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정말 투사가 될 수 없다. 인생에서도... 그냥, 기도하는 순례자로 남는 것이 내 본성에 맞는 선택인 것 같다.

내 앞에 어떤 운명이 펼쳐져 있든 두려움없이 나아가는 것. 그러고 싶지만, 나로선 역시 성모님께 기도를 청하면서, 가능하면 고통이 적은 쪽으로 삶의 길이 펼쳐지기를 바란다.

주일 미사를 두번 빠지고, 평일미사는 두주간 빠졌는데, 영혼이 메마르는 것 같다. 다시 미사에 참석해야겠다.

오늘 예수님 메세지 책을 펼쳤는데, '육체에서 떨어져 나가는 지체는 어떤 것이든지 잠깐밖에 살지 못한다. 굵은 가지는 하나도 몸통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을 것이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어느 것이든지 잘려 나갈 것이다. .. 밝은 것은 모두 밝은 채로 남아있어야 하고, 어둡게 하는 것은 모두 제거되어야 한다.' 라는 대목이 눈에 띠었다. 본래의 오늘의 메세지는 '내 사랑 안에서 네 영혼을 즐거워하게 하고 나를 찬양해라.'는 대목인데...성모님 메세지는 '아끼는 사람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예수님은 돌아가심으로써 그 사랑으로 (너희에게)당신 생명을 주신다....이 갈바리아길을 너희도 순하고 온화하게 걸어가야 한다....너희 마음이 침묵에 잠기게 하여 그분의 '신적인 말씀'에만 귀를 기울여라. 침묵하여라. 아무도 판단하지 말아라.  너희 삶으로 말하여라.'이다...

신의 메세지, 예수님의 메세지, 성모님의 메세지들이 여러 종류 있는 것 같다. 심리학자들은 자기 무의식의 이야기를 듣는 거라고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중에 자기 무의식에서 듣고 싶어하는 내용과 같은 것이 있을 때 선택하면 되지 않겠는가... 성철 스님도 소화 데레사 성녀도 겸손하고 참회하고 말없이 실천하라는 걸 가르치셨는데, 내가 그걸 원하면 순명하면 될 것이다.

요즈음, 내 영혼을 즐겁게 하려면 우리 가족과 알콩달콩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나의 자아가 '나'에서 '가족'으로 확장된 것이다. 이전에 세계평화니 이웃을 위한 기도니 했던 것은 '나'의 본성적인 허영심에서 비롯된 거짓 자아확장이었다는 걸 요즈음 깨닫는다. 나의 만족감을 위한... 내가 '가족 이기주의'에 빠지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 자랑스러워 하면서... 하지만,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나의 가족'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부르짖는 세계평화는 모래위에 쌓은 성 같은 것 아닐까? 조금만 시련이 오면 바로 '나'로 되돌아가버리게 되는...

그렇게 볼 때, 가족을 생각하는 것이 이기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고 자아확장의 발전단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것 같다. 다만, 여기 머무를 것이냐 더 확대할 것이냐 선택을 해야겠지. '자기 생명을 바치고 싶은, 아끼는 사람'의 범위를 어디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내가 생각하는 '생명'은 시간, 관심, 노력, 희생이다. 내가 팔팔하게 살아있다는 것은 지기 싫어하고, 희생하기 싫어하고, 관심이 '나'에게만 있고, 귀찮아 하고... 이고, 생명을 바친다는 것은 관심을 그들에게로 쏟아주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고 그들의 영혼에 좋을 일을 해 주는 것일 거라 생각한다.

온화하고 겸손하게... 어제 읽은 '배움의 도'에서도 마음에 와닿았던 단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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