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끼사스 > "내가 진짜 재밌는 얘기 해줄게"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인 천명관의 <고래>가 평단을 넘어 대중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모 일간지에 실린 서평의 제목-거침없이 현란하게 몰아치는 '구라'-이 말해주듯 이 소설의 미덕은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쉴새없이 풀어내는 서사에 있다. 90년대 중반 신경숙 윤대녕 등 일군의 '신세대 작가'들에 의해 확연히 달라진 한국소설의 지형은 이런 '대하(大河) 구라'가 선뵐 만큼 다시금 큰 지각변동을 겪고 있다. 서두가 길었지만 변동의 진원이 된 소설가가 바로 김영하가 아닐까 싶다.

96년 장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김영하는 올해 메이저 문학상을 무려 3개나 거머쥐며 최고의 해를 누렸다. 한 해에 한권꼴로 책을 내는 이 부지런한 작가는 인간과 삶에 대한 진지한 사유와 분석을 편애하던 문단에 강한 균열을 냈다. 쉽고 간결한 문장과 기발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그의 소설들은 깊이있는 성찰 대신 힘찬 서사를 앞세우며 독특한 입지를 다졌다. 한켠에선 '깊이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제기되지만 김영하가 일으킨 파문은 문단을 넘어 문화 전방위로 퍼져가고 있다.(변혁 감독의 최근작 <주홍글씨>는 주요 모티브를 그의 단편에서 따왔다)

제목부터 웃음을 빼물게 하는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는 1999년에 내놓은 두번째 소설집이다. 마치 영화의 시놉시스를 연상시키는 반전극 '사진관 살인사건'으로 시작되는 9개의 단편들은 전복적인 상상과 멈출 줄 모르는 '구라'로 충만하다. (사색적인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정도가 예외적) 개인적으로는 표제작인 '엘리베이터에…' '피뢰침' '비상구'가 흥미로웠는데 특히 '불량청소년'들의 에피소드를 다룬 '비상구'는 묘사가 무척 생생해 '혹시 이 사람이 학교 다닐때…'하는 의심이 자연스럽게 들 정도였다.

재밌는 건 작품들이 대개 독자에게 친숙한 현대를 시공간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꼭 현대여야 하는 필연성이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좀 억지스럽게 말하면 조선시대로 시공간을 치환한다고 해도 읽는데 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김영하의 트레이드마크인 '전복적 상상력'은 무엇을 뒤집는 것일까. 당신이 투명인간이 돼 간다면('고압선'), 다시 한번 벼락맞기를 바라는 컬트모임의 일원이라면('피뢰침') 남편이 늙지 않는 흡혈귀라면('흡혈귀') 등과 같이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상황들에 대한 '뒤집기 놀이'는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여기가 김영하를 '가볍다'고 지적하는 지점일 듯 싶다. 작가와 독자들이 살고 있는 동시대의 특징과 아이러니를 수긍하게 짚어주는 것, 이것이 독자들이 여전히 품고 있는 '깊이있는 소설'의 요건이므로.

결국 나 또한 김영하의 '가벼움'을 의식하는 독자 중 하나인 모양이다. 작년에 출간돼 올해 동인문학상을 받은 <검은꽃>을 읽으면서도 그런 의심을 떨칠 수 없었다. 역사 서술에 국가와 같은 거대주체 대신 저마다 사연을 가진 개인을 배치하겠다는 그의 발상은 신선했지만, 책장을 넘길 수록 어쩐지 그 발상 또한 '전복적 상상력'에 불과했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일말의 '의미'라도 찾아야 속이 시원한 나같은 독자는 그가 개화시킨 새로운 트렌드의 핵심을 이해못하는 구식독자일지도 모르겠다.

한국 현대문학의 흐름에 과문한 탓인지도 모르지만 김영하는 한국소설의 또다른 변곡점이라고 생각한다. 90년대 중반 신인작가들이 이념에 침잠했던 소설을 개인사와 미시적 통찰로 건져냈다면, 그는 존재와 생을 파고들며 '시같은 소설'을 추구하던 문단의 메인스트림을 영화같은 서사와 상상력으로 흐르게 물꼬를 튼 작가다. 그의 소설은 흥겹다. 굳이 행간을 읽으려는 수고로움 없이도 충분히 즐겁고도 놀랍다. 나온지 벌써 5년도 더 됐지만 소설집 <엘리베이터에…>는 그의 소설관을 엿보고 오늘날까지 보여준 소설적 지향을 이해하는데 좋은 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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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붉은머리타조 > 안녕 권리, 철이 든다는 건 무엇일까

우리는 유효기간 지난 우유 같은 청춘기를 보내고 있었다. 썩어 문드러져서 먹으면 토할 것 같은 우유. 객기와 치기 때문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우리는 즉흥적이고 광포한 감정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몰랐다. 루소는 '청춘은 제2의 탄생기'라고 했지만 이놈의 망할 제2의 인생은 피기도 전에 썩어버렸다. 현실주의자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은 술판과 밤샘과 오입의 힘을 빌려 죽음을 만지게 될 때까지 자신을 소비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모 채팅 사이트에서는 성별과 나이를 비공개한 사람의 아바타에 검은 선글라스와 붉은 보자기를 씌운다. 화려하게 치장한 남자 아바타와 여자 아바타들 사이에서 이 비공개 아바타는 한동안 미운 오리 새끼 마냥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야 했다. 그런데 어느날부턴가 채팅방 제목으로 비공개만 입장하라는 내용이 떡 하니 붙기 시작했다.
공개 아바타들에 대한 비공개 아바타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영문을 모르고 방에 들어갔던 여자 아바타는 쏟아지는 비난(왜 보자기를 쓰지 않았느냐)과 눈 가리고 아옹 식의 회유(지금이라도 보자기를 쓰면 이 방에 남게 해 주겠다)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공개 아바타들이 모인 방에서는 어땠냐고? 비공개 아바타들이 모인 방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할 것은 없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집단이 생기기 마련이다. 특정 연예인을 좋아하는 모임에서부터 비슷한 장르의 음악을 아끼는 모임, 하다 못해 이름 석자가 같거나, 발 사이즈가 같은 모임까지 사람들은 쉴새없이 나와 비슷한(혹은 비슷하리라고 믿고 싶은) 모임을 만들지 못해 안달한다. 일단 모임에 들어가면 그 안의 사람들과 동화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모임은 그 특성상 언제든 모임의 성격과 맞지 않는 사람은 퇴출시킬 준비가 되어 있으니, 모임의 일원이 된 사람에게 모임과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자정해 나가는 능력이 필요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권리'는 이 모임 메커니즘의 문제점을 꿰뚫고 있다. 권상우를 좋아하는 모임 정도는 개인의 선호도에 따라 가입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 더 큰 사회라는 모임은 함부로 탈퇴 버튼을 눌렀다간 매장 당하는 수가 있으니 말이다. 가령 동성애자보다는 이성애자가 더 많은 사회에서 홍석천이 따를 당했던 것처럼, 어딜 가나 구제 대상 1호인 노처녀에 대한 연민이 넘쳐나는 것처럼. 이 알 수 없는 모임의 하나인 사회라는 녀석의 속을 까발려보자, 모임은 사회를 유지시킬 구성원의 생산과 재사회화를 위협하는 동성애자와 노처녀라는 악의 무리를 쳐부숴야 한다. 모임의 공동 목표인 잘 먹고 잘 살자를 거부하는 백수들을 인간 이하의 인격으로 대함으로써, 그들이 사회에 얼마나 많은 해를 끼치는 기생충인지를 깨닫게 해야 하는 것이다.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는 쉼 없이 노동해야 하며 섹스해야 하고 안주해야 한다. 왜? 그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싸이코가 뜬다'에는 사회의 무지막지함을 알고 있는 스물 셋의 여자아이 오난이가 등장한다. 십 이년간의 정규교육을 마친 오난이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혹사당한 몸과 정신을 이웃나라 일본에 가 방목시킨다. 따내야 할 학점을 무시하고 이 사회의 메커니즘을 상징하는 시마다 선생을 농락한다. 끝내는 정답이 아니면 살아 남을 수 없는 세계를 거부하고 오답 사회라는 가상의 현실을 상정해내기에 이른다. 무조건 그래야 하는 것들에 끊임없이 반항하는 것, 그녀는 싸이코다. 싸이코가 되고 싶어하는 가여운(혹은 가벼운) 비(非)싸이코다.

글을 쓰기에 적당한 시간은 밤이며, 그것을 퇴고하기에 알맞은 시간은 아침이라고 어떤 작가는 말했다. 새벽 두 시에서 세 시 사이가 사람이 가장 감상적이 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란다. 맞는 말이다. 태양이 새로 떠오르면 지난 밤 울고불고 짜고 괜히 심각했던 일은 어디 내놓기 좀 낯부끄러워지지 않던가. 그러나 그것을 알면서도 지나친 명료함이 좀 미워져, 애써 눈 돌리고 잠자리에 드는 것을 거부한 적도 많았으니.
어른(?)들은 말한다. 너희들 나이 때는 다 그래. 철이 들면 무엇을 우선 순위에 놓아야 할는지 알 게 될 거다. 여우같은 내 마누라, 토끼 같은 내 자식들을 키우려면 아니꼬워도 뭐 같은 사회에 적응해야 하고 좀 더러워도 모르는 척 하고 넘어가는 게 약이 될 때가 있을 게다.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래.

스물 셋은 이제 그만 철이 들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마지막 시기이다. 똥을 보며 더럽다고, 냄새난다고 투덜거릴 수 있었던 대학생에서 '네 똥만 구리냐, 내 똥도 구리다' 서로서로 보듬어 주는 사회인으로 가는 마지막 시기. 오난이는 죽음으로써 후자의 세계를 거부했다.
'싸이코가 뜬다'의 싸이코 세상은 어떻게 보면 참 낭만적이다. 지금까지 정답이라고 믿어왔던 것이 오답일 수도 있고, 오답이라고 믿어온 것이 실은 정답일 수도 있는 세계다. 그곳에는 나와 다른 사람은 존재할는지 몰라도 틀린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난삽한 문장력은 차치하고라도 별점 다섯 개. 하지만 위에서도 밝혔듯이 이 가짜 싸이코가 너무 가벼운 나머지 가엽게까지 보이는 이유는, 모 채팅방에서 비공개 아바타 집단이 공개 아바타 집단을 싸잡아 매도하고 증오했던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 때문이다.
다자이 오사무, 우디 앨런, 김승옥, 무라카미 하루키, 라디오 헤드, 아멜리 노통, 이진경, 마루야마 겐지, 보르헤스 등으로 귀결되는 이 섞어찌개 같은 취향의 묶음이 싸이코의 필요항목인가? 정형화된 코드에 등돌렸던 그들이 만들어낸 비주류의 새 코드는 싸이코의 모임에 합당한가? 대체 누가 싸이코이며, 누가 정상인인가?
이 주류가 되어 버린 비주류가 뜨는 세상은 어떤 맛이 날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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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endo > 이런 소설이 뜰까? 아아, 어쩌면.

남자친구는 군대에서 죽었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친하던 여자친구는 신입생 환영회에서 술을 많이 먹고 죽었다. 이 또한 자살인지 타살인지. 주인공 오난이는 그 때문인지 어떤지 자살을 결심한다. 그래서 이 장황한 소설은 그의 길고 '분노 가득한 유서'다.

누구든 어느 나이에든, 10년 전에는 지금보다 세상이 만만했다. 그래서 자랑차게 소리 높여 세상을 욕하며 자신을 떠벌이고 이 지랄같은 세상에 주먹감자를 먹이고 뒤돌아설 수 있었다. 그 세상은 정답을 요구하는 제도 교육일 수도 있었고 줄다리기 노름으로 일관하는 흔하고 맥빠지는 연애질일 수도 있었고 허위로 도배한 뻔뻔하고 뻔한 대학 생활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이 수많은 미운 것들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천상의 양식이 필요하다. 그것은 라디오헤드의 음악이기도 하고 보르헤스의 소설이기도 하고 이상의 시이기도 하다. 그리고 누군가는 너무 많은 미운 것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고 그래서 너무 많은 양식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미움만큼 사랑이 필요한 법이니까. 자기를 사랑하는 만큼 세상이 미워지는 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는, 세상에 한 바가지의 욕을 퍼부으려는 자는, 자신의 언어를 갈고다듬어야 한다. 그의 혼돈을 파고들어야 한다. 젠 채하지 말아야 한다.

그의 소설을 한 마디도 제대로 못 알아먹었다는 데 화난 건 아니다. 온통 일본 이야기뿐인 소설에 위화감이 들어 정나미가 떨어진 것도 아니다. 작가의 약력을 읽고 나어린 그의 고뇌의 깊이를 폄하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단지,

이 난잡한 문장이, 발설 수준에 그치는 이 난장이, 청춘의 화려하고 속 빈 판토마임이, 못 마땅할 뿐이다. 세상에 발 담그지 못하고 부유하는 게 자랑인, 그래서 죽지 못해 살거나 죽기 위해 살아가는 이 작태가 한심할 뿐이다. 그리고 이런 어지러운 문법에 '사이버식 서술형 문체'니 '탈구조주의의 사회비판'이니 '슬프고 참혹하고 아뜩하다'느니 하는 평을 한 문단 인사들이 못 마땅할 뿐이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픈 말은 '이게 소설이냐'하는 거다. 아니, 소설이라는 건 인정한다. 이보다 더한 소설도 봐 왔으니까. 내 말은 이게 과연 한겨레 문학상을 받을만한 소설인가 하는 거다. 흐리멍텅한 주제, 지리멸렬한 문장, 경박한 소재로 일관하는 이런 소설이! 솔직히 놀림받는 기분이다.

10년 뒤에도 이 작가의 소설이 세상을 돌아다닌다면, 그 때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겠다. 아, 그 때는 세상이 만만했지, 하며. 문학상을 받은 소설을 소설 같지도 않은 소설이라며 까댔었지, 내가 보는 눈이 한참 없었어, 하며. 사실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니 그 동안, 그러니까 강산이 한 번쯤 변하고 우리 모두에게 세상이 조금 더 팍팍해지는 동안 작가는 어디 가서 제발 문장 공부나 하고 오시길. 그리고 한겨레는 내년부터는 정신 차리시길. 그리고 누가 제발 소설 같은 소설 좀 적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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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H > 매력적으로 뻔뻔한 <올드보이>와 박찬욱 감독


 

“아무리 짐승만두 못한 감독이어도 살 권리는 있는 거 아닌가요, 네?!”


 


박찬욱 감독 셀프 인터뷰


씨네: 우선, <올드보이>를 만들어놓고 제일 뿌듯해 하시는 부분은?
박 : 두 시간 안쪽으로 끊었다는 겁니다. 앞으로 봉준호, 이재용, 강우석, 이런 감독님들 만나면 이렇게 얘기해주려구요. “어유- 어떻게 두 시간 넘는 영화를 만들어요, 그래? 나 같으면 힘들어서 못하겠네….”
씨네: 그럼 <올드보이>는 정확한 러닝타임이…?
박: 한 시간 오십구분 삼십팔초.
씨네: (한숨 한번 쉬고)… 또 하나의 복수극이라… 물리지도 않나요?
박 : 왜- 여기서 실명을 밝힐 수는 없음을 이해하시고- ‘연애박사’ 허모 감독한테는 그렇게 안 물으면서 나만 갖구 그러나요?
씨네: 그래도… 비슷한 영화 또 만들기가 그렇게도 싫다더니 이 어인 일인지요.
박 : 글쎄, 허진호도 자기가 비슷한 영화를 또 만들었다고는 생각 안 할걸요?
씨네: 그렇다면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보이>의 차이는,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의 차이와 비슷한 건가요?
박 : 아, 거 왜 자꾸 죄없는 허진호 감독을 물고늘어지는 거요?
연달아 복수극 두편 만든 게 무슨 죕니까?
씨네: 아니, 제가 언제….
박 : (손을 홰홰 내저으며) 아, 그대가 꼭 연애박사 허모 감독의 두편을 <봄날은 8월을 거쳐 크리스마스로 간다>라고 부르고 싶다면, 그러든지 말든지…. 내 두편을 <복수는 올드보이의 것>으로 통칭하든지 말든지!
씨네: 뭐 그런 걸 가지구 화를 내구 그러십니까?
박 : 내 말은, ‘주먹대장’ 류모 감독이나 ‘총잡이’ 강모 감독한테는 안 하는 질문을 왜 나한테만 자꾸 해대느냐 이겁니다. 연달아 복수극 두편 만든 게 무슨 죕니까? 아니 막말로, 내가 뭐 사람을 찌르기를 했어요, 무슨 사기를 쳤어요? 이래 뵈두요, 내가….
씨네: (잽싸게 말을 끊으며) 아, 찌른단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요… <올드보이>도 또 꽤나 잔인한 장면을 많이 담고 있다던데… 그런 게 그렇게 재미있으십니까?
박 : 남자 여자 만났다 헤어지고 뭐 그러는 얘기보다는 재미있습니다, 왜, 뭐, 불만 있나요? 연애박사 허모 감독은….
씨네: (또 말을 끊으며) 언제까지 이렇게 잔인한 영화들만 찍을 생각인가요? 로맨틱코미디나 이런 쪽으로는 영 자신이 없으신가 보죠?
박 : 아, 박찬욱판 <영어완전정복> 말인가요? 폭력영화를 즐겨 찍던 감독이 방향 급선회해서 내놓은? 어허-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저요, 별로 로맨틱하지는 않아도 코미디는 벌써 하나 찍었답니다. 일명 <네팔어완전정복>, 또는 <국가의 영광>, 때로는 <위대한 산>이라고도 불리는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가 바로 그것입니다. <여섯개의 시선> 중 하나의 에피소드죠. 참고로, 오해 없으시기를 바라며 한마디, ‘여섯 마리 개들의 시선’이 아니라, ‘감독 여섯명의 시선’입니다. 이달 십사일 대개봉, 되겠습니다. ‘내 멋대로 찍었다, 네 멋대로 봐라’, ‘대표영화, 대표감독’. <장화, 홍련>의 명가 청어람 배급 전격 결정! ‘골라먹는 재미- 푸짐한 뷔페 같은 컴필레이션영화’. 즐거운 영화관람은 예매로….
씨네: (얼굴에 묻은 침을 묵묵히 닦으며)… 끝났나요?
박 : 그러니까 제 말씀은, <올드보이>는 별로 잔인하지… 뭐, 좀 난폭한 장면이라고 해두죠… 어쨌든 그다지 난폭한 영화가 아니라 이겁니다. 시사 때 뒤에 서서 가만히 보면요, 극중 인물들이 뭐 좀 해보려고 그러면 바로 눈 가리기 모드로 돌입하는 여성분들이 더러 계시거든요? 근데요, 그거 다 불필요한 행동입니다. 괜히 아까운 연기만 못 보고 놓치는 짓이라고 할 수 있죠. 이 영화요, (적어도 비주얼의 차원에서는) 전혀 안 잔인합니다. 물론 <복수는 나의 것> 때 데인 가슴, 다 이해합니다. 죄송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너무 잔인한 장면이 많을까봐 <올드보이>를 안 보려고 하시는 분들, 마음 놓으셔도 됩니다. 저요, 인간 박찬욱, 완전히 거듭났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 만든 게 무슨 전과도 아니고, 제게도 갱생의 길을 찾을 기회를 좀 주십쇼. <올드보이>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바로 제 심정을 표현한 말이죠. “아무리 짐승만두 못한 감독이어도 살 권리는 있는 거 아닌가요, 네?!”
씨네: 그 짐승만두 못한 분이 어떻게, 배우들과는 잘 지내셨나요?
박 : 아항, 강혜정양과의 스캔들 얘기 못 들으셨구나? 어유, 그때 스포츠신문 막느라구 고생한 생각하면… 그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하면 말이죠….
씨네: (재빨리 끼어들어) 최민식씨는 어떤 배우죠?
박 : 재밌는데, 그 얘기… (반응이 없자, 마지못해)… 최 선배요? 글쎄요… 그의 얼굴은 그 자체로 스펙터클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올드보이>는, 최민식의 풍모를 전시하는 일종의 갤러리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씨네: 최민식씨는 송강호씨와 어떻게 다르던가요?
박 : 강호씨가 드 니로 타입이라면 최 선배는 파치노 타입이라고나 할까요?
씨네: 좀더 구체적으로….
최민식씨 얼굴은 그 자체로 스펙터클입니다
박 : 그냥 알아서 새겨들으세요. 예술가들끼리 비교는 무슨 비굡니까? 그저 최민식이라는 배우에 관해 이렇게만 말해둡시다. 그 헤어스타일 하고도 주책스러워 보이지 않는 사십대가 그말고 누가 있겠냐고, 장도리로 남의 이빨을 뽑을 때조차도 따뜻해 보이는 사람이 또 어딨겠느냐고, 나는 훗날 <올드보이>를 오직 그와의 공동작업이라는 의미로만 기억할 거라고.
씨네: 유지태씨는요?
박 : 그야 물론 길다는 거죠. 걸을 때 보면 꼭 젊은 날의 피터 오툴 같다니까.
씨네: …길다구요? 그게 단가요?
박 : 그 말에 다 들어 있어요, 말은 길면 안 좋아….
씨네: 그래두 몇 마디만 더….
박 : 정 그렇다면… (한참 생각하다가)… 가늘다는 거죠.
씨네: 몸이 길면 가는 거 아닌가요? 같은 소리를….
박 : 어허- 몸이 아니라 눈이!

씨네: 배우가 눈이 가늘면 뭐가 좋은데요?
박 : 뭐에 좋다는 게 아니라, 그냥 나하고 닮았기 때문에 맘에 든다 이거지… 지태씨는 무용과 요가로 단련된 그 긴 몸을 우아하게 움직이죠. 극중 이우진이라는 자가 지닌 기품이 거기서 나와요. 하지만 어떤 땐 조금 야비한 면을 내비치기도 하죠. 재산과 교양에 의해 감춰진 악마가 잠깐씩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들… 성장을 멈춰버린 애어른, 어떤 의사도 진단해내지 못할 만큼 잘 위장된 정신이상의 징후… 유지태는 이런 성격을 완벽하게 표현해냈던 겁니다, 그 긴 몸과 그 가느다란 눈으로….
씨네: 강혜정양의 매력은 뭐죠?
박 : 그야 물론 살짝 걷어 올라간 윗입술이죠. 감독들이 대개, 남자고 여자고 함께 일할 배우 얼굴을 유심히 관찰하잖아요. 어떻게 찍어줄까 하고. 그래서 현장에서 그걸 써먹게 되는데, 이번엔 유지태가 혜정양을 보는 시점 쇼트가 그런 경우였어요. 비스듬히 뒤에서 바라본 그녀의 얼굴 클로즈업이죠. 그때 그 살짝 걷어 올라간 윗입술이 보통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게 아니에요. 그 쇼트, 편집실에서도 참 좋아했죠.
씨네: 그 입술말고는 없나요?
박 : 일단 말귀를 잘 알아듣습니다. 그거 되게 중요한 거거든요. 감독하고 대화가 되어야 뭐 연기고 뭐고 하지 않겠어요? 다음으로는, 연기에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불필요한 동작, 쓸데없는 표정을 만들어서 하지 않는다는 거죠. 핵심만 간결하게 표현한다, 그 나이에 그렇게 연기하려고 노력하는 배우, 드뭅니다.
씨네: <올드보이>는, ‘충격적인 반전’ 운운해 가면서 호객행위에 열심이던데 도대체 무슨 반전입니까? 좀 공개하면 안 될까요?
박 : 까짓것 뭐… 오프 더 레코드루다가 귀띔 한마디. 최민식은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야 이 모든 사건이 꿈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깨어나보니 감금방이었던 거죠. 그곳은 끝없이 이어지는 복도 좌우로 늘어선 무한대 개수의 방들 중 하나, 그 전체가 바로 ‘지옥’이라는 가공할 결말입니다. 그럼 그걸로 끝이냐, 천만에. 방에는 벽마다 작은 문이 하나씩 있습니다. 또 다른 방으로 이어지는 문, 그러나 그 미지의 방에 들어서는 순간 당신은 무참히 살해될 수 있습니다. 거기 유지태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죠. 최후의 대격돌을 벌이는 최민식과 유지태. 두둥- 최민식은 곧이어 유지태가 유아 시절 분리수술 중 죽은 자신의 샴쌍둥이의 체현이라는 사실, 좀더 정확히 말해 그 죄의식이 투사해 만들어낸 가공의 인격이라는 비밀을 알아내게 됩니다. 자신이 존재하는 한 그 역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깨달은 최민식은 급기야 자살을 기도하는데… 한편 불현듯 자기가 유령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을 얻은 유지태는 최민식의 자살 직전, 강혜정의 몸으로 스며들어갑니다. 빙의된 강혜정은 태연히 남탕에 발을 들여놓게 되고….
씨네: 실로 정훈이 만화를 방불케 하는 대단한 이야기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엄청난 흥행 돌풍이 예상되는군요….
박 : (떨떠름한 얼굴로)… 영광이겠습니다, 정훈이씨한테는….
씨네: 최근 어느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 있죠? (신문에서 오린 조각을 꺼내들고) “… 저는 흥행공식을 알고 있죠. 다만 돈 된다고 내 색깔을 포기하는 게 싫다는 것입니다.” 어디서 이런 자신감이 나오는지 궁금하군요.
박 : 그 기자 양반이, “남들 잘 안 하는 얘기를 자꾸 다루는 이유가 뭡니까?” 하시길래 답했습니다. 내가 한 말은 정확히 이겁니다. “물론 상업적으로 좀더 안전한 기획이란 건 따로 있겠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가 재밌는 영화를 만들어야지, 어쩌겠어요. 다시 말해, 색시도 기왕이면 부잣집 딸내미든가 돈벌이 잘하는 여자라면 좋겠죠. 그래도 사랑이 먼저지, 어떻게 그런 조건만 보고 장가를 갈 수가 있겠습니까.” 이게 진실입니다. 물론 악의를 가지고 쓴 글이 아닌 줄은 알지만, 나한테는 큰 상처가 되었답니다. 이 대목에서 한번 더 <올드보이> 대사를 인용하자면, “명심하세요, 모래알이든 바위 조각이든 물에 가라앉기는 마찬가지예요.”
조건만 보고 장가 갈 수 있겠습니까
씨네: 인터뷰란 게 참 힘들죠?
박 : 인터뷰는 영혼을 갉아먹습니다. 왜냐? 어차피 나오는 질문이라는 게 늘 거기서 거기니까 나는 수십 수백번 같은 대답을 되풀이하게 되죠. 그 상투적인 언사를 반복하면서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겁니다. ‘이 얼마나 낯간지럽고 구차스럽고 구질구질하고 파렴치한 말이란 말인가….’ 언젠가는 영화사와의 계약서에 이런 조항을 넣게 될 날이 올 겁니다. ‘갑은 을에게 어떠한 인터뷰도 강요할 수 없다.’
씨네: 그건 너무 하는 거 아닙니까?
박 : 근본적으로 저는 ‘오로지 영화의 크레딧으로만 존재하는’ 감독이 되고자 합니다. 그게 제 목표입니다.
씨네: 요즘 살이 자꾸 쪄서 사진발이 영 시원찮아졌다고 사진기자들이 그러던데, 혹시 그런 이유로…?
박 : 사람이 진지하게 얘기할 때는 좀 진지하게 들어주세요!
씨네: 인터뷰를 안 하겠다… 흥행공식을 아는 감독이라 자신이 있으신가 보죠?
박 : (애원하듯이) 생각해 보세요. 제가 미쳤습니까, 공식 알면 혼자만 간직했다가 필요할 때 써먹지 그런 소리를 공개적으로 하고 다니게? 장준환 감독, 나 그런 얘기 한 적 없어요, 공식 같은 거 모르니까 그거 가르쳐달라고 자꾸 전화하지 좀 마. 그리구요 여러분, 이 기회를 빌려 한 가지 분명히 밝혀두겠는데요, 저 돈 좋아합니다.
씨네: 이제 개봉을 앞둔 시점에서 무슨 돈 버는 꿈이라도 꾸셨는지요?
박 : 예, 우리 포스터가 붙은 담벼락에 생쥐 한 마리가 뽀르르 기어올라가더군요. 그러더니 글쎄 제목 활자 왼쪽에 찰싹 달라붙는 거예요, 얘가… 어때요, 대단하지 않습니까?
씨네: 생쥐가… 요? 그게 도대체… 무슨…?
박 : 아직두 모르겠어요? 참 답답한 양반일세… 아, OLD BOY 앞에 G 한 마리가 붙으면 뭐예요, GOLD BOY 아닙니까… 길몽도 이런 길몽이 없어요, 이거 완전 메가히트라니깐, 메가히트! 음화핫핫핫!


 
 씨네 21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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