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령 - 설우특선 5
미우라 아야꼬 지음 / 설우사 / 199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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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아야꼬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몰라도 문학 작품에 관심이 있다면 '빙점'이라는 소설 제목은 들어 보았을 것이다. 대체로 내가 대중문학이 아닌 세상에 인정받은 권위 있는 문학작품들을 주로 읽은 시기가 중학교 시절이었다. 그러다 판타지 소설에 물들었다가 다시 팬픽, 인터넷 소설, 대중문학 등에 빠져서 좀 멀어지기는 했지만 한 때 내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소설로 '빙점'을 꼽았던 적이 있다. '빙점'을 통해서 미우라 아야꼬라는 작가에 대해 알게 되었고 미우라 아야꼬의 작품이라면 망설이지 않고 읽게 된 것이다.

'빙점'을 읽어 본 사람은 미우라 아야꼬가 가지고 있는 사상에 대해 짐작할 것이다. 그녀는 기독교도이고 '빙점' 또한 기독교적인 주제를 가지고 있다. 무신론자이거나 기독교가 아닌 사람은 그런 점에서 거부감을 가질 수 있겠지만 기독교에 대한 편견을 저쪽으로 치우고 소설 그 자체를 읽어본다면 미우라 아야꼬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향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나 또한 기독교도이기 때문에 미우라 아야꼬의 작품에 매료된 것인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말하자면 그건 아니다. 왜냐하면 난 독실한 크리스천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이비(?) 기독교도라고 하는 것까지는 무리겠지만 '종교는 개인의 자유'라는 생각을 평소에 가지고 있고 이래저래 신앙에 대해 여러 가지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다. 각설하고 요점을 말하자면 미우라 아야꼬는 자신의 신앙을 바탕으로 하여 작품을 썼지만 크리스천이 아니더라도 인간 본래의 감정, 삶에 대한 성찰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으리라 믿기에 난 미우라 아야꼬의 작품을 꼭 추천하고 싶다.

'설령(雪嶺)'은 제목처럼 일본 홋카이도의 시오모리 고개를 의미하는 것이다. 20세기 초, 아직 우리나라가 일본에 종속되어 있을 그 시절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희생한 어느 독실한 기독교인의 실화를 미우라 아야꼬가 소설화한 것이다.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을 그 시절에 철도원이었던 기독교인 나가노 마사오 씨는 시오모리 고개를 오르다 문제가 발생하여 뒤로 떨어지게 된 열차를 멈추게 하기 위해 스스로 몸을 던져 떨어지는 열차를 자신의 몸으로 막았다. 나가노 씨의 희생으로 인해 열차에 타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건졌다. 그리고 그 시절, 기독교를 경시하고 두려워하며 배척하던 일본인들은 나가노 씨의 희생을 계기로 하여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에 입문하기도 했다고 한다. 미우라 아야꼬는 이런 실화를 바탕으로 하여 나가노 노부오라는 인물을 창조했다. 그리고 그가 태어나서 시오모리 고개에서 자신의 몸을 던지기까지의 일을 써 내려갔다. 

나가노 노부오는 어린 시절부터 여러 가지로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해 왔다. 그리고 기독교에 대해 그 시절의 다른 일본인들처럼 거리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죽음, 친구 요시가와의 동생인 후지꼬와의 사랑, 어느 전도사의 설교를 듣고 난 후, 독실한 크리스천이 되고 성경의 말씀을 실천하여 올바르게 살려 애쓰다가 마침내는 이 세상의 한줄기 빛이 되었다. 

나가노 노부오라는 인물은 확실히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경건한 인물이다. 정말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로 곧고 올바르고 깨끗하게 살아가려는 사람이다. 또 친구 요시가와, 주인공의 아버지와 어머니, 후지꼬를 비롯한 마음 사람들이 훌륭하고 고결하게 그려진다. 작가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을 깨끗하게 그린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 주인공은 기독교에 입문하지 않고 기독교를 막연하게 싫어할 때조차도 외곬수라고 할 정도로 고지식하고 깨끗이 살려고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가노 노부오는 후지꼬가 병으로 죽어갈 때, 다른 중매 자리도 거절하고 그녀를 몇 년 동안 문병하며 기다린다. 기독교에 입문하고 나서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성경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동료를 위해 후지꼬를 떠나 직장까지 옮긴다. 비록 그 동료가 자신의 진심을 몰라주고 자신을 매도할 때조차도 동료를 원망하지 않으려 한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도왔고 등불이 되어 주었고 마지막에는 빛이 되었다. 현실에서는 없을 정도로 주인공을 미화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정말 이런 사람들이 없을까? 작가로서는 있다고 말할 것이다. 주인공의 원형인 나가노 마사오 씨와 작가의 자서전인 '길은 여기에'서도 나오는 자신의 소꿉친구 마에까와 다다시 씨를 합쳐서 주인공인 나가노 노부오를 만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길은 여기에'의 이야기도 나중에 하게 되겠지만 정말 마에까와 다다시 씨도 노부오 마사오 씨 못지 않게 훌륭한 분이었다. 한때 일본 사람들은 '길은 여기에'를 읽고 난 후, 마에까와 씨를 본받고 싶다고 작가에게 편지도 많이 보냈을 정도라고 한다.

'설령'의 마지막을 읽고 난 후, 내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이 소설은 기독교 신앙을 전파하려는 작가의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다. 전편에 걸쳐서 작가의 메시지가 녹아들어 있다. 그러나 만약 '빙점'을 읽은 사람이라면, 미우라 아야꼬의 작품을 좋아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설령'을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단지 기독교 신앙이 녹아있는 작품이라고 불편하게 생각하지 말고 많은 사람들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었던 '나가노 노부오'라는 한 인간의 짧은 생애를 감상한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봐 줬으면 좋겠다. 

오랫동안 기다리던 후지꼬와의 결혼을 앞두고 죽은 주인공을 시오모리 고개에서 추억하며 우는 요시가와와 후지꼬의 울음을 끝으로 이 작품은 끝이 난다. 나도 얼마나 슬펐던지. 그러나 주인공은 죽었지만 그의 정신은 끝이 나지 않았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처럼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고 후지꼬가 결말에서 주인공의 뜻과 정신을 계승하려는 의지를 보이며 주인공을 질투하던 동료(이름이 기억 안 나지만)는 물론 많은 사람들이 주인공을 본받으려 한다. 기독교도가 아닌 사람은 이것을 종교 소설이 아니라 한 인물의 성장소설(?)이라고 생각하고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끝으로 나 또한 나가노 노부오, 또는 나가노 마사오 씨의 깨끗한 마음과 경건한 정신을 본받고 싶다는 생각을 단지 생각으로만 그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가 정말 당장 죽는다면 누가 내 죽음을 그렇게 슬퍼해 줄 것인가, 내가 세상에 남긴 게 있기나 한 것일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자신의 유서를 항상 지니고 다녔다는 나가노 마사오 씨처럼 나 또한 지금부터라도 마음 한 구석에 내 자신의 유서를 지니고 다녀야 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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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 더 호라이즌 환상문학전집 15
이영도 지음 / 황금가지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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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라자'를 너무 좋아해서 헌책으로 12권을 몽땅 구입했다. 그 외에 산 책은 그의 단편 소설 모음집인 '오버 더 호라이즌'(이것은 새 책으로 구입했다.)이다. '드래곤 라자'를 제외하고는 그나마 그의 작품 중에서 술술 읽히고 그런 대로 이해가 되는 소설 모음이라서 굉장히 좋아한다. 여기에는 어느 작은 소도시의 보안관 조수인 티르와 보안관인 이파리 보안관을 주축으로 한 '오버 더......' 시리즈와 '드래곤 라자'와 '퓨처 워커'에서 등장한 핸드레이크와 솔로처의 젊은 시절(?)을 배경으로 한 세 편의 단편들이 있다.

 

우선 '오버 더....' 시리즈는 세계관이 독특하다. 황제가 통치하는 제국은 인간만이 아니라 여러 종족들이 함께 어울려 살며 그들 모두 제국의 백성이다. 주인공인 보안관 조수 티르는 인간이지만 보안관인 이파리는 오크이며 직업이 노상 바뀌는 안셀은 엘프이고 우체국장인 아인켈은 트롤. 뭐 이런 식이다. 그리고 배경인 작은 소도시는 지나치게 가족적이며 각자의 개성도 뚜렷하다. '오버 더 호라이즌'은 닿을 수 없는 수평선을 목표로 하여 거기에 다가가려 몸부림치는 악기 살해자 호라이즌을 소재로 하며 '오버 더 네뷸러'는 자살 기도자인 청년 때문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오버 더 미스트'는 저승사자와 천사라는 이름을 가진 상당히 이름과는 언밸런스한 고양이와 개 커플 때문에 벌어지는 소동을 담고 있는데 세 편의 이야기 모두 등장인물들의 매력과 사건들이 맞물려 이영도 특유의 재치와 향기를 음미할 수 있다.

 

핸드레이크와 그의 제자 솔로처가 등장하는 '골렘', '키메라', '행복의 근원'은 역시 이영도 특유의 재치와 유머감각을 느낄 수 있는 재미있는 단편으로 여기서는 헐스루인 공주가 등장하여 대마법사와 그의 수제자를 능가하는 지혜를 뽐낸다. 현명한 헐스루인 공주와 상대적으로 위대한 마법사가 아닌 어리숙한 존재로 비치는 핸드레이크와 솔로처 콤비의 만담이 유쾌하고 재미있다. 공간에 대한 재미있는 해석, 남자와 여자의 차이, 행복의 근원에 대한 이영도 만의 재미있는 해석법이 볼만하다. 하지만 역시 무엇보다도 세 등장인물의 톡톡 튀는 성격과 엉뚱한 행동들이 웃음을 머금게 한다.

 

'드래곤 라자'와 함께 내가 참 좋아하는 단편 모음집이고 판타지 소설을 좋아한다면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아직 읽지 않은 분이 있다면 꼭 한번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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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유산 대교북스캔 클래식 5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오현수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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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머리 앤'으로 유명한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작품인 '사랑의 유산'은 유쾌한 삶과 사랑에 관한 보고서이다. 요즘 세상에서는 보기 힘든 많은 일족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루었는데 작가가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시종일관 따스하고 유쾌하다. 그리고 중심인물이 있긴 있지만 많은 등장인물들에게 하나같이 따스한 시선을 보내고 공평하게 대한다. '사랑의 유산'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은 제각각의 개성을 지니고 마치 우리 주위에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는 작가인 몽고메리의 탁월하고 맛깔스러운 능력 때문일 것이다.

 

다크 집안과 펜할로우 집안은 오랜 세월동안 통혼을 해 오며 한 일족을 이루어 왔다. 그들 사이에는 가보로 내려오는 다크 단지가 있는데 실제로 뜯어보면 가치가 전혀 없는 낡아빠진 단지이다. 그러나 이들 일족 사이에서는 단지는 신성한 가보이며 이것을 소유하는 사람은 일족들 사이에서의 굳건한 위치와 존경을 받게 된다. 이 다크 단지를 소유하고 있던 베키 아주머니가 죽음을 앞두고 접견하례를 열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베키 아주머니의 유언에 따라 단지의 다음 소유자를 가리는 유예기간을 가지게 되고 사람들은 서로 단지의 주인에 걸맞는 능력을 지니기 위해 힘쓰면서 여러 가지 사건들이 발생하게 된다. 노처녀, 노총각들은 얼른 결혼을 하려고 서두르게 되고 사이가 좋지 않던 사람들은 사이가 좋은 것처럼 연극하며 욕이 일상생활의 일부이던 사람들은 욕을 하지 못해서 스트레스가 쌓이게 된다. 이것이 베키 아주머니가 의도한 일이든 의도하지 않은 일이든 그것은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언뜻 보면 한가지 사건으로만 보이는 다크 단지라는 유산 상속을 통해 다양한 결과들이 파생된 것이다. 예를 들어 서로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원수 보듯 하던 피터와 도나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 되고 가이가 로저 선생과 결혼하게 되는 일, 노처녀 마가렛이 오랫동안 바라던 꿈을 이루게 되는 일, 기억을 잃었던 로손이 마침내 기억을 되찾게 되는 일, 10년 간 결별을 해 오던 휴와 조슬린이 결합한 일 등이 그렇다. 별 상관없어 보이는 이 일들이 베키 아주머니가 남긴 다크 단지로 인해 행복한 결실들을 맺게 되고 일족들은 저마다 다양한 결과를 받게 된다. 베키 아주머니가 의도한 바가 아니더라도 이것은 사랑의 유산인 셈이다. 마지막에 달사람에 의해 다크 단지가 깨져 버리는 것도 아주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이만하면 멋지고 완벽한 마무리가 아닌가.

 

모두에게 입바른 소리만 하고 심술궂게 굴어 두려움의 대상이 되던 베키 아주머니의 마지막 유산은 남은 일족들에게 예상도 하지 않았던 수많은 다양한 결과들을 남기고 끝을 맺는다. 다양한 인연과 사랑과 행복의 결실을 남긴 채 사랑의 유산(다크 단지)은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지면서 자신의 임무를 끝맺는다. 다크 집안과 펜할로우 집안의 많은 사람들이 다크 단지를 손에 넣기 위해 몸부림치는 노력들과 그들 사이의 사랑과 다양한 인연들이 책장을 넘기는 순간마다 웃음을 짓게 만들고 글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저마다의 개성을 지닌 다양한 등장인물들과 그들이 주는 웃음, 유쾌한 인연과 여러 사랑의 이야기들. 별 것 아닌 유산 분배로 인해 벌어지는 다양한 결과들이 아주 재미있고 유쾌하다. 몽고메리의 작품이라면 '빨간 머리 앤' 정도만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꼭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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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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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서점에 들렀을 때,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앵무새 죽이기'. 몇 년 만에 보게 된 이 좋아했던 책을 보게 되자 참 기뻤다. 그것도 새로 깔끔하게 단장까지 하고 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니 문득 이 책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내 책상 한 곳에 자리잡게 된 이 책. 소장가치는 그야말로 100%라고 생각이 든다.

  중학교 때, 학교 도서실에서 빌려본 낡은 책 '앵무새 죽이기'는 제목만 들었을 때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그러나 책을 한 장 두 장 넘기게 되면서 급속도로 하퍼 리가 창조한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10대의 중반을 달려가던 시절, 난 이 책을 발견하였고 그래서 행복했고 많은 것을 느꼈다. 주인공 스카웃이, 스카웃의 아버지가, 젬이, 그리고 스카웃과 젬의 이웃들이 나에게 많은 것을 던져 주었다. 그 시절의 한 친구는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앵무새 죽이기'를 꼽았다. 지금 내게 가장 좋아하는 책이 뭐냐고 묻는다면 그 중에 '앵무새 죽이기'를 당당히 넣겠다. 세월이 지나서 다시 읽어본 '앵무새 죽이기'는 중학교 시절과는 또 다른 감상을 가지게 하였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세계를 좀 더 넓고 깊게 보게 되어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하퍼 리의 처녀작이자 유일한 책인 '앵무새 죽이기'는 미국 내에서 아주 많은 영향을 끼친 소설이고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이라고도 한다. 그 정도로 깊은 영향력을 지닌 이 책은 쉽지 않은 문제를 다루면서도 독자들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예를 들어 하퍼 리는 흑백 인종간의 차별문제로 영감을 얻어 이 소설을 썼고 이 소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뿌리깊은 인종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의 선거 캠페인 고문이었던 제임스 카빌이 이 소설을 두고 "이 작품을 읽는 순간 나는 그녀가 옳았고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깊이 각인이 된 이 소설의 파급력은 정말 컸다고 한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이 남북전쟁에 깊은 영향을 끼친 것처럼 '앵무새 죽이기'도 그에 못지 않은 파워를 보여준 것이다.


 

  이제 10살도 안 된 어린 소녀인 성숙한 스카웃의 눈으로 보는 이웃들과 세계의 모습은 시간은 흘렀지만 지금의 우리들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시종일관 스카웃의 눈으로 보여지는 사건들과 세계의 모습은 도저히 10살도 안 된 어린 소녀의 눈으로 본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더 깊이 있게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이 소설의 주제는 무엇일까? 아마도 제목인 '앵무새 죽이기'에 주제가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카웃의 아버지는 앵무새를 죽이는 것은 죄악이라고 말한다. 다른 새들과는 달리 앵무새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앵무새는 선량하지만 사람들에게 소외 받고 배척받는 부 래들리 같은 사람들과 피부색을 이유로 차별 받는 톰 로빈스 같은 사람들을 상징한다. 실제로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선량한 그들이지만 사람들은 그런 앵무새를 죄의식 없이 죽인다. 부 래들리를 집 안에 가둬버리고 톰 로빈스와 같은 흑인들을 차별하고 배척하고 마침내는 죽여버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들은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 주위의 앵무새를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죽이고 있지 않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한편으로는 앵무새는 우리의 양심을 상징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우리 마음 한 구석에 있는 양심을 속이고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하는 순간 우리 마음 속의 양심이, 앵무새가 죽어버릴 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작품 내내 스카웃은 많은 일을 겪고 성장한다. 작품 마지막에 스카웃은 부 래들리를 데려다 주고 돌아오는 길에 비를 맞으며 "집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나는 오빠랑 내가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대수를 빼놓고는 이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별로 많은 것 같지가 않았다."고 느낀다. 이것은 스카웃의 정신적인 성장을 의미하며 스카웃은 톰 로빈스 사건, 부 래들리와의 화해 등을 통해 아마 일생동안 천천히 겪어 나가야 할지 몰랐던 성장을 한꺼번에 빨리 겪게 된 것이다. 스카웃이 부쩍 성장하며 배우게 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양심을 지키는 일, 그리고 타자에 대한 관용일 것이다. 상대방과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것을 보는 것. 스카웃은 마지막에 부 래들리의 집 현관에서 마을을 보며 부 래들리를 완전히 이해하게 된다. 이처럼 우리는 타자와 같은 방향을 보며 서로 이해하고 관용의 정신을 가지는 자세를 배워야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하퍼 리가 말하고 싶던 것일 것이다.


 

  몇 번을 읽어도 처음의 감동이 사라지지 않는 이 소설을 아직 읽어보지 않은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아니,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오는 이 소설을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스카웃과 젬과, 스카웃과 젬의 훌륭하신 아버지, 그리고 그들의 이웃들을 보여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타자와의 관계를 생각해 보고 우리 주변의 많은 앵무새들을 우리는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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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1
제인 오스틴 지음 / 현대문화센터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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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남자가 있다. 잘 생기고 부자이고 명문가인, 뭐 하나 모자랄 것 없는 남자. 그래서 세상 앞에 당당하고 부족한 것이 없어 오만하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평을 받는 남자. 그리고 여기 한 여자가 있다. 이 백년 전의 영국 여성답지 않게 이성적인 결혼관과 연애관을 가지고 있으며 재치 있고 발랄한 여자. 그런 두 사람이 만난다면? 그리고 여자가 남자를 오만하다고 싫어한다면? 그런데도 남자는 자신의 오만을 버리고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면? 그러다 여자는 마침내 남자가 오만하다는 편견을 버리고 다른 시각으로 남자를 바라보게 되었다면? 과연 그 둘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남자의 이름은 다아시이고 여자의 이름은 엘리자베스이다. 그리고 그 둘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싶다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읽어 보라. 그렇다면 당신도 제인 오스틴이 만들어낸 소소한 일상사에 푹 빠지게 될 것이다.


사랑에 빠졌을 때, 사람들이 특히 갖기 쉬운 것은 바로 오만과 편견이다. 상대가 나를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는 오만. 상대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상대가 이러이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견. 굳이 사랑만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흔히 가질 수 있는 것이 바로 오만이요, 편견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 더 공감이 갔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흔히 가지는 오만과 편견을 바로 사랑과 연관시켜 표현해 낸 것이 바로 이 제인 오스틴 작의 ‘오만과 편견’이다. 개개인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사랑할 때 아주 조금이라도 가지게 되는 이 감정들을 소재로 하여 제인 오스틴은 시작되는 연인들에게 필요한 연애 지침서를 썼다.

 

이 백년 가까이 된 소설이지만 여전히 연인들을 위해 꼭 필요한 지침서로,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문학 작품으로 남은 것은 이 소설 고유의 향기와 멋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제목이 가리키듯이 사랑할 때 가지기 쉬운 감정들을 섬세하고 미묘한 터치로 표현한 그녀의 맛깔스러운 솜씨는 이 백년 전의 연애사지만 오늘날에도 충분히 공감이 갈 이야기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결코 촌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이 백년 전 영국의 생활상과 연애사를 표현해 낸 작가의 능력을 찬양할지라!

 

다아시의 오만, 엘리자베스의 편견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기도 모르게 가지게 되는 감정이고 그것을 잘 표현해 낸 제인 오스틴의 능력에 ‘오만과 편견’은 처음부터 끝까지 잠시라도 눈을 뗄 수 없도록 만든다. 엄밀히 말하자면 크게 자극적인 사건이나 모험 이야기 등이 없는 이 소설이 이토록 나를, 전 세계의 독자들을 빨아들인 것은 무엇 때문일까? 베넷 가를 중심으로 하여 등장인물들의 소소한 일상을 다루었지만 작가의 전지적 시점으로 밀착되어 펼쳐지는 이야기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오히려 작가가 만들어 낸 세계가 경이롭게 느껴진다.

 

여주인공인 엘리자베스의 눈을 통해 시종일관 펼쳐지는 이 긴 이야기는 그 분량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베넷 가의 사람들 중 가장 이성적이고 현명한 엘리자베스의 눈으로 우리는 다아시와 엘리자베스의 밀고 당기는 사랑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것들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우선, 이 백년 전 그 시절의 생소한 문화와 풍습이 독자들의 눈앞에 펼쳐지지만 꿈에서라도 본 듯 조금도 낯설지 않다. 세밀하고 생생한 묘사를 통해 보여지는 그 시대의 결혼관과 연애관은 마치 눈앞에 펼쳐진 듯 선명하다. 그래서 이 소설이 그 오랜 세월이 지나서까지 사랑 받는 지도 모른다. 제인 오스틴이 보여주는 생생하고 선명한 영상 앞에 독자들은 거부감 없이 이 백년 전, 영국의 풍습과 문화, 그 시대 사람들의 연애에 녹아들 수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선명한 묘사를 통해 독자들을 즐겁게 하고 이해하기 쉽게 돕는 작가의 이런 면 때문에 이 소설이 더 향기가 나는 듯 하다. 그것이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작가가 깊은 사랑을 받는 비결이 아닐까?

 

오만하지만 진실한 다아시, 현명하고 재치 있는 엘리자베스는 물론이고 다정다감한 빙리, 난봉꾼 위컴, 아름답고 선량한 제인, 속물이라고 할 수 있는 콜린스, 엘리자베스의 친구 샬럿, 친절한 가디너 부부, 캐서린 영 부인 등이 모두 이 소설을 빛내준다. 무엇보다 수선스럽고 경박한 베넷 부인과 잘난 척 하기 좋아하는 메리, 철없는 키티, 어머니를 꼭 닮은 리디아는 이성적이고 반듯한 제인과 엘리자베스에 대비되어 톡톡히 감초 역할을 해 준다. 엘리자베스가 어머니와 동생들 때문에 느끼는 낭패감과 곤혹스러움을 충분히 이해하고 동정하기까지 하지만 그들은 미워할 수만은 없는 감초들인 것이다.

 

빙리와 제인의 사랑, 위컴의 등장으로 인한 갈등, 베넷 가의 이야기, 콜린스의 청혼과 결혼, 캐서린 영 부인과의 만남과 퇴장 등 다양한 사건들이 이 소설을 지배하고 있지만 가장 큰 축을 이루는 것은 다아시와 엘리자베스의 미묘한 감정 변화와 사랑이다. 처음에는 다아시를 오만하다고 편견 어린 눈으로 보던 엘리자베스는 여러 사건들을 통해 조금씩 감정의 변화를 겪는다. 엘리자베스가 다아시에게 가진 편견을 깨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나 다아시가 엘리자베스를 향해 갖는 감정 등은 아주 섬세하게 표현되어 끝까지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과연 이 고집 세고 자존심 강한 남녀는 어떻게 될 것인가? 소설을 읽는 독자들의 흥미와 관심을 끝까지 손에 쥐고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는 듯한 제인 오스틴의 능력이 정말 빛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주인공 남녀의 사랑 외에 펼쳐지는 에피소드들도 깨소금 같은 재미를 준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많은 사랑을 받는 이 연애 지침서를 아직 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그것도 이제 막 시작한 연인이라고? 그렇다면 이 책을 읽어 보라. 시대는 다르지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연애서가 될 테니까...... 그 뿐만 아니라 개성 강한 등장인물들과 제인 오스틴의 글 솜씨에 유쾌하게 웃을 수 있을 테니까......

 

제인 오스틴, 그녀가 왜 오늘날까지도 사랑 받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던 시간이었다. 오만과 편견, 이와 함께 시작되는 사랑을 경계할지라! 그러나 문득, 우리의 주인공 엘리자베스와 다아시 같은 사랑도 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것도 나름대로 멋진 일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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