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부터 이런저런 두려움(버림받는 두려움, 실수에 대한 두려움 등등)에서 많이 벗어나긴 했지만, 때때로 '내가 여전히 두려워하는게 많구나.'하고 느낄 때가 있다. 실패하지 않으려고, 후회하지 않으려고 무지 노력하며 사는 것같다. 이런 태도는 장점도 있지만, 여러가지 경험, 몰입을 가로막는 듯하다.

시추 한마리를 추석무렵 샀는데, 귓병이 있는지 모르고 사서, 한달반 가까이 냄새가 났다. 추석무렵에는 설사까지 심해서 이틀간 입원시켜야 했고.(나는 음식 준비해야 했고, 아이들이 병간호 하기에는 증세가 심했다) 그런데, 이 강아지가 자꾸만 이부자리로 와서 자는 거다. 제자리로 쫓으면 식구들이 자는 틈에 어느새 이불에 올라와서 자고, 딴 방에 재우면 낑낑대서 잠을 못자게 하고...

어른들이, 아파트에서 뭐하러 강아지를 키우냐고, 아이들 건강에 좋지 않다고 걱정하시는데, 조금 찜찜하지만, 의식으로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마음속 깊은 데서는 경계심이 발동했나보다. 거의 한달동안 잠을 설쳤다. 일주일에 두세번씩 치료받으러 다니고, 약 먹이고 하니까 귓병이 나아서 냄새가 안나고, 털을 깎아서 깨끗해지고 나서야 잠을 푹 잘 수 있었다. 남편과 큰딸 사이에서 갈등하느라 내 마음이 편치않았던 것과 겹쳐서 더 못잤던 것 같다.

가끔씩, 괜히 강아지 기르는데 동의했다는 후회, 다른 놈으로 바꿔 달랠까 하는 갈등,  조그만 놈한테까지 매여야 하는 답답함, 이런 것들이 불쑥불쑥 치밀었는데, 둘째딸이 너무나 강아지를 예뻐하는 통에, 그리고 한번 받아들인 생명을 더이상 내손으로 버릴수는 없다는 생각에 견뎌보자 라고 마음먹게 되었다.(전에 햄스터가 새끼 낳아 어느정도 자랐을때 햄스터 가족 다섯마리랑 거북이 두마리를 가게에 돌려준 적이 있다. 거북이는 아깝지만, 수족관이 너무 무거워서 물갈이 해주기가 만만치 않았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나에게 경계심이 얼마나 많은지 깨닫게 되었다.

초자아가 강해서, 심신에 장애를 가진 사람이나 비위생적인 환경들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니까, 내가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고 착각했는데,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큰 경계심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보다는 아이들로 인해 생기는 경계심인데(마치 어미토끼가 새끼토끼들 키울때 경계하듯 본능적인 경계심),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르겠지만, 너무 심하면 좋지 않으리라는 것은 뻔한 이치.

이런 내 마음을 바라보며 서서히 닦아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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