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때부터 친구인 현옥이가 중3 담임선생님을 만나뵈는데 같이 가자고 해서 오늘 저녁 만났다. 도덕선생님이셨는데, 지금은 사회를 가르치신다고... 모습은 여전하신데, 흰머리가 조금 더 많아지셨다. 벌써 25년전이고, 선생님 연세가 60이 다 되어 보이시는 걸로 봐서 우리 담임이셨을 때가 30대 중반 내지 40대 초반이셨을 건데...
어찌나 열정적이셨는지, 매일 영어 단어 다섯개씩을 쪽지 시험을 봐서 한 사람이라도 틀리면 반 전체가 기합을 받았다. -운동장 돌기(비오는 날은 강당 돌기)
다른 친구에게 폐끼칠까봐 미안해서 열심히 외도록 하신 방법이셨겠지만...그땐 참 투덜투덜거렸었지...준비물 안 챙겨가도 운동장...체육대회 땐 줄다리기 잘 하는 요령을 가르쳐주시며 연습시키셨고...(간격을 넓게 서고, 겨드랑이 사이에 줄을 끼우고 뒤로 넘어지라고-결과는 1등) -이 이야기를 했더니, 빙그레 웃으시며 "내가 그랬어?" 하신다.
오늘 뵌 선생님의 모습은 인자하신 훈장님 같다. 열정이 빠져나간 자리에 편안함이 자리잡았다. 안색이 맑아보이셨다. 돈도, 명예도, 다른 사람의 사생활에도 관심 없고 오로지 아이들과 잘 생활할 생각만 하고 사셨다고...담임을 맡으면 담임반 아이들을 잘 단도리(일본말?)하고 가르치고 하시는 일에만 관심 기울이셨다고...요즈음은 애들이랑 놀아주신다고 하신다. '애인 때문에 고민스러워요' 하며 말걸어 오는 아이도 있고..."그럴땐 뭐라고 하세요?" 했더니, '잘 해봐라'하신다고...^^
선생님께서 '박여사'라고 부르시는데, 그 말이 재밌으면서도 그리 어색하게 안들리는 건 내가 나이가 들어선가보다. 작년에 복지관에서 집단상담할 때, 연령대만 맞으면 프로포즈하고 싶다고 하셨던 그 어르신도 '여사님'이라고 부르셨었는데... 그 분 어떻게 지내시는지 가끔 궁금했는데, 선생님께서 '여사'라는 단어를 쓰시니까 그분 생각이 잠시 들었다.
큰애 진로에 대해서 여쭈어 봤더니, 선생님 말씀이, 여자들은 교사가 직업으로서 참 좋다고 하시며, 근데, 국어, 영어, 수학 선생님은 너무 힘이 들어서 돈은 많이 벌수도 있지만 몸이 상하기 쉽다고 하셨다. 그 중 수학은 그래도 낫지만 국어, 영어 선생님은 힘이 더 많이 든다고...(알고 지내는 국어, 영어 선생님이 몇 사람 있는데...새삼 다시 생각해 보았다.) 큰애가 미적 감각이 있어 보인다고 했더니, 예체능 교사를 하면 좋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에게 공부해보지 않겠냐고 권하셨다. 40이면 이제 새로 시작하기 좋은 나이라고...앞으로 고령화 사회가 되니까, 활동을 오래 할 수 있도록, 나이 들어서도 써먹을 수 있는 자격증이 나오는 전문직을 택해 보라고...약사든 한의사든...그러고나서 여유가 생기면 자원봉사도 하고 여유롭게 살면 좋지 않겠냐고...글쎄...아이들 진로 탐색할 나이에 내 진로 탐색을 하고 있다니...쩝. 젊을 때 해결했어야 할 일을 미룬 결과 아닐까? 선생님 말씀대로 새로 생각해 보기에 적절한 나이일까?
아무튼 선생님 만나뵌 2시간여 동안 중학생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고 반갑고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