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의 울음
안도현, 창비
괭이로 밭두둑을 만들다가
괭잇날이 무심코 땅속의 돌의 이마를 때렸을 때
쩡, 하고 나는 소리
그놈을 캐내려고 서둘러 쩡, 쩡, 쩡, 쩡 괭이를 재차 내리찍어보지만
아뿔싸, 결코 만만한 놈이 아니다, 내가 뒤늦게 알았을 때
나처럼 얇은 흙의 두께를 생각하면서 나는 한없이 초라해졌다
고추 모는 한 주도 심지 못하고
나는 주저앉아 담배를 피우는데
동네 노인 한분이 지나가시다가, 두둑을 더 높게 올려 붙여야 쓰것소, 한다
햇볕이 흙을 고두밥처럼 고슬고슬하게 말릴 때쯤 되어서야
나는 괭이를 다시 들었다
괭이 자루는 여전히 서늘하였다
괭이는 땅속의 돌과 부딪치며 또 실없이 불꽃을 튀길 것인가
저 혼자 잠시, 망설였다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같이 울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괭이는 아직 모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밭머리에 이 세상 초록이 다 몰려와서 찰랑대는 날이었다
나는 괭이를 집고 서서
땅속에서 혼자 우는 돌을 생각하였다
이놈이 아구똥지다면 구들장으로 써도 내려앉지 않을 놈일지도 모르겠고,
동네 사람 스물이 둘러앉아 밥을 먹을 수 있는 평상이 될 수도 있겠고,
초등학교 운동장만큼 넓어서 헬리콥터가 두 대도 더 내려앉을 수 있을지 그것도 알 수 없는 일이고,
저 먼 대륙 하얼삔 역이나 아니면, 모스끄바 역까지 그 뿌리가 이어져 있어서 백년도 넘게 기차 바퀴 소리를 받아내고 있는 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치 소리를 듣는다는 것
안도현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떨어져 앉아 우는 여치
여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여치소리가 내 귀에 와닿기까지의 거리를 생각하는 것
그 사이에 꽉 찬 고요 속에다 실금을 그어놓고
끊어지지 않도록 붙잡고 있는 것
밤낮으로 누가 건너오고 건너가는가 지켜보는 것
외롭다든지 사랑한다든지 입밖에 꺼내지 않고
나는 여치한테 귀를 맡겨두고
여치는 나한테 귀를 맡겨두는 것
여치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오도카니 무릎을 모으고 앉아
여치의 젖은 무릎을 생각한다는 것
토란잎
안도현
빗방울,
토란잎의 귀고리
이것저것 자꾸
큰 것도 작은 것도 달아보지만
혼자 다 갖지는 않는
참으로
단순하게,
단순하게도 사는 토란잎
빗소리만큼만 살고
빗소리만큼만 사랑하는 게다
사랑하기 때문에 끝내
차지할 수 없는 게 있다는 거다
귀고리,
없으면 그냥 산다는
토란잎
*'주옥같다'는 말을 이럴 때 쓰나보다. 두 사람 사이의 마음의 울림을 어쩌면 이리도 섬세하게 그릴 수 있는지...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같이 울어주어야 한다는 것' / 괭이와 돌
'듣는다는 것은... 젖은 무릎을 생각한다는 것' / 여치와 나
'사랑하기 때문에 끝내 차지할 수 없는게 있다는 것' / 토란잎과 빗방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