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나눈 이야기 1  -나는 너희가 원하는 것을 원한다             Neal Donald Walsch

인간의 모든 행동은 그 가장 깊은 단계에서는 두 가지 감정 중 어느 하나, 곧 두려움이나 사랑에서 시작된다... 그 밖의 모든 개념들은 이 둘의 파생물에 지나지 않는다. ... 사람들의 행동이 거듭 반복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 이런 사정 때문이며, 사람들이 사랑하다가 파괴하고 다시 사랑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이 감정에서 저 감정으로 늘 흔들린다. 사랑은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은 사랑을 낳고 사랑은 두려움을 낳고... 그리고 그 이유는 신이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첫번째 거짓말, 너희가 신에 관한 진실이라 여기는 바로 그 거짓말에서 찾을 수 있다. 신의 사랑에 기댈 수 없으며, 신은 너희를 조건부로 받아들이며, 따라서 궁극의 결과는 불확실하다는 그 첫번째 거짓말에서. 너희가 항상 거기에 있는 신의 사랑에 기댈 수 없다면 대체 누구의 사랑에 기댈 수 있다는 말인가? 너희가 제대로 해내지 않는다고 해서 신이 뒤로 물러나 움츠린다면 평범한 인간들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지 않겠느냐?..... 그러나 '자신이 누구인지 Who You Are' 안다면, 자신이 신이 창조한 가장 장대하고 가장 비범하고 가장 멋진 존재임을 안다면, 너희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그토록 경이로운 장대함을 그 누가 거부할 수 있겠는가? 그런 존재에게서는 신조차도 흠을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자신이 누군지 알지 못하며, 엄청나게 못난 존재로 생각한다. 그러면 너희는 자신이 그토록 못난 존재라는 생각을 어디에서 얻었을까? 온갖 것들에 대해서 너희에게 자신들의 의견을 전해준 유일한 사람들, 즉 너희의 어머니와 아버지에게서이다.... 그들은 너희에게 이건 지나치고 저건 부족하다는 식으로 말해오지 않았던가? 너희는 그들이 너희를 바라보긴 하지만 받아들여주지는 않는다는 걸 몇번이나 느끼지 않았던가? ...... 이 두려움에 근거한 사랑의 실체가 너희의 사랑 체험을 지배하고 있으며, 사실 그런 체험을 실제로 창조하고 있다.

...당신은 내가 굶어죽어가고 있는 아프리카 아이들과, 미국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불의, 브라질에서 수백명의 목숨을 빼앗아가는 지진에 대해 유감스럽게 느끼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신의 세계에는 "해야 한다"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없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하라. 너를 반영하는 것, 너 자신의 위대한 변형으로서 너를 재표출해주는 일을 하라. 유감스럽게 느끼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

그러나 심판하지도 비난하지도 마라. 왜냐하면 너희는 그런 일이 왜 일어나는지도, 어떤 식으로 끝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차라리 네 가장 고귀한 '자신'을 더 이상 반영하지 않는 것들을 바꾸려 노력하거나, 그런 것들을 바꾸고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도록 하라.

 그럼에도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것들을 축북하라. 그 모든 것이 다 신의 창조이고,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창조이기에. ...나는 한번도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하라"거나 "하지 마라"는 걸 설정한 적이 없다. 그렇게 한다면 너희가 받은 최고의 선물, 즉 너희가 원하는 대로 하고 그 결과를 체험해볼 기회와, 너희가 '참된 자신'의 모습과 닮은꼴에 비추어 자신을 새롭게 창조할 기회와, 또 자신의 가능성에 기반을 두고 더욱더 고귀한 자신을 만들어줄 공간이란 선물을 빼앗는 것이 되리라.

어떤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이 "그르다"는 것은 너희가 그것들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것들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너희 자신을 금하는 것이다. 너희를 금하는 건 자신을 제한하는 것이며, 자신을 제한하는 것은 '참된 자신'이라는 실체를 부정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 실체를 창조하고 체험할 기회를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내가 너희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노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사람들이, 내게 복종하지 않는다면 내가 너희를 지옥으로 보내리라 주장한다. 무슨 그런 자유의지가 있단 말인가? 이런 주장은 우리 사이의 진짜 관계가 아닐 뿐 아니라, 신을 조롱하는 짓이기도 하다.

지옥은 있다. 그러나 너희가 상상하는 그런 것은 아니다. 그리고 너희는 세상이 너희에게 제공하는 여러가지 이유들 때문에 지옥을 체험하는 것은 아니다. 지옥은 너희의 선택과 결정과 창조들이 일으킬 수 있는, 최악의 결과를 체험하는 것이다. 그것은 나(神)를 부정하는 모든 생각, 즉 '자신'과 나와의 관계를 부정하는 모든 생각의 당연한 귀결이다.

지옥은 잘못된 사고로 너희가 겪는 고통이다. 그러나 '잘못된 사고'란 용어조차도 틀린 것이다. 잘못된 것 같은 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지옥은 기쁨과 정반대되는 것이다.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음이다. 그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는 있으되 체험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못난 존재이다. 그것이 바로 지옥이며, 너희 영혼에게 그보다 더 끔찍한 건 없다. 하지만 너희가 상상하는 그런 곳, 불길 속에서 영원히 불타거나, 고통스런 상태에 영원히 갇히게 되는 그런 곳으로서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체 내가 그런 것에 무슨 의미를 둘 수 있단 말인가?

 설사 내가 너희는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는, 지극히 신답지 못한 생각을 품고 있달지라도, 무엇 때문에 내가 너희의 실패에 대해 앙갚음하거나 벌하려 들겠는가? ...만일 너희가 정의의 필요성 때문이라고 답한다면, 천국에서 나와 가까이 지낼 수 없다는 것만으로도 정의라는 목적은 간단하게 달성되지 않겠는가?

너희 이외에 어느 누구도 너희를 심판하지 않을 것이다. 신이 왜, 어떻게 자신의 창조물을 심판하고 나쁘다고 규정하겠는가? 만일 너희가 완벽하길 바라고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내길 바랐더라면, 나는 너희를 너희의 고향인 절대완벽 상태에 그대로 남겨뒀을 것이다.  이 과정의 전체 핵심은 너희가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요, 참된 자신으로서, 그리고 너희가 참으로 되고자 하는 바대로 너희 자신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너희가 다른 것이 될 수 있는 선택권까지 갖지 않는다면 너희는 그렇게 될 수 없을 것이다.

 나 스스로 너희 앞에 놓아준 선택권을 행사한다는 이유로 너희를 벌주어야 하는가?

너희는 응보를 두려워하지 않고 원하는대로 해도 좋다. 그러나 그 귀결을 깨닫는 것이 너희에게 도움이 되리라.

귀결consequence이란 결과result다. 당연한 결말(outcome). 이것들은 응보나 징벌과는 전혀 다르다. 결말은 자연법칙의 자연스런 적용에서 결과하는 것이다.

너희에게 징벌처럼 비치는 것, 혹은 너희가 악이나 불운이라 부르는 것들은 스스로를 주장하는 자연법칙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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