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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인 천명관의 <고래>가 평단을 넘어 대중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모 일간지에 실린 서평의 제목-거침없이 현란하게 몰아치는 '구라'-이 말해주듯 이 소설의 미덕은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쉴새없이 풀어내는 서사에 있다. 90년대 중반 신경숙 윤대녕 등 일군의 '신세대 작가'들에 의해 확연히 달라진 한국소설의 지형은 이런 '대하(大河) 구라'가 선뵐 만큼 다시금 큰 지각변동을 겪고 있다. 서두가 길었지만 변동의 진원이 된 소설가가 바로 김영하가 아닐까 싶다.

96년 장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김영하는 올해 메이저 문학상을 무려 3개나 거머쥐며 최고의 해를 누렸다. 한 해에 한권꼴로 책을 내는 이 부지런한 작가는 인간과 삶에 대한 진지한 사유와 분석을 편애하던 문단에 강한 균열을 냈다. 쉽고 간결한 문장과 기발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그의 소설들은 깊이있는 성찰 대신 힘찬 서사를 앞세우며 독특한 입지를 다졌다. 한켠에선 '깊이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제기되지만 김영하가 일으킨 파문은 문단을 넘어 문화 전방위로 퍼져가고 있다.(변혁 감독의 최근작 <주홍글씨>는 주요 모티브를 그의 단편에서 따왔다)

제목부터 웃음을 빼물게 하는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는 1999년에 내놓은 두번째 소설집이다. 마치 영화의 시놉시스를 연상시키는 반전극 '사진관 살인사건'으로 시작되는 9개의 단편들은 전복적인 상상과 멈출 줄 모르는 '구라'로 충만하다. (사색적인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정도가 예외적) 개인적으로는 표제작인 '엘리베이터에…' '피뢰침' '비상구'가 흥미로웠는데 특히 '불량청소년'들의 에피소드를 다룬 '비상구'는 묘사가 무척 생생해 '혹시 이 사람이 학교 다닐때…'하는 의심이 자연스럽게 들 정도였다.

재밌는 건 작품들이 대개 독자에게 친숙한 현대를 시공간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꼭 현대여야 하는 필연성이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좀 억지스럽게 말하면 조선시대로 시공간을 치환한다고 해도 읽는데 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김영하의 트레이드마크인 '전복적 상상력'은 무엇을 뒤집는 것일까. 당신이 투명인간이 돼 간다면('고압선'), 다시 한번 벼락맞기를 바라는 컬트모임의 일원이라면('피뢰침') 남편이 늙지 않는 흡혈귀라면('흡혈귀') 등과 같이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상황들에 대한 '뒤집기 놀이'는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여기가 김영하를 '가볍다'고 지적하는 지점일 듯 싶다. 작가와 독자들이 살고 있는 동시대의 특징과 아이러니를 수긍하게 짚어주는 것, 이것이 독자들이 여전히 품고 있는 '깊이있는 소설'의 요건이므로.

결국 나 또한 김영하의 '가벼움'을 의식하는 독자 중 하나인 모양이다. 작년에 출간돼 올해 동인문학상을 받은 <검은꽃>을 읽으면서도 그런 의심을 떨칠 수 없었다. 역사 서술에 국가와 같은 거대주체 대신 저마다 사연을 가진 개인을 배치하겠다는 그의 발상은 신선했지만, 책장을 넘길 수록 어쩐지 그 발상 또한 '전복적 상상력'에 불과했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일말의 '의미'라도 찾아야 속이 시원한 나같은 독자는 그가 개화시킨 새로운 트렌드의 핵심을 이해못하는 구식독자일지도 모르겠다.

한국 현대문학의 흐름에 과문한 탓인지도 모르지만 김영하는 한국소설의 또다른 변곡점이라고 생각한다. 90년대 중반 신인작가들이 이념에 침잠했던 소설을 개인사와 미시적 통찰로 건져냈다면, 그는 존재와 생을 파고들며 '시같은 소설'을 추구하던 문단의 메인스트림을 영화같은 서사와 상상력으로 흐르게 물꼬를 튼 작가다. 그의 소설은 흥겹다. 굳이 행간을 읽으려는 수고로움 없이도 충분히 즐겁고도 놀랍다. 나온지 벌써 5년도 더 됐지만 소설집 <엘리베이터에…>는 그의 소설관을 엿보고 오늘날까지 보여준 소설적 지향을 이해하는데 좋은 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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