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덕의 길,                      예수의 성 데레사,    바오로딸

우리는 너무나 자신한테 집착하고 자기를 너무나 사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겸손과 자아이탈! 이 두가지 덕만 가지고 있으면, 누구든지 훌륭히 성공할 수 있고, 온통 지옥을 상대로 하든, 전 세계와 그 모든 유혹을 상대로 하든, 넉넉히 싸워서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천국이 그의 것이니 누구를 무서워할 것이 없고, 무서워할 누구도 없는 까닭은 모든 것을 잃는대도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며, 잃음을 잃음으로 알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 무서운 것은 하느님을 촉범할까 함이니, 이 두 가지 덕을 제탓으로 잃음이 없이 고스란히 지켜지기를 빌 따름인 것입니다.

우선 힘쓸 일은 우리의 육체에 대한 사랑을 깨끗이 없애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본성의 응석을 지나치게 받아주기 때문에 수도원에 사는 것이 적지 않은 고생인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육체를 너무 아끼기 때문에 고생을 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특히 수도자의 경우 그렇지만 수도자가 아닌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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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자신의 본성의 응석을 지나치게 들어주는 것에서 벗어나기. 나 자신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기. 이제 시작해 보려 하는데, 무척 어려울 것이다. 도를 닦는다는 것을 막연히 사람들과 떨어져 홀로 좋은 책 읽으며 맑은 마음을 갖는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다만, 분별심이 많이 생겨 사람들과 섞이는 것이 힘들 때는 홀로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질 필요가 있다고 백성욱 스님도 말씀하셨다.

요즈음 생각해 보는 건데, 내가 나자신과 타인에게 무의식적으로 많은 사소한 것들을 금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바리사이파처럼... 그래서 사람들에게 과정보다 결과를 보여주고 싶어했고, 사람들에게서도 과정보다 열매를 보고 싶어했던 것 같다. 부정적인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고 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이야기해야 없어지기 쉬운 것인데... 덮어두면 더 오래 가고, 마음 속에 쌓여 있는 것을... 마치 '회칠한 무덤'처럼.

-감당할 수 있으면 침묵하기(자아이탈).  물론, 웅변보다 침묵이 더 큰 덕일 것이다.

-감당할 수 없으면 이야기 하기(겸손). 내가 그것밖에 안되는 사람인 것을 스스로에게 인정하고 상대방에게도 표현하기. 

-잠 줄이기, 교만한 마음 없애기, 더 부지런해지기, 더 외향적으로 되기, 덜 먹기(그러려면 스트레스를 덜 받아야 하고, 외롭다는 느낌을 덜 가져야 한다.) -이런 일들을 나에게 '금지'나 '명령'하기 보다는 '권한다.'  더 자도 되고, 이 정도 교만해도 삶에 지장 없고, 좀 게을러도, 내향적이어도 별 문제 없고 나름대로 장점이 있고, 이 정도 먹는 것도 크게 문제되지 않겠지만,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으니까... 궁극적으로 만족을 주는 삶을 지향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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