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endo > 이런 소설이 뜰까? 아아, 어쩌면.

남자친구는 군대에서 죽었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친하던 여자친구는 신입생 환영회에서 술을 많이 먹고 죽었다. 이 또한 자살인지 타살인지. 주인공 오난이는 그 때문인지 어떤지 자살을 결심한다. 그래서 이 장황한 소설은 그의 길고 '분노 가득한 유서'다.

누구든 어느 나이에든, 10년 전에는 지금보다 세상이 만만했다. 그래서 자랑차게 소리 높여 세상을 욕하며 자신을 떠벌이고 이 지랄같은 세상에 주먹감자를 먹이고 뒤돌아설 수 있었다. 그 세상은 정답을 요구하는 제도 교육일 수도 있었고 줄다리기 노름으로 일관하는 흔하고 맥빠지는 연애질일 수도 있었고 허위로 도배한 뻔뻔하고 뻔한 대학 생활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이 수많은 미운 것들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천상의 양식이 필요하다. 그것은 라디오헤드의 음악이기도 하고 보르헤스의 소설이기도 하고 이상의 시이기도 하다. 그리고 누군가는 너무 많은 미운 것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고 그래서 너무 많은 양식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미움만큼 사랑이 필요한 법이니까. 자기를 사랑하는 만큼 세상이 미워지는 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는, 세상에 한 바가지의 욕을 퍼부으려는 자는, 자신의 언어를 갈고다듬어야 한다. 그의 혼돈을 파고들어야 한다. 젠 채하지 말아야 한다.

그의 소설을 한 마디도 제대로 못 알아먹었다는 데 화난 건 아니다. 온통 일본 이야기뿐인 소설에 위화감이 들어 정나미가 떨어진 것도 아니다. 작가의 약력을 읽고 나어린 그의 고뇌의 깊이를 폄하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단지,

이 난잡한 문장이, 발설 수준에 그치는 이 난장이, 청춘의 화려하고 속 빈 판토마임이, 못 마땅할 뿐이다. 세상에 발 담그지 못하고 부유하는 게 자랑인, 그래서 죽지 못해 살거나 죽기 위해 살아가는 이 작태가 한심할 뿐이다. 그리고 이런 어지러운 문법에 '사이버식 서술형 문체'니 '탈구조주의의 사회비판'이니 '슬프고 참혹하고 아뜩하다'느니 하는 평을 한 문단 인사들이 못 마땅할 뿐이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픈 말은 '이게 소설이냐'하는 거다. 아니, 소설이라는 건 인정한다. 이보다 더한 소설도 봐 왔으니까. 내 말은 이게 과연 한겨레 문학상을 받을만한 소설인가 하는 거다. 흐리멍텅한 주제, 지리멸렬한 문장, 경박한 소재로 일관하는 이런 소설이! 솔직히 놀림받는 기분이다.

10년 뒤에도 이 작가의 소설이 세상을 돌아다닌다면, 그 때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겠다. 아, 그 때는 세상이 만만했지, 하며. 문학상을 받은 소설을 소설 같지도 않은 소설이라며 까댔었지, 내가 보는 눈이 한참 없었어, 하며. 사실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니 그 동안, 그러니까 강산이 한 번쯤 변하고 우리 모두에게 세상이 조금 더 팍팍해지는 동안 작가는 어디 가서 제발 문장 공부나 하고 오시길. 그리고 한겨레는 내년부터는 정신 차리시길. 그리고 누가 제발 소설 같은 소설 좀 적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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