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과 음악 말들의 흐름 10
이제니 지음 / 시간의흐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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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에 이제니 시인의 시집과 산문집과 수첩과 만년필을 챙겨 집을 나섰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버스를 탔다. 도망치듯 도달한 카페는 작고 포근하고 훌륭한 모서리 자리를 가졌다. 나를 위해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동그란 테이블과 의자 두 개, 어느 의자에 앉든 벽과 마주보아야 하는 모서리는 편안하게 고일 수 있는 완벽한 장소였다. 그곳에서 고여 있던 두 시간에 대해 뭔가 써 보려 노력한다. 뭔가 쓰려 애쓴 시간, 창밖의 풍경을 감상하듯 책을 펼쳐 읽은 순간, 칼바람에 베인 두 발의 감각이 돌아오고 흐릿하던 마음이 커피로 또렷해지고 어둠밖에 보이지 않던 눈 앞에 빛이 스치던 기억에 대하여. 지금 내가 쓰는 글은 그때의 시간을 정확하게 되살릴 수 없고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죽어가며 살아간다. 죽음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하느라 여유가 없던 새벽에 우연히 가닿은 음악과 같은 책에 대하여, 나는 설명하려 노력하고 실패한다. 이 글은 이 책에 대해 완벽하게 설명하는 데 실패했고 그래서 마음에 든다.



-23쪽, 어떤 음악은 눈물처럼 쏟아진다. 군더더기가 될 것이 뻔한 수사를 허락하지 않는다. 불과 몇 줄 읽어 내려가는 것만으로 압도당하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책처럼. 그러나 문자가 전하는 것과는 또 다른 물성으로. 이 추상적인 물성에 대해, 언어화될 수 없는 아름다움에 대해 늘 명확한 언어로 쓰고 싶었다. 그러나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일은 매번 실패로 귀결된다. 당신의 마음속에서 흐르고 있는 음악은 무엇입니까. 나는 내 마음속에서 배음으로 흐르는 음과 색을 언어로 드러내 보여주는 것을 나의 소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음 하나 모음 하나를 조합해나가면서 이 티끌의 시간을 모아 음과 색에 언어를 덧입히는 것은 언제나 늘 뒤늦고 허망한 일처럼 여겨질 뿐이었다. 말해질 수 없는 자리에서부터 시작되는 무엇을, 그럼에도 끝끝내 써나가는 일이란 무엇일까.

새벽과 음악, 이제니, 시간의흐름


-54쪽, 어둠으로 기우는 마음을 전적으로 다 믿지 말고, 그 감정의 결을 보다 세심하고 다정하게 들여다보면서, 어두운 감정에 속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들에 대해 좀 더 섬세하고도 고유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언어로 이름 붙일 수 있다면.

새벽과 음악, 이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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