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현재에 충실하기 -과거에 연연하거나 미래에 대한 불안때문에 현재 해야할 일을 소홀히 하게 되지 않기. 과거의 실패나 실수는 바로바로 털어버리고 '후회'하지는 말기. 다만 '반성'하기. 그리고 실수하는 나를 다독여 주기. 미래를 '걱정'하지는 말기. 다만 '준비'하기. 약간의 불안은 견딜 줄 알기-이렇게 할수 있는 사람은 거의 도인이 아닐까? 혹은 바보거나 돈키호테거나...

 만다라 치료라는걸 해봤는데, 노랑은 아버지를, 파랑은 어머니를 상징하고, 따라서 초록은 부모를 상징한다고... 듣고보니 그럴 듯 하다. 어릴때부터 유난히 초록이 좋았던 까닭이 거기에 있을 줄은 짐작도 못했는데... 요즈음은 보라도 좋다. 보라색은 무엇을 상징할까? 고결함이나 고귀함이라면 좋겠다.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지는데...

 현재 내가 해야할 일은 기도인데... 여기에 글로 써서 하는 기도도 기도니까... 참, 그러고보니 주님의 기도에서 '오늘 일용할 양식'은 육체에 해당하는 양식뿐만 아니라, 영혼의 양식도 해당한다고 듣고보니, 더욱 집중해서 그 부분을 암송하게 되었다. 오늘 내가 대하게 될 사람들에게 사랑과 평화와 위로와 격려와 깨우침을 적절히 줄 수 있는 영적인 힘이 필요하니까.(또 교만! 주고 받기 위해 라고 해야 할 것을...)

   주님의 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오니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이렇게 초록으로 하느님을 쓰니까 부성과 모성을 모두 지니신 하느님으로 느껴져 더욱 좋다. 에리히 프롬이 부성적 사랑은 조건부적 사랑(니가 이러이러하게 행동하면 더욱 사랑해 주겠다는...)이고, 모성적 사랑은 무조건적 사랑(니가 어떤 사람이라도, 어떻게 행동해도 사랑해주겠다는... )이라고 분류했었다.)

 

    성모송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영광송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마리아의 노래(마니피캇)               

                                                                         루가1;46-56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레입니다.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해 주신 덕분입니다.

주님은 거룩하신 분

주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는 대대로 자비를 베푸십니다.

주님은 전능하신 팔을 펼치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권세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높이셨으며

배고픈 사람은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요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려 보내셨습니다.

주님은 약속하신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 자비를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토록 베푸실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도 자주 가난하고 박복한 사람들을 판단하는 이가 있다. 나도 그랬고, 가끔씩 잊고 또 그러곤 한다. 짧은 지식이지만, 불교식으로 설명한다면 '업' 때문이라고 하겠지만,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하느님 뜻이라는 것이고 세속의 잣대로 판단하지 말것을 성서 여기저기서 당부하신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렇게도 가난하게 태어나셨고, 고통스런 죽음을 맞으셨나보다. 예수님과 성모님이 온갖 고통을 겪어내심으로 해서 우리에게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보여주시고, 다른 이들의 고통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도록 하기 위해서.

 따지고보면 예수님 시대에 살면서 예수님과 성모님의 삶을 바라본다면, 그분들은 정말로 가난하셨고, 남편인 요셉께서 일찍 돌아가셨다고 전해지는 걸로 봐서 성모님은 남편을 일찍 여의고 아들까지 젊은 나이에 십자가형으로 죽음당한 '박복한' 여인이었던 것 아닌가. 그러나, 그분들의 삶은 하느님께서 예비하신 것. 성모님이 그 어머니 성 안나께 잉태되실 때에 이미 하느님 은총으로 원죄없이 잉태되시어 죄에 물들지 않으심으로 해서, 원숙한 인격을 갖추셨겠고, 아기 예수님을 더없이 완전한 모성으로 양육하셨으리라. 예수님은 틀림없이 이세상 어떤 도인보다도 더 원만하고 따뜻하고 품위있는 인격을 갖추셨을 것이고, 잉태되신 순간부터 태어나 자라는 동안 요셉님과 성모님이 더욱 고귀한 인품을 갖도록 그 신성의 영향력을 행사하셨을 것이다. 

 성가정의 모습이 머리에 그려진다. 가난하지만 따뜻하고 사랑 넘치는 가족. 가끔 엉뚱하게 이런 생각도 해본다. 요셉님이 일찍 돌아가신 것은 그 분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한 하느님의 배려가 이닐까 하는... 아름답고 지혜롭고 사랑스러운 아내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동정을 지켜줘야 하는 괴로움이 얼마나 크셨을까 하는... 성모님은 원죄없이 잉태되셨고, 여자이고, 아들도 있으니까, 그렇지만 요셉님은...

 난 요셉님이 좋다. 예수님만큼은 아니지만...

 요셉님은 의롭고 겸손하고 성실하고 다정하고 조용한 분이셨을 것 같다. 우리 성당은 성요셉 성당이라서 요셉성인의 상이 모셔져 있어서 요셉님께 인사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우리 친정 남자들, 시댁 남자들 마음이 요셉님처럼 의롭고 겸손하고 성실하고 따뜻하게 되도록 기도해 주십사고 청한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첫번째 기적이 결혼식에서 포도주를 만드신 것이라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신앙생활이 잔치처럼 즐겁고 포도주처럼 달콤한 것이라는 걸 알려주시기 위해서라고도 하던데... 마치 유태인들이 처음으로 학교에 입학하는 자녀들에게 꿀을 묻힌 책을 주어 핥게 한다는 이야기랑 비슷해 보인다. 배움이 이렇게 달콤한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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