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H > 매력적으로 뻔뻔한 <올드보이>와 박찬욱 감독


 

“아무리 짐승만두 못한 감독이어도 살 권리는 있는 거 아닌가요, 네?!”


 


박찬욱 감독 셀프 인터뷰


씨네: 우선, <올드보이>를 만들어놓고 제일 뿌듯해 하시는 부분은?
박 : 두 시간 안쪽으로 끊었다는 겁니다. 앞으로 봉준호, 이재용, 강우석, 이런 감독님들 만나면 이렇게 얘기해주려구요. “어유- 어떻게 두 시간 넘는 영화를 만들어요, 그래? 나 같으면 힘들어서 못하겠네….”
씨네: 그럼 <올드보이>는 정확한 러닝타임이…?
박: 한 시간 오십구분 삼십팔초.
씨네: (한숨 한번 쉬고)… 또 하나의 복수극이라… 물리지도 않나요?
박 : 왜- 여기서 실명을 밝힐 수는 없음을 이해하시고- ‘연애박사’ 허모 감독한테는 그렇게 안 물으면서 나만 갖구 그러나요?
씨네: 그래도… 비슷한 영화 또 만들기가 그렇게도 싫다더니 이 어인 일인지요.
박 : 글쎄, 허진호도 자기가 비슷한 영화를 또 만들었다고는 생각 안 할걸요?
씨네: 그렇다면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보이>의 차이는,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의 차이와 비슷한 건가요?
박 : 아, 거 왜 자꾸 죄없는 허진호 감독을 물고늘어지는 거요?
연달아 복수극 두편 만든 게 무슨 죕니까?
씨네: 아니, 제가 언제….
박 : (손을 홰홰 내저으며) 아, 그대가 꼭 연애박사 허모 감독의 두편을 <봄날은 8월을 거쳐 크리스마스로 간다>라고 부르고 싶다면, 그러든지 말든지…. 내 두편을 <복수는 올드보이의 것>으로 통칭하든지 말든지!
씨네: 뭐 그런 걸 가지구 화를 내구 그러십니까?
박 : 내 말은, ‘주먹대장’ 류모 감독이나 ‘총잡이’ 강모 감독한테는 안 하는 질문을 왜 나한테만 자꾸 해대느냐 이겁니다. 연달아 복수극 두편 만든 게 무슨 죕니까? 아니 막말로, 내가 뭐 사람을 찌르기를 했어요, 무슨 사기를 쳤어요? 이래 뵈두요, 내가….
씨네: (잽싸게 말을 끊으며) 아, 찌른단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요… <올드보이>도 또 꽤나 잔인한 장면을 많이 담고 있다던데… 그런 게 그렇게 재미있으십니까?
박 : 남자 여자 만났다 헤어지고 뭐 그러는 얘기보다는 재미있습니다, 왜, 뭐, 불만 있나요? 연애박사 허모 감독은….
씨네: (또 말을 끊으며) 언제까지 이렇게 잔인한 영화들만 찍을 생각인가요? 로맨틱코미디나 이런 쪽으로는 영 자신이 없으신가 보죠?
박 : 아, 박찬욱판 <영어완전정복> 말인가요? 폭력영화를 즐겨 찍던 감독이 방향 급선회해서 내놓은? 어허-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저요, 별로 로맨틱하지는 않아도 코미디는 벌써 하나 찍었답니다. 일명 <네팔어완전정복>, 또는 <국가의 영광>, 때로는 <위대한 산>이라고도 불리는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가 바로 그것입니다. <여섯개의 시선> 중 하나의 에피소드죠. 참고로, 오해 없으시기를 바라며 한마디, ‘여섯 마리 개들의 시선’이 아니라, ‘감독 여섯명의 시선’입니다. 이달 십사일 대개봉, 되겠습니다. ‘내 멋대로 찍었다, 네 멋대로 봐라’, ‘대표영화, 대표감독’. <장화, 홍련>의 명가 청어람 배급 전격 결정! ‘골라먹는 재미- 푸짐한 뷔페 같은 컴필레이션영화’. 즐거운 영화관람은 예매로….
씨네: (얼굴에 묻은 침을 묵묵히 닦으며)… 끝났나요?
박 : 그러니까 제 말씀은, <올드보이>는 별로 잔인하지… 뭐, 좀 난폭한 장면이라고 해두죠… 어쨌든 그다지 난폭한 영화가 아니라 이겁니다. 시사 때 뒤에 서서 가만히 보면요, 극중 인물들이 뭐 좀 해보려고 그러면 바로 눈 가리기 모드로 돌입하는 여성분들이 더러 계시거든요? 근데요, 그거 다 불필요한 행동입니다. 괜히 아까운 연기만 못 보고 놓치는 짓이라고 할 수 있죠. 이 영화요, (적어도 비주얼의 차원에서는) 전혀 안 잔인합니다. 물론 <복수는 나의 것> 때 데인 가슴, 다 이해합니다. 죄송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너무 잔인한 장면이 많을까봐 <올드보이>를 안 보려고 하시는 분들, 마음 놓으셔도 됩니다. 저요, 인간 박찬욱, 완전히 거듭났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 만든 게 무슨 전과도 아니고, 제게도 갱생의 길을 찾을 기회를 좀 주십쇼. <올드보이>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바로 제 심정을 표현한 말이죠. “아무리 짐승만두 못한 감독이어도 살 권리는 있는 거 아닌가요, 네?!”
씨네: 그 짐승만두 못한 분이 어떻게, 배우들과는 잘 지내셨나요?
박 : 아항, 강혜정양과의 스캔들 얘기 못 들으셨구나? 어유, 그때 스포츠신문 막느라구 고생한 생각하면… 그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하면 말이죠….
씨네: (재빨리 끼어들어) 최민식씨는 어떤 배우죠?
박 : 재밌는데, 그 얘기… (반응이 없자, 마지못해)… 최 선배요? 글쎄요… 그의 얼굴은 그 자체로 스펙터클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올드보이>는, 최민식의 풍모를 전시하는 일종의 갤러리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씨네: 최민식씨는 송강호씨와 어떻게 다르던가요?
박 : 강호씨가 드 니로 타입이라면 최 선배는 파치노 타입이라고나 할까요?
씨네: 좀더 구체적으로….
최민식씨 얼굴은 그 자체로 스펙터클입니다
박 : 그냥 알아서 새겨들으세요. 예술가들끼리 비교는 무슨 비굡니까? 그저 최민식이라는 배우에 관해 이렇게만 말해둡시다. 그 헤어스타일 하고도 주책스러워 보이지 않는 사십대가 그말고 누가 있겠냐고, 장도리로 남의 이빨을 뽑을 때조차도 따뜻해 보이는 사람이 또 어딨겠느냐고, 나는 훗날 <올드보이>를 오직 그와의 공동작업이라는 의미로만 기억할 거라고.
씨네: 유지태씨는요?
박 : 그야 물론 길다는 거죠. 걸을 때 보면 꼭 젊은 날의 피터 오툴 같다니까.
씨네: …길다구요? 그게 단가요?
박 : 그 말에 다 들어 있어요, 말은 길면 안 좋아….
씨네: 그래두 몇 마디만 더….
박 : 정 그렇다면… (한참 생각하다가)… 가늘다는 거죠.
씨네: 몸이 길면 가는 거 아닌가요? 같은 소리를….
박 : 어허- 몸이 아니라 눈이!

씨네: 배우가 눈이 가늘면 뭐가 좋은데요?
박 : 뭐에 좋다는 게 아니라, 그냥 나하고 닮았기 때문에 맘에 든다 이거지… 지태씨는 무용과 요가로 단련된 그 긴 몸을 우아하게 움직이죠. 극중 이우진이라는 자가 지닌 기품이 거기서 나와요. 하지만 어떤 땐 조금 야비한 면을 내비치기도 하죠. 재산과 교양에 의해 감춰진 악마가 잠깐씩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들… 성장을 멈춰버린 애어른, 어떤 의사도 진단해내지 못할 만큼 잘 위장된 정신이상의 징후… 유지태는 이런 성격을 완벽하게 표현해냈던 겁니다, 그 긴 몸과 그 가느다란 눈으로….
씨네: 강혜정양의 매력은 뭐죠?
박 : 그야 물론 살짝 걷어 올라간 윗입술이죠. 감독들이 대개, 남자고 여자고 함께 일할 배우 얼굴을 유심히 관찰하잖아요. 어떻게 찍어줄까 하고. 그래서 현장에서 그걸 써먹게 되는데, 이번엔 유지태가 혜정양을 보는 시점 쇼트가 그런 경우였어요. 비스듬히 뒤에서 바라본 그녀의 얼굴 클로즈업이죠. 그때 그 살짝 걷어 올라간 윗입술이 보통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게 아니에요. 그 쇼트, 편집실에서도 참 좋아했죠.
씨네: 그 입술말고는 없나요?
박 : 일단 말귀를 잘 알아듣습니다. 그거 되게 중요한 거거든요. 감독하고 대화가 되어야 뭐 연기고 뭐고 하지 않겠어요? 다음으로는, 연기에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불필요한 동작, 쓸데없는 표정을 만들어서 하지 않는다는 거죠. 핵심만 간결하게 표현한다, 그 나이에 그렇게 연기하려고 노력하는 배우, 드뭅니다.
씨네: <올드보이>는, ‘충격적인 반전’ 운운해 가면서 호객행위에 열심이던데 도대체 무슨 반전입니까? 좀 공개하면 안 될까요?
박 : 까짓것 뭐… 오프 더 레코드루다가 귀띔 한마디. 최민식은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야 이 모든 사건이 꿈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깨어나보니 감금방이었던 거죠. 그곳은 끝없이 이어지는 복도 좌우로 늘어선 무한대 개수의 방들 중 하나, 그 전체가 바로 ‘지옥’이라는 가공할 결말입니다. 그럼 그걸로 끝이냐, 천만에. 방에는 벽마다 작은 문이 하나씩 있습니다. 또 다른 방으로 이어지는 문, 그러나 그 미지의 방에 들어서는 순간 당신은 무참히 살해될 수 있습니다. 거기 유지태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죠. 최후의 대격돌을 벌이는 최민식과 유지태. 두둥- 최민식은 곧이어 유지태가 유아 시절 분리수술 중 죽은 자신의 샴쌍둥이의 체현이라는 사실, 좀더 정확히 말해 그 죄의식이 투사해 만들어낸 가공의 인격이라는 비밀을 알아내게 됩니다. 자신이 존재하는 한 그 역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깨달은 최민식은 급기야 자살을 기도하는데… 한편 불현듯 자기가 유령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을 얻은 유지태는 최민식의 자살 직전, 강혜정의 몸으로 스며들어갑니다. 빙의된 강혜정은 태연히 남탕에 발을 들여놓게 되고….
씨네: 실로 정훈이 만화를 방불케 하는 대단한 이야기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엄청난 흥행 돌풍이 예상되는군요….
박 : (떨떠름한 얼굴로)… 영광이겠습니다, 정훈이씨한테는….
씨네: 최근 어느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 있죠? (신문에서 오린 조각을 꺼내들고) “… 저는 흥행공식을 알고 있죠. 다만 돈 된다고 내 색깔을 포기하는 게 싫다는 것입니다.” 어디서 이런 자신감이 나오는지 궁금하군요.
박 : 그 기자 양반이, “남들 잘 안 하는 얘기를 자꾸 다루는 이유가 뭡니까?” 하시길래 답했습니다. 내가 한 말은 정확히 이겁니다. “물론 상업적으로 좀더 안전한 기획이란 건 따로 있겠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가 재밌는 영화를 만들어야지, 어쩌겠어요. 다시 말해, 색시도 기왕이면 부잣집 딸내미든가 돈벌이 잘하는 여자라면 좋겠죠. 그래도 사랑이 먼저지, 어떻게 그런 조건만 보고 장가를 갈 수가 있겠습니까.” 이게 진실입니다. 물론 악의를 가지고 쓴 글이 아닌 줄은 알지만, 나한테는 큰 상처가 되었답니다. 이 대목에서 한번 더 <올드보이> 대사를 인용하자면, “명심하세요, 모래알이든 바위 조각이든 물에 가라앉기는 마찬가지예요.”
조건만 보고 장가 갈 수 있겠습니까
씨네: 인터뷰란 게 참 힘들죠?
박 : 인터뷰는 영혼을 갉아먹습니다. 왜냐? 어차피 나오는 질문이라는 게 늘 거기서 거기니까 나는 수십 수백번 같은 대답을 되풀이하게 되죠. 그 상투적인 언사를 반복하면서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겁니다. ‘이 얼마나 낯간지럽고 구차스럽고 구질구질하고 파렴치한 말이란 말인가….’ 언젠가는 영화사와의 계약서에 이런 조항을 넣게 될 날이 올 겁니다. ‘갑은 을에게 어떠한 인터뷰도 강요할 수 없다.’
씨네: 그건 너무 하는 거 아닙니까?
박 : 근본적으로 저는 ‘오로지 영화의 크레딧으로만 존재하는’ 감독이 되고자 합니다. 그게 제 목표입니다.
씨네: 요즘 살이 자꾸 쪄서 사진발이 영 시원찮아졌다고 사진기자들이 그러던데, 혹시 그런 이유로…?
박 : 사람이 진지하게 얘기할 때는 좀 진지하게 들어주세요!
씨네: 인터뷰를 안 하겠다… 흥행공식을 아는 감독이라 자신이 있으신가 보죠?
박 : (애원하듯이) 생각해 보세요. 제가 미쳤습니까, 공식 알면 혼자만 간직했다가 필요할 때 써먹지 그런 소리를 공개적으로 하고 다니게? 장준환 감독, 나 그런 얘기 한 적 없어요, 공식 같은 거 모르니까 그거 가르쳐달라고 자꾸 전화하지 좀 마. 그리구요 여러분, 이 기회를 빌려 한 가지 분명히 밝혀두겠는데요, 저 돈 좋아합니다.
씨네: 이제 개봉을 앞둔 시점에서 무슨 돈 버는 꿈이라도 꾸셨는지요?
박 : 예, 우리 포스터가 붙은 담벼락에 생쥐 한 마리가 뽀르르 기어올라가더군요. 그러더니 글쎄 제목 활자 왼쪽에 찰싹 달라붙는 거예요, 얘가… 어때요, 대단하지 않습니까?
씨네: 생쥐가… 요? 그게 도대체… 무슨…?
박 : 아직두 모르겠어요? 참 답답한 양반일세… 아, OLD BOY 앞에 G 한 마리가 붙으면 뭐예요, GOLD BOY 아닙니까… 길몽도 이런 길몽이 없어요, 이거 완전 메가히트라니깐, 메가히트! 음화핫핫핫!


 
 씨네 21 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