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좋지? 나도 잘 모르겠다. 뭔가 밤을 새워가면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한순간에 자신감을 잃고 방 한구석으로 물러나게 된다. 내가 시에 대해 뭘 얼마나 안다고...절판된 옛 시집을 복간하는 '문학동네 포에지' 시리즈 덕분에 구하기 힘들었던 박정대 시인의 첫 시집을 읽을 수 있었다. 푹 빠져 읽으면서 왜 내가 박정대에게 매료되었는지 눈썹 한가닥 정도는 알 수 있었다.
1990년에 등단한 시인의 시집들은 첫 작품부터 최근작 [불란서 고아의 지도](2019)까지 톤이 한결같다. 나는 긍정적인 의미로 한결같다는 단어를 썼다.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시를 안심하고 계속 즐길 수 있다는 의미니까. 반대로 말하면 한 시인의 다양한 시를 접하고 싶은 사람에게 그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 이름일 수 있다. 오래된 영화와 소설, 시, 음악, 각종 고유명사들의 집합소, 강원도 정선을 중심으로 형상화된 시적 공간, 끝없이 이어지는 기타 선율처럼 한없이 늘어나는 '단편들'. 그의 시를 한 편만, 시집 한 권만 읽으면 모든 걸 다 읽은 것과 같다.
동어반복과 다르다. 라벨의 <볼레로>와 같은 변주, 조금씩 더해지는 음률 속에서 확장되는 세계, [단편들]에는 아직 이후 시에서 전면적으로 등장하는 전직 천사의 그림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자주 호명되는 체 게바라는 '혁명'이라는 단어로 암시될 뿐이다. 같은 밑그림 속에 덧그려지는 붓질을 즐기며 안심하고 그의 시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태양다방에서 태양을 찾아내는, 옷깃을 휘날리는 굴원의 그림 속에서 스쳐지나가는 삶을 찾아내는, 이념도 성공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위하여' 글을 쓰는 박정대만의 세계를.
나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를 위하여
나는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위하여
나는 스스로 감히 글을 쓴다
-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