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여행가방 - 박완서 기행산문집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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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단어가 있다.
여행 !!
이 단어를 떠올리기만 해도 내 마음은 벌써 배낭 챙겨 들고 어디론가 떠나기 시작한다.
여행만큼 삶에 활기를 주고, 또다른 애착을 느끼게 하는 것이 있을까! (물론 많겠지만; ^ ^;)
단순한 일상의 반복에 지쳐갈 때 우린 곧잘 '여행'이란 단어를 떠올린다.
단 며칠만이라도 무료한 일상을 잊고 색다른 세상을 접한다는 생각만 해도 심장이 요동칠테니 말이다.
물론, 그러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이 여행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 또한 그렇다;;

‘잃어버린 여행가방'이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박완서님의 기행문을 담았다.
사랑스런 우리 산천 뿐만 아니라 중국과 바티칸, 인도네시아와 에티오피아, 티벳과 네팔에 이르기까지. 박완서님이 발 딛은 곳의 체취와 감상이 여기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마지막 작가의 말을 보니. 예전에 펴내셨던 티벳과 네팔을 여행기를 이번에 새로 책을 단장하면서 우리나라와 다른 곳의 기행문까지 함께 담으셨단다. 티벳과 네팔의 사진을 많이 볼 수는 없지만 좀 더 다양한 곳의 감상을 접할 수 있으니 내겐 더 좋은 기회인 셈이다. ^ ^

 
같은 곳을 다녀와도 사람에 따라 그 감상이 다르듯. 경험과 감성이 풍부한 노작가의 눈으로 본 각 지역들의 느낌을 엿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 ^
우리땅 기행은 내내 넉넉한 느낌이 감돌았으며, 교황의 장례식 참여라는 특별한 이유로 시작된 바티칸 여행에서 들려주는 풍경들은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들로 마음이 차분해졌다.
중국을 통해 마주한 백두산 기행은, 곳곳에 묻어나는 중국의 태도에서 최근 고구려 테마파크를 세우며 노골적으로 동북공정을 전개하는 중국과 여전히 무기력하게 대응하는 우리 정부에 대한 분노로 바뀌어갔다.

김혜자님의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가 생각났던 인도네시아와 에티오피아의 여행기.
참담한 환경이지만 그래도 삶은 계속되어가는 그 장엄한 풍경들에 가슴 찡했다.
911테러로(며칠전이 벌써 5주년이란다;;) 수천명의 죽음에 전세계가 그렇게 들썩이더니, 2만명이 넘는 인명피해를 낸 인도네시아의 쓰나미는 왜 이렇게 조용한가..하고 한탄하신 대목이 가슴을 쳤다.
나 또한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한 사람 중의 하나였기에;;

오랜 내전으로 기아에 허덕이는 에티오피아의 모습 또한 참담하긴 마찬가지다.
고대 전설의 낭만을 가슴에 품었다가 그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 그 낭만이 깨져버릴 만큼 참혹한 땅.
인간의 잘못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가를 느끼게 해주는 곳이 아닐까.
박완서님의 글들을 보며, 최근 읽은 한비야님의 '지구 밖으로 행군하라'에서 구호봉사 일을 하는 분들이 얼마나 대단한가 다시금 느끼게 됐다.
더불어. 그곳을 대하며 공인으로서 감정을 꾸며내지 않고 한 명의 인간으로서 느끼는 감정들을 솔직하게 표현하셔서 더 좋았다. 글을 읽으며 순간순간 놀라기도 했지만 저 분도 나랑 비슷한 평범한 사람이구나;라며 어쭙잖은 위안을 얻기도 했다; ^ ^;


모든 여행장소가 좋았지만. 특히! 가장 인상적인 곳은 (아마 많은 분들이 그러하셨듯)‘티벳'이었다!
마치 내가 티벳을 함께 여행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세밀한 설명과 생생한 감상 덕에 읽는 내내 머리속에 수많은 그림을 그리고 함께 여행했다. 분량도 가장 많았던 지라 독립된 한 권의 여행기를 읽는 느낌도 들었다. 

무엇보다 티벳이 내 맘을 확~ 뺏어버린 이유는.. 바로 첫 장에 실려있는 - 눈이 시리도록 푸른(말로는 표현이 안 된다;;) 티벳의 하늘과 호수를 담은 사진 때문이었다.
나무라곤 없는 갈색 민둥산의 위 아래로 펼쳐진 파란 호수(?) 더더욱 새파란 하늘..
세상에나~ 저렇게도 파란 하늘이 존재하다니!!!
사진을 보자마자 아무생각할 겨를도 없이 꼭!!! 가보고 싶다는 소망이 가슴 한 켠을 차지해 버렸다!
그러다가 책 중간에 계속 반복되는 고산병과 구걸하는 아이들, 말썽부리는 버스로 그 바람이 조금씩 옅어질 때쯤 다시 불을 지펴주는 구절이 있었으니.. 바로 팅그리의 밤이었다.
팅그리의 밤을 보낼 때, 태어나서 그렇게까지 매혹적인 밤하늘은 처음 봤다는 문장을 접하는 순간! 다시금 불 붙는 티벳으로 향하는 내 마음! 그런 밤하늘을 볼 수 있다면 고산병쯤이야!!라는 말도 안되는 다짐도 하면서 말이다; ^ ^;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차한 덕에 오랜 기간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유지해 왔던 나라, 티벳.
중국에 주권을 빼앗겼지만 아직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나라로 생각하고 있는 곳.
중국의 점령으로 인해 순수했던 그들의 문명이 때묻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노작가의 시선은, 일제점령기라는 가슴아픈 시대를 몸소 겪었던 분이기에 더더욱 안타깝다.
어디든 많이 가진 것들이 문제다. 중국도 일본도 그 정도면 만족할 만도 하련만 손에 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더욱 가지려고 안달이다. 우리나라도 티벳도. 그들의 더러운 욕심의 희생양이다.

인도로 망명해 평화적으로 독립운동을 하는 달라이 라마 이야기에서 오체투지로 성지순례를 하는 티벳국민들, 화려함의 극치로 오히려 사람들보다 더 세속적으로 비쳐지는 사원과 불상들, 외국인만 보면 구걸하느라 벌떼처럼 몰려드는 아이들, 척박한 자연이지만 주어진 환경에 최선의 방식으로 적응하여 살아가는 농가의 모습들.. 작가는 이런 다양한 모습들을 담으며 티벳의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여행은 티벳을 넘어 네팔로 이어진다.
네팔의 불상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살아있는 여신이라는 ‘쿠마리'에 대한 이야기였다. 처음 들어보는‘쿠마리'에 대해 알아가면서,  작가의 말처럼 가장 최후의 희생자는 항상 여성인게 우울해졌다;;

 

 ‘잃어버린 여행가방'을 이야기하며. 우리도 '육신'이라는 여행가방에 담겨있다고 말하는 박완서님.
적잖은 나이에 떠나기를 주저않고, 그 곳에서 배우기를 마다않는 그 분이 참으로 멋져 보인다.
책을 읽는 내내 풍요로운 우리네 땅과 생소한 이국땅의 정경들이 펼쳐지고, 그 곳들을 마주하는 작가의 소소한 감상들과 보다 응축된 깨달음이 펼쳐지는 책, <잃어버린 여행가방>
삶이 무료하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그렇지만 당장 떠날 수 없을 때 이 책을 읽어 보자.
어느덧 마음은 티벳의 사원에 머무르고 있으리라. ^ ^


 

 

 + 보탬 +

책을 표지보고 판단하진 않지만 그래도 이 책, 너무 예쁘다.
정사각형의 앙증맞은 크기로 손에 착~ 붙고, 반짝반짝 빛이 나는 표지를 두른 고급스런 느낌이 참 좋다.
그리고 많진 않지만 책 중간중간에 사진도 실려있다.
다만. 그 풍경을 설명하는 곳에 사진이 배치되었다고 해도, 사진 밑에 간단하게나마 간략한 설명이 적혀있다면 더 좋았을텐데. 가끔 헷갈리는 사진들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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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6-09-14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뷰를 보며 책 한권 읽은듯 즐겁습니다..
저도 담아갈께요..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별빛속에 2006-09-16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즐겁게 읽어주시니 제가 더 감사하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