별이 어떻고 이야기하다가 교수님이랑 과제 이야기도 했다. 나는 따라 웃었는데 언니가 나를 보고 같이 웃었다. 학교 정문을 찍고 도는데 언니가 내 운동화 끈이 풀렸다고 가로등 밑에서 묶으라고 알려줬다. 나는 불빛이 쏟아지는 가로등 아래에 쪼그리고 앉아 신발끈을 단단하게 동여맸다. 그런 내 등 뒤로 언니가 취업했다고 다음에 만나면 밥을 먹자고 했다. 나는 오므라이스가 먹고 싶다고 답했던 것 같다. 그리고 언니에게 고민을 이야기할까 하다가 그만뒀다. 오늘이 지나면 이사할테니까 괜히 민폐끼치고 싶지 않아.

2016.12.25
말아서 널어놨던 운동화에 신발끈을 끼우다가 깨달았다. 나에겐 구두가 없다. 면접을 보러 가도 붙질 않는다. 구두가 없으니까. 단정한 옷을 입고 가도 구두 말고 운동화를 신고 가면 떨어진다. 아마 내가 감독관이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이 사람은 기본이 안되어 있다.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 길에는 말쑥한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고 사각 가방을 메고 걷는 사람들만 있다. 나 같은 사람은, 아니 우리 같은 사람은 길에서 보이지 않는다. 구두가 없는게 문제일까 아니면 구두를 살 돈이 없는게 문제일까. 그마저도 아니면 구두를 빌릴만한 사람이 없는게 문제일까. 아주 단순한 문제 하나만 찾아내어도 나는 그 원인이 나인지 사회인지, 사람들인지 세상인지, 고민만 하다가 지친다. 작년에는 지영이 언니랑 떡볶이를 먹었다. 올해는 혼자다. 이렇게 혼자서 계쏙갇혀서 살아도 되는 걸까.

  "어? 돌아가셔도 된다고 했는데, 뭐 놓고 가셨어요?"
  "아뇨. 저 알아요. 최하나. 최하나가 누군지 알아요. 이제 알아요."

  나는 형사 앞에서 무너져 내려서 그대로 조금 울었다. 엉엉 울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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