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영원했다
정지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모든 순간에 책을 동행하고 여행을 떠나는 일에도 예외가 없는데

아이와 함께한 여행과 책이란 얼핏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매 순간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해야 하기에

당장 아무 페이지나 펼쳐도 몰입할 수 있는 책으로 골라야 한다.

시집, 그리고 독특한 소설,

김혜순 시인의 신간과 정지돈 소설가의 장편소설,


소설이 아무 페이지나 펼칠 수 있는가?

정지돈의 소설이라면 가능하다.

애초에 [모든 것은 영원했다]는 그렇게 씌어진 소설이다.

주인공 정웰링턴이 있고,

화자 나-정웰링턴의 이야기를 쓰려는 소설가-가 있고,


미국 하와이에서 태어나 공산주의자로 미국을 떠나 체코에서 의사가 되어 살다 모종의 이유로 중단된 삶을 가진, 현앨리스라는 공산주의자로 북한에 갔다 스파이로 처형된 어머니를 가진, 무엇인가 하려 했으나 아무것도 되지 못했고 그 모든 순간이 무의미했던, 그렇기에 모든 의미를 가진 정웰링턴이란 사람을 소설로 쓰려 시도한 소설가의 소설.

 

-19, 체코에서의 삶이 정웰링턴을 죽음으로 이끈다면 그의 죽음은 필연적인 결과인가? 안나와 윌리의 딸인 타비타의 탄생은 우연적인 결과인가? 하나의 난자가 하나의 정자와 결합하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우연이 거듭되어야 하는가? 우연이 거듭된다는 사실이 곧 우연이 아니라는 뜻 아닌가? 지금 시대에는 무의미해 보이는 이러한 논쟁이 그들에게는 행위의 근본 원칙이 되었다. 그러므로 당시에는 아무것도 무의미하지 않았다. 모든 행위가 유의미했으며 의미는 근본적인 원인이 있음을 뜻했고 그것은 영원불멸의 법칙이 존재함을 뜻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영원했다.

 

개인적으로 공산주의의 집단적인 사고방식을 좋아하지 않고,

사실 공산주의에 대해 아는 것도 거의 없기에 함부로 말할 순 없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과 이념 논쟁으로 복잡했던 이 시대를 다룬 소설 속 인물들을, 삶의 '의미'를 찾아 애쓰고 투쟁하고 산화한 인간으로 재해석하여 읽는다.

그들은 그 의미를 공산주의로 받아들였고,

의미는 실패했다. 삶은 실패했다.


삶이 실패했다고 인간은 실패하는가?


그 둘은 분명 다르다고 생각하고,

이 소설도 다르다고 말한다.

이게 무슨 소설이냐고, 뚜렷한 사건도 줄거리도 재미도 없는(저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 소설은 무의미하다고, 무의미한 소설은 실패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소설 속 ''도 혹 이 소설이 실패하지 않았나 소설 속에서 되묻는다. 그리고 그걸 봐 달라 요청한다, 실패 혹은 작가가 해내지 못한 것을.

 

-150, 모든 소설은 그 형태가 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우연적인) 이유가 있다. 작가는 어떤 한계에 의해서 그렇게 쓴다. 다시 말해 소설이 특정 형태가 되는 것은 결단이 아니라 포기에서 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이 해낸 것보다 해내지 못한 것을 봐야 한다(*첫 문장에서 괄호 안의 단어 중 적절한 것에 체크 하시오).

 

두 권의 책을 가방에 넣으며 두 권을 번갈아 가며 읽어야겠다 생각했는데,

한 번 펼친 정지돈 작가님 소설을 쉽게 닫을 수 없었다.

비행기에서, 바다로 가는 차 안에서, 바다에서, 카페에서, 아이가 잠든 숙소 소파에 앉아, 계속해서 읽었다. 멈추지 않고 읽은 소설 속 모든 문장은 내게 유의미했고 그러므로 모든 독서와 여행의 순간은 영원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