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굉장히 의존적이어서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하면서도 도움받지 않으려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순된 감정을 갖고 있다. 첫째 이유는 거절당하는 것이 싫어서이고, 두번째 이유는 어른이면서 의존적인 것 그 자체가 싫어서이고 세번째는 내가 의존하고 싶은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 때문인 것 같다.

어제는 서울 사는 동생네 집들이를 갔다가 아이들 데리고 남편이랑 롯데월드에 다저녁때 갔다가 밤 11시에 집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남편 회사는 서울에 있으니까, 내가 남편 차를 몰고 집에 내려오면 남편이 일주일간 불편하긴 하겠지만, 남편이 청주까지 내려왔다가 월요일 아침에 다시 서울로 가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어서 내가 운전해서 가보겠다고 제안했다. 남편은 걱정스러워 했지만, 내가 운전경력 12년까지 들먹이며 자신있는 말투로 해보겠다고 하니까 네비게이션으로 우리 동네를 맞춰 주고는 고속도로 진입로까지의 경로를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남편이 설명해준 길과 네비게이션이 가르쳐 주는 길이 달랐다는 데에 있었다. 거의 한시간이나 헤매며 진입로를 찾다가, 나중에는 으슥한 외곽동네 골목까지 나오는데... 어둡기는 하고, 방향감각은 원래 없고, 큰애는 걱정해주며 격려를 해주지만 실질적인 도움은 안되고... 내 소심한 마음이 다시 고개를 들며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주님!'하고 마음 속으로 부르짖었다. 바로 다음 순간 아버지께서 전화하셔서 눈이 많이 오고 있으니 서울에서 그냥 자라고 권하셨다. 걱정하실까봐 사정이야기는 못하고 그러겠다고 하고선 남편한테 전화하기 위해 차를 길가에 세우자마자, 남편이 전화를 해왔다(!) 결국, 남편이 택시로 우리 차 있는 데까지 찾아와서 집으로 출발했다. 춥고도 길고도 어두웠다가 내 마음속의 어두움이 하나 스러져 조금 밝아진 은총 가득한 시련이었다. (어쩌면 우연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런 일을 은총으로 생각하며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진짜 은총인지도...)

자기 일에만 몰두하고 가장으로서의 역할은 돈벌어다 주는 것과 관리자라는 신념을 가진 듯이 보이는 남편에게 절망을 느끼며 우울하던 내 마음을 다독여 줄 수 있었다. 가끔씩 '남편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라든지, '나같은 사람이 왜 결혼은 해가지고 이런 고민을 하며 산단 말인가...' 라는 생각에 우울해지곤 했는데, 며칠전 '하느님의 은총은 사람을 통해서 전해진다.'는 신부님 말씀에 마음을 추스리며, '하느님께서 남편을 통해 나와 아이들에게 의식주를 전해주신다고 생각하며 감사하자.'라고 마음먹었지만, 남편을 보는 순간 그 마음은 사라지고 원망하는 마음을 추스릴 수 없었다. 그러면서, 이런 내 마음을 남편한테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것도 나의 문제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런데, 어제 한시간 헤매다가 집으로 내려오는 동안 남편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 남편도 마찬가지라는 것, 누가 먼저 도움을 주어야 할까 라고 한다면 하느님께 더 많은 걸 받은 내가 먼저일 거라는 것. 하느님을 대리해서 서로의 장점을 가지고 서로 돕도록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인연지어 주신다는 것. 그중에서 가족은 특별한 인연이라는 것. 그리고, 서로의 발전을 격려해 주는 마음맞는 친구들도...

남편과 나. 아버지가 선생님이라서 모범생이라는 공통점에 끌린 것 같은데, 알고보니 둘 다 고장난 펌프처럼, 사랑을 퍼 올리기 힘든 사람들이지만(사실, 모범생만 좋아하는 부모를 가진 아이들은 그 조건화에 길들여져 사랑을 가질 마음의 여유가 없다. 이런 점에서 그런 부모들은 바리사이파와 다를 게 없다. 나도 그랬고...) , 그래도 나는 이제 하느님께서 주시는 물을 퍼담아 펌프에 넣으며 삐걱거리는 펌프를 부여잡고 물을 길어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까 조금씩 나아질 거다.

가슴을 더 넓게. 상대방을 헤아려 주기. 하느님을 대리하여 상대방이 주는 사랑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기. 그것만 제대로 되어도 사랑의 큰 흐름에 나를 맞길 수 있게 되어서 좀더 쉬워질 것이다. 마치 비상하는 새가 처음에는 날개짓을 열심히 해야 하지만, 하늘로 높이 날아올라서 상승기류를 타면 날개짓 하지 않고도 날 수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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