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눈 포도주와 갈퀴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유치원에서 배웠다, 로버트 풀검, 김영사

뒷집 사람과 나는 서로 상대방을 색안경을 끼고 본다. 내가 보기에 그는 갈퀴질이나 하고 삽질이나 하는 사람이며, 자연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말썽꾼이며, 황야를 정복한 그런 종족의 후예이다. 반면 그는 나를 게으름뱅이로 여기고 있다.

가을이면 그는 한 주일이 멀다 하고 낙엽들을 갈퀴로 긁어모아 쌓아두기에 바쁘다. 그리고 눈이 올 때마다 밖으로 뛰쳐 나와 삽으로 흰 눈을 못살게 군다.

그의 지나친 열성 때문인지 아니면 난폭함 덕분인지 몰라도, 언젠가는 두껍게 얼어붙은 서리까지 용케 삽으로 다 치워낸 적도 있다. "자연이 사람을 앞지르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자연에 깃들인 신의 섭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사뭇 조심스럽게 말해준다. 나뭇잎은 수천 수만 년 동안 그렇게 낙엽이 되어 떨어져 왔다고, 또 대지는 갈퀴와 사람이 있기 전에도 꽤 잘 조화를 이루어 왔다고 그에게 말해준다.

대자연은 낙엽을 놓아두고 싶은 곳에 놓아두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더 많은 흙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그리고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흙이 필요하다고 그에게 말해준다. 왜냐하면 우리가 흙을 계속 써 없애기 때문이라고 깨우쳐준다.

그리고 흰눈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결코 우리의 적이 아니라고 말해준다. 눈은 우리더러 하루쯤은 일손을 늦추고 쉬면서 잠자리에 있으라는 것을 알리는 신의 계시이다. 그뿐만 아니라, 눈은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이 저절로 녹으며, 낙엽들과 한데 섞여 더 많은 흙을 만들어낸다고 그에게 말해준다.

그의 뜰은 정말 말쑥하다. 나는 그것을 인정해야만 하리라. 말쑥하다는 것이 중요하다면 말이다. 그리고 지난번에 눈이 왔을 때 그는 차 있는 데까지 가는 동안 넘어지지 않았지만, 나는 미끄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가 비록 갈퀴질이나 하고 삽질이나 하는 사람이긴 하여도 좋은 이웃임에는 틀림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는 편견이 없다.

하지만 내 뜰은 붉은 색, 노란색, 초록색, 갈색이 서로 어우러져 마치 아라비아 양탄자 같은데, 그의 뜰은 그렇지 못하다. 그리고, 그가 기껏 눈에 삽질이나 하고 있는 그 시간에, 나는 다음 해 칠월이 오면 오렌지 주스에 섞어 마실 눈을 병에 담고 있었으며, 테이프에 눈 내리는 소리를 녹음해서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는 데에 썼다.(눈은 정말 쓰임새가 많다.)

나는 그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겨울눈 한 병에다 눈 내리는 소리가 녹음된 예의 그 테이프를 끼워 보냈다. 그는 나에게 갈퀴를 선물하였다. 우리는 서로 그것들의 적절한 쓰임새에 관한 교훈을 주고받은 것이다.

나는 그가 신앙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그를 교화시켜 나갈 작정이다. 그는 또 내가 지나치게 종교적이라고 여겨 나를 신앙심에서 좀 끄집어내려고 애쓴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이 모든 것의 마지막에는, 내가 이기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도 나도 또 여러분까지도 모두 나뭇잎과 눈이나 마찬가지로 흙이 되어, 사람들이 갈퀴질이나 삽질을 하든 말든, 나뭇잎과 눈이 가는 곳으로 가고 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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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마지막에는 내가 이기게 되어 있다.'에서 웃음이 나왔다. 노인의 천진함(?)이 느껴져서. 지금의 나라면 아마 '내가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겸손해지자.'라고 마무리 할텐데...

그리고, 지금의 나는 너무 민감한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을 나와 너무나 비슷하면서(어리석은 점에서) 한편 너무나 이질적인 사람들로 느낀다. 나 자신의 모든 면이 껄끄럽게 느껴지면서, 수용하는 것이 잘 안되어서 그럴거다.

오늘 아침, 남편의 친구가 변호사 사무실 개업한지 일년 정도 되었는데, 사무실 유지가 어려워 힘들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람들이 서로 절충 못하고 싸우고 소송 걸어줘야 그 사람은 먹고 살겠네."라고 말하며 같이 웃었다.

그래. 내가 꿈꾸는 평화로운 세상은 꿈일 뿐이기도 하지만, 먹고 살기 힘들어서 직업을 바꾸어야 할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지겠다. 변호사, 의사, 경찰, 청소부 등등

하느님께 변호사가 '식구들 먹여 살리기 힘들어요, 하느님. 은총 내려 주세요.' 하고 간절히 빌면 하느님은 어느 누군가가 소송을 절대로 취하할 마음이 없도록 만들어 주셔야 할 거다. 이제 막 개업한 의사가 '은총 내려 주세요.'하고 기도하면 하느님은 여러 사람들이 운동안하고 과식해서 병에 걸리도록 방치해 두셔야 할 거고. (그렇게 안하셔도 사람들이 알아서 소송 취하 안하고 운동 안하겠지만... 변호사랑 의사 먹여 살리려고...)

무질서와 어리석음도 세상살이에 필요한 거겠다는 생각을 해 보는 아침이었다. 하느님도 이렇게 세상을 관조하실까?

나는 이제 무엇을 하길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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