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中,    백성욱 가르침

마음에 간절히 그리면 그대로 되어진다. 그래서 중생은 시시각각으로 소원을 성취하지만, 아상이 있기 때문에 또 시시각각으로 불만을 갖게 된다.

닦는다는 것은 절대적인 어떤 것을 이루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되고자 하는 바로 그 마음을 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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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자유의 길,       안셀름 그륀

      중풍병자의 치유

예수께서 나병환자를 치유하고 며칠 뒤 다시 가파르나움의 어떤 집에 가셨다. ...그때 네 사람이 중풍병자를 데려왔다. 그들은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병자를 침상에 뉘어 예수께 내려보냈다.... 경직되고 마비된 상태는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물음에 대해 우리는 먼저 마비의 근본 원인으로 불안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불안은 나를 마비시킨다. 불안은 나를 경직되게 하고 주저하게 만든다. 다른 사람 앞에서 무엇인가 말하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나는 경직되고 마비된다. 다른 사람의 판단에 겁을 먹고 있는 것이다. ..어려운 상황, 권세있는 사람, 위험 등에서 우리는 불안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행여 자신의 죄가 드러날 수 있다는 불안을 느끼기도 한다...예수께서는 중풍병자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대 죄가 용서 받았습니다."

환자에게 죄를 용서하다니 무슨 말인가?

예수께서는 마비가 내적 태도와도 관련됨을 느끼신다. 죄란 무엇인가 결핍된것, 빗나간 삶을 뜻한다. 중풍병자는 자신이 완전해야 하며 나약한 점을 보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빗나간 인간존재의 삶을 살고 있다. 그는 결코 나약한 점을 스스로 용납하지 않았기에, 그 자체로 빗나가 있었고, 질병으로 인해 침상에 묶여 있었다. 어떤 경우에도 실패를 피하는 사람은 항상 불안의 무덤에 머물러 있게 된다. 중풍병자는 계명을 어긴 적이 거의 없었지만, 당당한 삶을 거부했다. 그의 본질적 죄는,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삶을 당당하게 제대로 살지 않았다는 데 있다. 예수께서는 중풍병자에게 삶을 당당하게 살지 못한 삶, 삶을 거부하는 태도를 지적하신다. 그리고 그분은 중풍병자에게 죄의 용서와 하느님에 의해 조건없이 받아들여졌음을 선언하시어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하신다. "그대는 죄책감을 버려라. 죄책감으로 괴로워하고 그대 자신을 자학하지 마라. 그대 자신이 될 수 있도록 용기를 가져라. 그대의 실패와 나약함에도 일어서라. 삶을 거부하는 태도를 버려라. 그대 자신을 신뢰하며 살아라."...이제 중풍병자는 더 이상 불안에 얽매여 있지 않다. 그는 자신의 삶을 더 이상 거부하지 않는다. 이제 신뢰가 불안을 이겨낸다.  그는 일어나는 일을 감행한다.

나(저자)는 중풍병자의 태도를 익히 알고 있다. 언젠가 피정 지도를 맡았을 때, 나는 피정 참가자들에게 좋은 강의를 하기 위해 늘 노심초사했다. 아주 좋은 피정이 되어, 참석자들이 모두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억압했다. .. 이때 예수의 이런 말씀이 마음에 떠올랐다. "일어나 침상을 들고 집으로 가시오." 나는 이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하여 골똘히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고, 그것은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그냥 강의실에 가서 내 마음속에 있는 느낌을 신뢰하며 강의를 시작했다. 이것은 내게 일종의 해방을 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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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풍병자에게 죄가 있었다는 것은 나에게는 이런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판단'이라는 죄. 우리는 성장하면서 여러가지 판단을 당하고, 거기에 민감한 사람들은 스스로 또 판단기준을 세워 남들을 판단함으로써, 그런 판단을 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의 삶을 좁혀간다.

나도 이런 중풍병자 중의 한사람이었다. 경직된 사고방식과 판단체계와 나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가진...

'판단'으로부터 훨씬 자유로워지니까 세상이 더 환하게 보이고 사람들의 장점과 재능이 보이기 시작한다.

요즈음 아픈 것은 나의 문제들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나타나는 일종의 통과의례인 것 같다. '선악과'를 뱉어내는 중이다. 그것이 '선과 악을 가리고자 하는 판단'의 과일이라면...

백성욱 스님 말씀에 따르면, 닦는다는 것은 그렇게 되고자 하는 바로 그 마음을 쉬는 것이라는데, '만족'이 있어야 가능한 것 같다.

이제 나는 남편에게 만족하고 아이들에게 만족하고 나 자신에게 만족한다. 이렇게 복잡한(내 판단이겠지) 이 세상도 만족스럽다. 때때로 불만스러운 점이 생기기도 하겠지만, 이전처럼 괴롭진 않을 것 같다. 하늘아래 새로운 일 없다고, 사람이 나타난 이래, 세상이 불합리하고 부조리하지 않았던 적이 단 하루나 있었겠는가... 그런게 현세상인 것을... 나자신과 가족들을 사랑하고, 내 작은 힘으로 이웃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해나가며, 그 결과를 즐기는 것, 그것이 나의 삶이 될 것이다.

이제, 겸손하고 단순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제비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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