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러운 기억을 신이 나서 말할 수도있다는 것을 마흔 넘어서야 이해했다. 고통도 슬픔도 지나간 것, 다시 올 수 없는 것, 전기고문의 고통을 견딘 그날은 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찬란한 젊음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 P27

밀란 쿤데라는 불멸을 꿈꾸는 것이 예술의 숙명이라고 했지만 내 아버지에게는 소멸을 담담하게 긍정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었고, 개인의 불멸이 아닌 역사의 진보가 소멸에 맞설 수 있는 인간의 유일한 무기였다. - P44

그러니까 술은 고된 노동을 연장할 수 있는 일종의 진통제였다. - P68

삶이란 것이 오빠의 몸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듯했다. 나는 오빠가 밝은 햇빛 속으로 사라져가는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오빠는 자기 인생의 마지막 조문을 마치고 자신의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중이었다. - P85

나는 작은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는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탓하는 사람은 루저니뭐니 그럴싸하게 작은아버지를 무시했지만 본능적으로 나는 아버지 딸인지도 몰랐다.
이데올로기의 격류에 휩쓸렸던 형과 아우가 죽음 앞에서라도 평범한 형과 아우로 화해 할 수 있기를, 나는 아무래도 기대하는 모양이었다. - P105

그러니 아버지는 갔어도 어떤 순간의 아버지는 누군가의 시간속에 각인되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생생하게 살아날 것이다. 나의 시간속에 존재할 숱한 순간의 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졌다. - P110

진정한 사람은 싸우지 않는다. 가타부타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싸우지 않는다. - P115

술에 취하지 않으면 견뎌낼 수 없었던 작은아버지의 인생이, 오직 아버지에게만 향했던 그의 분노가, 처음으로 애처로웠다. - P129

하지만 정확히는 몰랐을 수도 있다. 아무도 보지 않은 그날의 진실을. 그날 작은아버지 홀로 견뎠어야 할 공포와 죄책감을 보지 않은 누군들 안다고 할 수 있으랴. 역시 작은아버지에게는 작은아버지만의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독한 소주에 취하지 않고는 한시도 견딜수 없었던 그러한 사정이. - P1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