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니스와프 렘 - 미래학 학회 외 14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40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외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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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SF소설은 뇌가 먹는 박하사탕 같다.

머리속이 뻥 뚫리면서 시원해지는 느낌을 준다.

관성화된 일상이 새롭게 보이고 세계를 재창조한다.

가령 <앨리스타 웨인라이트의 [존재주식회사]>같은 단편, 존재하지 않는 책의 서평 형식으로 쓰인 이 소설은 삶의 형태를 구입할 수 있는 회사 '존재주식회사'를 묘사하는데, 엄격한 판사가 되어 사형을 구형하고자 하는 사람이 프로그램을 사면 회사의 직원들이 물밀작업으로 알맞은 타이밍에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체포되어 판사 앞에 당도할 수 있도록 돕는데, 이런 일을 하는 회사가 두 개 더 있고 인간의 모든 삶이 세 개 회사가 프로그래밍한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결말로 나아간다는 소설을 소개하는 소설이다. 재미있다!

똑똑한 세탁기 생산 경쟁에서 시작되는 <세탁기의 비극>이나 시를 쓰는 기계를 만들었다가 벌어지는 이야기 <첫 번째 여행 A, 트루를의 음유시인 기계>, 인간 신체를 자유롭게 조작 가능한 자가진화공학이 발달하면서 생겨나는 온갖 인간 형태의 묘사가 이어지는 <스물한 번째 여행> 등 아주 재미있고 읽기 어려우며 또 술술 넘어가는 작품들이 가득하다.

스타니스와프 렘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면 타르코프스키 영화로 만들어진 [솔라리스]일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의 개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으로 나는 <미래학 학회>를 뽑겠다. 코스타리카 힐튼 호텔에서 개최된 미래학 학회에 참석했다가 전쟁에 휘말린 이욘 티히는 냉동되었다가 2039년에 해동되어 '정신화학'이 문명화된 미래를 경험한다. 책도 약으로 복용하면 머릿속에 즉각 모든 내용이 흡수되는 세상은 모두가 행복하고 유쾌해 보인다. [멋진 신세계]의 소마 같은 약의 진실은 2098년 100조에 가까운 인류로 터져나갈 것 같은 지구에서 거의 모든 자원이 소진되고 절망에 찰 인간들에게 지상 낙원에 살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는 걷고 있지만 약을 통해 멋진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다는 환상에 빠져들도록 정신을 조종하는 세계는 진정한 낙원인가?

그런 미래는 터무니없다. 그렇다고 불가능하다고 볼 순 없다. 이미 진행 중인 미래일 수도 있다. 비밀리에 실험 중인 제약 회사가 불의의 사고로 사랑의 감정을 전부 제거하는 약을 전 세계에 누출시킨다면(<사이먼 메릴의 [섹스플로전]>에서 상상한 세계와 같이), 성적 욕망이 사라져 인구가 급감하고 멸종 위기에 처하는 미래가 올 수도 있다. SF는 소설을 통해 수많은 미래를 상상한다. 미래학 학회가 개최된다면 SF작가들이 연단을 꽉 채울 것이다. 그곳에서 인공지능의 창조주로서 신의 존재에 대해 토론하거나 로봇에게 부여된 프로그래밍과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의 상관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재미있겠다!

인간은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것만을 지배할 수 있고, 이해한다는 것은 언어로 나타낼 수 있는 것만을 이해할 수 있는 법이지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은 이해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 것이니까. 언어가 앞으로 어떻게 진화될지를 연구한다면 언젠가는 나타날 모든 발명과 변화, 관습의 진화에까지 다다를 수 있어요. 언어는 언젠가 이 모든 것을 반영할 테니 말입니다.

스타니스와프 렘 <미래학 학회> 중에서


인간은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것만을 지배할 수 있고, 이해한다는 것은 언어로 나타낼 수 있는 것만을 이해할 수 있는 법이지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은 이해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 것이니까. 언어가 앞으로 어떻게 진화될지를 연구한다면 언젠가는 나타날 모든 발명과 변화, 관습의 진화에까지 다다를 수 있어요. 언어는 언젠가 이 모든 것을 반영할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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