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름 그륀 글, 성서와 함께 출판사

왜 자기 자신을 엄격하게 대하는가?

 자기 자신을 엄격하게 대하게 되는 원인은 대부분 그의 인생사 안에 있다. 어렸을 때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상처를 응시하고 손을 대서 그 상처와 화해하지 않으면 그들은 항상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게 되는 괴로움을 겪는다. 상처받았을 때에 느꼈던 아픔이 너무 커서 그 아이는 살아 남기 위해 아픔을 내리 눌러야만 했다. 그런데 아픔을 내리 누르게 되면 사람들은 살아 남기 위하여 모든 감각을 점차적으로 죽일 수밖에 없다.

자기 안에 내재된 아이가 상처를 받은 사람은 안팎으로 반응할 때 폭력을 쓴다.

자기 자신을 엄격하게 대하는 또다른 원인은 편파적인 교육에서 찾을 수 있다. 편파적인 교육에서는 냉혹함과 전투같은 남성적인 면을 미덕으로 강조하고 느낌을 오히려 무시한다. "사람이 어렸을 때부터 그 당시의 사회가 요구하는 정도로 난폭하거나 난폭해지라고 교육을 받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아이를 때리는 가혹한 교육만이 아니라 부모들이 쉬기 위하여 항상 제멋대로 하게 놔두어 아이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느끼는, 분명하지 않은 교육도 아이들에게 공격성을 심어준다.

사랑을 지나치게 조금 체험한 아이의 대답은 흔히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이는 거부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혼자 있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거절과 과실에 대한 두려움, 삶에 대한 두려움이다. 아이는 지나치게 엄격하게 함으로써 두려움과 자기자신에 대한 불신을 쫓아내고자 시도한다. 왜냐하면 자기 안에 의지할 것이 없는 아이는 분명하고 엄한 요구들 안에서 매달릴 수 있는 확실한 의지처를 찾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에게 냉혹한 것은  충분히 보호받지 못함으로써 생긴,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두려움은 경직된 규칙들과 의식들을 통해서도, 또 냉혹함과 엄격함을 통해서도 극복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냉혹하게 대하는 또다른 원인은 잘못된 이상주의이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가 이런저런 이상을 실현하기를, 예를 들어 우리가 항상 자신을 극복하고 늘 친절하며 , 언제나 다른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며, 항상 양보하고 결코 이기주의자가 아니길 원하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고 우리의 자존심을 만족시키는 우리의 이상이다. 하느님의 뜻은 살아있는 사람이다. 하느님의 뜻은 하느님께서 친히 만들어 놓으신 우리 모습을 우리가 접함으로써 우리에게 전해진다. "각 사람은 유일한 신성의 표현이다."

융은 "자기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은 최고의 기술이고 도덕적인 문제의 총괄개념이며 총체적인 세계관의 핵심이다. 내가 거지를 대접하는 것, 내게 불쾌감을 주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 내가 원수를, 더욱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랑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높은 미덕이다. 내가 내 형제들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에게 행한 것이 바로 내가 그리스도께 행한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지금 모든 사람들 중에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이, 모든 거지들 중에 가장 가난한 사람이, 불쾌감을 주는 모든 사람들 중에 가장 파렴치한 자가, 그러니까 원수 자체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곧 내 자신이 자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밖에 없다면 그 다음은 어찌 되겠는가?그러고나면 그리스도교의 진리 전체가 방향을 바꾸고, 사랑과 인내가 없어지며,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형제에게 '바보'라고 한다. 우리는 단죄하고 자기 자신에게 분노한다. 우리는 그것을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숨긴다. 즉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가장 보잘것 없는 이를 만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한테 업신여길만한 그러한 모습으로 가까이 오는 이는 하느님 자신임에 틀림이 없다는 것을 부인한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튼 닭이 울기 전에 천 번이나 하느님을 부인했던 것이다." "자신의 가련한,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그러니까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시인해야 한다고 말한다.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극한상황에 처한 자신을, 그림자를 지니고 있는 자신을 알게 된 사람은 자기가 스스로에 대해 자비로워야만이, 즉 자기의 생긴 모습을 자신이 긍정하고 받아들여야만이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안다.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도움을 찾는 사람을 단죄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다.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자비로워야만이, 즉 우리가 자신의 어두움과 화해를 해야만이 다른 사람에게 자비로울 수 있다. 자기 영혼의 나락을 들여다 본 사람만이 존경심을 갖고 선입견 없이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각자가 하느님께서 오직 그에 관해 만드신 유일한 모습인 자기의 자아를 발견하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길의 목적이다. 각 사람마다 일회적인 방법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반영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자신의 영혼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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