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암; 정채봉 글, 이현미 그림

왕릉과 풀씨 중

-우리는 요즈음 큰 것에 자주 놀라다 보니, 작은 것들, 외로이 움직이는 것들에 대해서 많이들 둔해졌지요. 한낮 햇살이 조찰하게 비쳐 드는 문살에 창호지 위를 사각사각 기어가는 파리의 발소리를 들은 이는 얼마나 되는지요?

*파리의 발소리... 한가할 때 읽었을 때는 잔잔한 감동이 전해지더니, 여덟살 조카딸아이가 여름방학 내내 우리집에 와있는 요즈음 읽으니 '한가하신 말씀'으로 여겨지는 건... 제 엄마가 연수받느라 우리집에 맡겨진 이 아이는 우리집 아이들보다 목소리도 크고 움직임도 크고 나한테 몸을 던져 매달리는 횟수도 더 많은 아이. 요즈음 나에게 도닦을 거리들을 매일같이 안겨주는 아이다. 지혜서에 지혜의 정반대가 시기심이라고 나와있던데... 한가한 사람들이 부러운 건 어리석음 때문이겠지... 그래서 수시로 마음속으로 성모님을 부르고 있다.

 

오세암 중

-여인은 길손이를 가만히 품에 안으며 말하였다.

"이 어린아이는 곧 하늘의 모습이다. 티끌 하나만큼도 더 얹히지 않았고 덜하지도 않았다. 오직 변하지 않는 그대로 나를 불렀으며 나뉘지 않은 마음으로 나를 찾았다. 나를 위로하기 위하여 개미 한마리가 기어가는 것까지도 얘기해 주었고,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꽃이 피면 꽃아이가 되어 꽃과 대화를 나누고, 바람이 불면 바람아이가 되어 바람과 숨을 나누었다. 과연 이 어린아이보다 진실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이 아이는 이제 부처님이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