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덕은 참아 견디기 어려운 사람들을 참아 견디는 데 있다고 알퐁소 리구오리 성인께서 말씀하셨어요.

-당신이 진보하면 할수록 싸움이 적어질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훨씬 쉽게 이길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왜냐하면 당신은 사물의 좋은 면만을 보게 될 테니까요. 그때는 당신 영혼이 피조물 위로 높이 오를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마침내 사람들이 내게 무슨 말을 하더라도 내 영혼을 스치지도 않게 되었어요. 왜냐하면 나는 사람들의 판단이 얼마나 견고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각자 자기 주위에 선의 씨앗을 뿌려야 해요. 그것이 싹이 나올지 어떨지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할 뿐이고 성공은 예수님께 맡겨야 해요. 이웃에게 선익이 되는 것이라면 싸움을 두려워해서는 안 돼요. 자신의 평온함을 희생하고라도 꾸짖을 것은 꾸짖어야 하며, 그것도 수련자들의 눈을 뜨게 해준다는 의도보다는 좋으신 하느님께 봉사한다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질책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느껴야 하고 마음속에 분노의 그림자조차 있어서는 안됩니다.

-당신이 덕을 갖고 있지 못했다 해도 당신을 모든 위험에서 구해 줄 '작은 강아지(선의)' 한 마리는 갖고 있습니다. 이 강아지가 당신을 천국으로 인도해 줄 거예요! 아! 덕을 소유하고 싶지 않은 영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넘어지고 약해지는 것을 받아들이는 영혼, 자기가 땅바닥에 있는 것을 보고 기뻐하며, 또 뜻밖에 다른 사람들이 그 현장을 보게 되는 것을 기뻐하는 영혼은 얼마나 적은지요!

-피로에 지친 사람, 두통을 앓는 사람, 영혼에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은 자기 일을 반밖에 하지 못해도 육체와 정신이 건강한 이들이 완전하게 해낸 것보다 더 많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라도 우리의 판단은 이웃에게 호의적이어야 합니다. 언제나 좋은 면을 생각하고 항상 변호해 주어야 합니다. 만일 가치로움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이라 해도 여전히 다음과 같이 생각할 근거는 있을 것입니다. "이러이러한 사람은 언뜻 보기에는 잘못했지만 본인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고, 만일 내가 더 나은 판단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나는 그에게 연민을 가져야 하고, 또 그 사람에게 엄격하게 대한 것을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필요로 할 때, '바늘 한땀도 더 뜨지 말고 즉시'  일어나서 가도록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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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비이성적인 견해에 나는 얼마나 괴로워하는가. 사람들의 판단이 얼마나 견고하지 못한가 깨달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말이 영혼을 스치지도 않게 되었다... 라고 성녀께서는 말씀하시는데... 나는 얼마나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겠으며, 상대방 또한 마찬가지일 것을... 사람들의 말에 이리저리 마음 산란해지지 않도록 하자.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 가급적 '바늘 한땀도 더 뜨지 말고 즉시' 일어나도록 한다면 사랑의 실천이 될 것이다. 나를 억제하는 데 꼭 필요한 덕목이다. 아이들 공부 가르치면서 동시에 내 책을 읽는 일은 이제 하지 말아야겠다. 나에게는 채우는 일이 아니라, 비우는 일이 필요하다. 비우기 위해 이런 책들을 가끔씩 읽어야 하지만, 과하면 이것 또한 채우는 일이 될 터, 안 읽느니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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