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 대하여

                                                                예언자 中,            칼릴 지브란

그러자 아기를 품에 안고 있던 한 여인이 말했다. 저희에게 아이들에 대하여 말씀해 주소서.

그는 말했다.

그대들의 아이라고 해서 그대들의 아이는 아닌 것.

아이들이란 스스로 갈망하는 삶의 딸이며 아들인 것.

그대들을 거쳐 왔을 뿐 그대들에게서 온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비록 지금 그대들과 함께 있을지라도 아이들이란 그대들의 소유가 아닌 것을.

 

그대들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순 있으나 그대들의 생각까지 줄 순 없다.

왜? 아이들은 아이들 자신의 생각을 가졌으므로.

그대들은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은 줄 수 있으나 영혼의 집마저 줄 순 없다.

왜? 아이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살고 있으므로. 그대들은 결코 찾아갈 수 없는, 꿈속에서도 가 볼 수 없는 내일의 집에.

그대들 아이들과 같이 되려 애쓰되 아이들을 그대들과 같이 만들려 애쓰진 말라.

왜? 삶이란 결코 뒤로 되돌아가진 않으며, 어제에 머물지도 않는 것이므로.

그대들은 활, 그대들의 아이들은 마치 살아있는 화살처럼 그대들로부터 앞으로 쏘아져 나아간다.

그리하여 사수이신 신은 무한의 길 위에 한 표적을 겨누고 그분의 온 힘으로 그대들을 구부리는 것이다. 그분의 화살이 보다 빨리, 보다 멀리 날아가도록.

그대들 사수이신 신의 손길로 구부러짐을 기뻐하라.

왜? 그분은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시는만큼, 또한 흔들리지 않는 활도 사랑하시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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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는 활'이란 말에 마음이 흔들린다. 흔들리지 않게 되었으면...이것도 욕심인지도...

큰딸은 남편도 나도 닮지 않아서 파고들어 알아내려 하기보다는 경험하고 노는 것을 즐긴다. 외모에 아주 신경을 쓰는만큼 예쁘기도 하고... 나는 일견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약간의 걱정이 따르고, 남편은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나를 앞세워서 딸을 통제해 보려 하지만, 내가 자기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아서 답답해 하고 있다. 딸은 아빠를 경계하고 있고.(자신을 안믿어주는 사람을 경계하기 마련이니까.) 딸과 남편 사이에서 신경을 써야 하는게 나는 또 싫다. 그냥 남편이 내 스타일대로 따라와 주었으면 한다. 이 욕심! 때때로 이래도 되는걸까? 하고 나자신도 흔들리면서. 그럴때마다 먼저 아이를 키운 선배들에게 상의하기도 하면서, 이 세상이 다 하느님 품 안이라고 위로하곤 한다. 앞으론 가끔씩 아이에게 메일을 보낼 생각이다. 서로 말이 별로 없어서 딸과 엄마라기보다는 아들과 아버지같은 느낌이 드는 모녀간이다.

그리고... 이 글에서 '아이들'  자리에 '남편'을 넣어서 읽어 보아야겠다.

....역시 말이 된다. 남편에게 나의 양육방식을 강요할 순 없다. 순순히 들어줄 사람도 아니고. 서서히, 가랑비에 옷 젖듯이 젖어 들 수는 있겠지만...그것도 기대할 것은 없고.

'남편에게 사랑을 줄 순 있으나 생각을 줄 순 없다.'

결국, 남편과 아이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것을 '즐기는' 수밖에 없겠구나.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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