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 그리고 가슴에서 손까지의 거리라고 하는 말이 있다.

실천을 요구받을 때마다 때로 사회에 무관심하게 살면서 책이나 읽으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못 하고 있나 생각하다보니,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대체로 실천을 촉구하는 책들인 것이다. 그러니, 책을 읽다 보면, 책만 읽고 있는 것이 마음 불편하게 느껴지면서 실천하는 쪽으로 가게 되나 보다. 그래도 마음이 따라주지 않으면 안되는데, 기도와 명상을 하다보면 마음이 또 이웃사랑으로 향하게 된다. 아직 기도의 양과 깊이가 많이 부족해서 분별이 잘 안되어 가지고, 해야 할 일과 하지 않는게 나은 일을 구분 못하고 있기도 하지만, 점차 나아지겠지.

실천은 결국 내면 깊숙이 자리잡은 나의 어떤 면이, 편하게 살고자 하는 또 하나의 나를 부축해 가며  하는 것 같다.

우선 중점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것은

1.말의 정화 - 말을 강하게 함으로써 상대방이 저항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말을 강하게 한다는 건 내가 그 생각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고 싶다는 의식의 표현일 것이다. 강요해서 될 일이 있겠는가?

2.생각의 정화 - 치심, 진심을 정화하기. 내 방식이 옳은 삶의 방식이라 할 수 없겠고, 각자의 삶의 조건에 맞는 방식이 있을 터. 내 방식이 나름대로 좋다고 해도 반드시 단점이 따를 터. 예를 들어, 아이들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은 서서히, 중용을 지키며 해야 할 것인데, 그걸 어찌 단숨에 이룰 수 있으리라 기대하겠는가. 나 자신도 이제 감을 잡은 정도이면서. 그냥 '집착을 하면 아이에게 부담이 될 수 있어요.'라고 한들 그 말이 상대방에게 어떤 의미로  느껴질지 알 수 없는 것. *거부감을 표시하면 물어봐야겠다. 어떤 의미로 느껴지는지...

3.수용하기 - 나에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수용하기. 그 사람이 힘들게 만들고 있는 제3자를 수용하지 말고. 특히 제3자가 아이이면 나는 그만 판단력과 자제력을 잃고, 짐작되는 그 아이의 심정을 대놓고 상대방에게 이야기하게 되는데, 그러면 그 상대는 저항을 느끼게 될 것임. '그럼에도 불구하고-그가 아이를 정서적으로 학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수용할 것. (나도 전에 그러지 않았던가. 내가 아이들에게 했던 것보다는 나으리라. 그런 나도 이렇게 변했는데(앞으로도 변해야 할 부분이 많지만), 그 사람은 훨씬 빨리 나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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