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못미더울 때는 어떡해야 하나?

이제까지 남탓으로 돌려왔던 많은 문제들이 사실은 나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고...

스스로가 굳건하고, 마음을 잘 표현할 줄 알고, 다른 사람의 마음도 잘 헤아려서 중용을 지킬 줄 안다면 그다지 어려운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나 자신이 상당히 충동적이고 산만하고, 소극적이어서 주저하다가 생기는 화를 때로 공격적으로 표현하는 바람에, 그리고 한편, 머릿속에서 머물 뿐, 감정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계속해서 생겨나는 반복적인 문제들...

'난 왜 이러나'라는 자책감이라기보다는 '잘 해보자'는 실천적 반성이기 때문에 마음이 무겁지만은 않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베짜타 못가에서 중풍병자에게 "낫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다.( '당연히 낫기를 원하겠지. 그걸 왜 물어보시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중풍병자가 "선생님, 그렇지만 저에겐 물이 움직여도 물에 넣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 혼자 가는 동안에 딴 사람이 먼저 못에 들어갑니다."하고 말한 대목이 인상적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일어나 요를 걷어 들고 걸어 가거라." 하시자, 그 사람은 어느새 병이 나아서 요를 걷어들고 걸어갔다. 얼마 뒤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자, 지금은 네 병이 말끔히 나았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그렇지 않으면 더욱 흉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하고 일러주셨다.

중풍병자라면, 혼자서 몸을 못 움직이는 사람을 말하는 걸텐데, 죄를 지으면 더욱 흉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하셨다는 것은... 죄를 지어서 생긴 병이라는 뜻이겠다. 무슨 죄일까? 판단, 의심, 게으름 등등을 말하는 게 아닐까? 다른 사람을 못 믿어서, 스스로를 못 믿어서 독립적으로 살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 "저 혼자 가는 동안에 딴 사람이 먼저 못에 들어갑니다."라는 말은 그럴듯 해 보이지만, 스스로에게 무책임하다. 다른 사람에게 "나 좀 도와주시오."라고 부탁하던가, "내가 먼저 가게 양보해 주시오. 난 너무나 오랫동안 앓아온 사람이니, 이번엔 꼭 낫고 싶소."라고 간곡히 말할 수 있어야 스스로를 책임지는 사람의 자세일 것이다. 이런 말을 못하는 이유는 뭘까? '사람들이 분명히 거절할 거라는 판단', '거절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 '자존심 상함', ' "꼭 말을 해야 아나? 양보 좀 해주지. 사람들이 이기적이라서 양보를 못 해."라며 투덜거리며 화내는 마음' 들이 작용했을 것이다. 예수께서 이 마음을 낫게 해 주셔서 중풍병자가 요를 걷어들고 혼자서 걸어갔지만, 또다시 이런 마음이 들면 더욱 흉하게 마음이 피폐해지고, 또 의존적이고 수동적인 사람이 될 수 있으니 (마음을) 조심하라고 일러주신 것일 거다.

예수님이나 하느님, 부처님만 믿을게 아니라, 자기자신을 믿을 수 있어야 진정 건강한 사람일 것이다. 자신이 완벽하기 때문이 아니라, 부족한 자기자신을 그냥 그대로 믿는 자세가 필요하겠다. 그리고, 이런 자신을 대다수의 다른 사람들도 받아들여 줄 거라는 믿음도 필요하고... '모든 사람'이 받아들여주기를 바라는 것은 헛된 욕심이겠고...

오늘의 선서!

"나는 나를 믿는다. 부족한 나를"

"나는 남편을 믿는다. 부족한 남편을"

"나는 우리 아이들을 믿는다. 부족한 그대로"

 "나는 우리 이웃을 믿는다. 부족하고 비논리적이면서 열정적인 우리 민족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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