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글쟁이들 - 대한민국 대표 작가 18인의 ‘나만의 집필 세계’
구본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한겨레> 문화부 책 담당 기자가 1년간 취재한 글쟁이 18인의 특별한 서재 이야기이다. 그들만의 글쓰기 노하우와 자료 정리법, 정보 습득 기술을 총체적으로 공개한다. 특히 글로만 만나오던 글쟁이들의 편안한 모습과 사적인 공간을 사진기자의 카메라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우리 시대 최고의 인문교양 글쟁이_ 국문학 저술가 정민
“이거, 병원에서 의사들이 환자 차트 꽂아두는 거치대에요. 우연히 의료용품점 앞을 지나가다 보고 ‘이거다’ 싶어 거금을 주고 바로 산 겁니다.” 수백 개 차트 등에는 하나하나 정 교수가 직접 쓴 제목들이 적혀 있었다. 정 교수는 차트꽂이에서 손 가는 대로 하나를 뽑아 보여주었다. 이미 책을 낸 아이템이었는데 초기 기획서와 메모 등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몇 십 배는 될 만한 아이디어들이 거치대에 꽂혀 생각과 내용이 익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이 물건을 ‘씨앗 창고’라고 부른다. 물론 ‘생각의 씨앗’이다.
출판사들이 왜 정 교수를 특급 필자로 평가하는지, 그에게 책을 내자고 몰려가는지 알 수 있었다. 책으로 쓸 것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사는 필자가 대한민국에 몇이나 되겠는가. 그가 외국 연수를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출판사들이 달려갔다는 이야기가 조금씩 실감나기 시작했다. (p.9)

미술과 대중을 이어준 도전적인 개척자_ 미술 저술가 이주헌
1995년 봄, 그는 무작정 화랑 겸 출판사인 학고재의 우찬규 사장을 찾아갔다. 그는 우 사장에게 유럽 주요 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답사해 기행문처럼 들려주는 대중적 미술책을 펴내자고 제안 했다. 그리고 그 취재비용으로 1천만 원을 먼저 달라고 요청했다. 책의 인세를 미리 받는 선인세를 조건으로 내건 것이다. 우 사장은 놀랍게도 그 자리에서 흔쾌히 이씨의 조건대로 책을 펴내기로 약속했다. 그렇게 출판사에서 1100만 원을 먼저 지원받은 이씨는 저금한 돈 400여만 원에서 달랑 100만 원만 남기고 모두 인출해 여행비에 보탰다. 그해 8월 말, 이씨는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유럽으로 출발했다. 이씨 나이 33세, 아이들은 겨우 세 돌과 한 돌이 지났을 때였다. (p.28)

삶과 글이 일치하는 글쟁이_ NGO 저술가 한비야
한씨의 일기장은 특별하지 않은 특별한 일기장이다. 취재수첩 같이 생긴 작은 스프링노트가 일기장이다. 여기에 ‘그날 하루 느끼고 떠올린 모든 것들’을 적는다. 그가 건져 올린 생각이며 인상적인 장면은 일차적으로 이 메모장에 즉석에서 담기고, 그 뒤 다시 꺼내어져 글로 다듬어진다. “저는 사실 현장을 전하는 리포터에 가까워요. 현장의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이 감동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잖아요. 칼럼을 모아서 책을 내는 것은 절대 안 해요.”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수시로 메모를 해댔다. 표현이 좋다 싶으면 바로 받아 적고, 또 떠오른 아이디어가 있다며 바로 적어넣곤 했다. “쓰신 책을 읽어보면 ‘문체는 사실을 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직접 체험한 것을 잘 전달해주는 생생함이 아무리 공들여 쓴 소설 묘사보다도 감동적이게 되는 거잖아요.” “문체는 사실을 뛰어넘지 못한다고요? 그거 구기자가 한 말이에요?” “네, 그냥 제 지론이에요.” “좋은 말인데요. 나도 적어둬야지.” 누가 취재를 하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실제 한씨 말고도 다른 글쟁이들 상당수가 메모광들이다. 아무리 뛰어난 머리도 잉크를 따라가지 못한다. 글쟁이에게 메모보다 좋은 무기는 없다. (p.62)

치열한 지식 전사, 진정한 프로 저술가_ 동양철학 저술가 김용옥
1980년대 당시 교수에 대한 모든 고정관념을 깨자고 작정한 듯 등장했던 도올도 환갑을 앞두면서 바뀌어가는 듯 하다. 요즘에는 특유의 ‘잘난 척’과 ‘오버’ 그리고 ‘공격성’이 그래도 많이 덜해졌다는 평을 듣는다. “내가 예전 내 책들을 봐도 과했다는 생각이 들어. 그걸 수용해준 사회에 감사해요. 사실 그때 내가 그렇게 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나를 까대고 뭉개려는 인간들에 대한 생명력의 표출이었어요. ‘너희들이 그렇게 까대도 도올은 사라질 수 없다’는 생명력을 보여주는 과시였던 거지. 이제는 좀 정갈한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p.73)

“나는 고객 성공을 위한 가치창조자”_ 자기계발 저술가 공병호
최근 들어 공씨의 생산 속도는 더 빨라졌고 시장에서 브랜드의 힘은 더 커졌다. 이런 상승세는 연간 300회 가까이 펼치는 강연에서 얻는 아이디어 덕분이다. 강연에서 아이디어와 아이템을 얻고 이를 다시 강연 아이템으로 바꿔 가다듬어 책으로 낸다. 이런 과정에서 시장 예측력이 강해지고 다시 책이 인기를 얻어 강연 요청도 늘어나면서 공씨의 수입도 초기보다 몇 배나 늘어났다.
“강연이라는 건 대중들 앞에서 두 시간 동안 쇼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청중들에게 받은 자극을 받은 것을 가지고 책을 써요.” 이 같은 ‘선 강연-후 출간’ 방식은 베스트셀러가 나오면 강연이 늘어나는 상호작용을 한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책으로 펴내기 전에 또 다른 강연에서 시험해보고 청중들의 반응을 살피며 예측한다. 책 아이템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시장예측력은 이런 강연으로 확보하는 것이다. (p.114)

가장 뛰어난, 그러나 가장 불행한 글쟁이_ 만화작가 김세영
김씨의 방에는 책상이 있고 그 옆에 이불 없이 요 하나가 방 한가운데에 깔려 있다. 이 요가 그의 진짜 ‘작업 공간’이자 ‘구상 공간’이다. 그는 평소 이 요 위에 엎드린 자세로 구상을 하고, 종이에 콘티를 짠다. “수평적인 자세일 때 가장 창조력이 샘솟는 것 같다”고 김씨는 웃으며 설명했다. 말풍선 모양도 여러 가지고, 칸 모양도 변화가 많아 컴퓨터 작업보다는 손작업으로 콘티를 짜는데, 엎드린 자세가 익숙해져 가장 편하다는 것이다.
작업 특성상 만화스토리는 이야기와 영상을 동시에 생각해야만 한다. 그런 복잡한 작업을 김씨는 처음부터 치밀하게 구성해서 진행하지는 않는다. 완급조절도 마찬가지.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쓸 뿐이라고 한다. “장면 연출 때문에 머리 짜내고 고심한 적은 없어요. 상상력이라는 것이 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어려서부터 공상을 많이 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작품 구상은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그냥 맡긴다. 치밀한 반전, 아귀가 맞는 구성이 돋보이는 『타짜』 같은 작품들도 모두 전혀 구상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p.158)




구본준 - <한겨레> 사회부 기동취재팀장을 거쳐 2008년 현재 문화부 대중문화팀장으로 일한다. 블로그주소는 blog.hani.co.kr/bonbon 이다.



2000년대 한국 출판계의 주역으로 떠오른 우리 시대 글쟁이들은 출발점에 따라 학자 집단과 전문가 집단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학자 집단에는 교수 글쟁이와 전업 글쟁이가 있는데, 모두 자기가 연구한 성과나 전공 분야의 최신 정보를 주기적으로 책으로 펴내고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한 정민, 주경철, 정재승, 임석재 교수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에는 아주 드물지만 교수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버리고 글쓰기로 대중과 직접 만나는 이들도 있다. 1980년대 일찌감치 '프로 지식인'을 선언하고 자기 브랜드를 구축해온 도올 김용옥 씨가 여기 속한다.
그리고 이들 이상으로 확실한 저술가라고 볼 수 있는 이들이 교수가 아닌 학자 저술가들이다. 자리가 제한적이고 대중적 글쓰기에 대한 억압 풍토가 여전히 남아 있는 교수 사회에 속하지 않은, 또는 교수가 되지 못해 프로 저술가가 된 이들이다. 이덕일 주강현, 노성두, 허균, 공병호 씨 등이다. 박사학위 소지자거나 유학파들로, 학문적 지식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글을 통해 자기 분야 대중화에 앞장선다. [......]
나는 책 담당 기자로 일하면서 각 분야별로 글쟁이들이 등장하고, 주목받으며 저술가로 자리 잡는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봐왔다. 이들의 책을 즐겨 읽으면서 팬으로서 다음 책을 기다리기도 했다. 그래서 잠시 책 담당 기자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면서 이들을 조명하는 기사를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마침내 2006년부터 2007년까지 분야별 최고 저술가들을 만나 '한국의 글쟁이'라는 시리즈를 <한겨레> 책 섹션에 1년 가까이 연재하게 되었다. [......]
가장 뜨거운 반응을 보인 사람들은 흥미롭게도 내가 소개한 저술가 자신들이었다. 교수가 아닌 저술가들의 경우, 독자들에게는 높은 평가와 인기를 얻고 있는데 정작 언론에서는 학자들보다 못한 2진급으로 평가받는 아픔을 겪고 있었다. 교수 저술가들도 아직 대중과 소통하는 것을 경시하는 학계의 풍토 속에서 힘들게 연구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었다. 그런 어려움에 주목해준 첫 번째 평가자였다는 점에 그들은 고마워했다. 나 역시 그들과 만나 새로운 지식, 새로운 주제, 미래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기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행복을 만끽했다. 그런 행복감 덕분에 신문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더해 다시 이 책을 썼다. ('인터뷰 후기' 중에서)



    




우리 시대 최고의 인문교양 글쟁이_ 국문학 저술가 정민
미술과 대중을 이어준 도전적인 개척자_ 미술 저술가 이주헌
대중이 원하는 역사는 따로 있었다_ 역사 저술가 이덕일
삶과 글이 일치하는 글쟁이_ NGO 저술가 한비야
치열한 지식 전사, 진정한 프로 저술가_ 동양철학 저술가 김용옥
스스로 새로워지는 힘을 만드는 글쟁이_ 변화경영 저술가 구본형
교양만화의 아버지_ 만화가 이원복
“나는 고객 성공을 위한 가치창조자”_ 자기계발 저술가 공병호
좌절을 딛고 일어선 2모작 인생_ 과학칼럼니스트 이인식
너희가 아키비스트를 아느냐_ 민속문화 저술가 주강현
가장 뛰어난, 그러나 가장 불행한 글쟁이_ 만화작가 김세영
글쟁이 팔자는 타고나는가_ 건축 저술가 임석재
책은 집념과 오기의 산물_ 교양미술 저술가 노성두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아름다운 교향곡을 지휘하다_ 교양과학 저술가 정재승
“나는 문필가여”_ 동양학 저술가 조용헌
옛 사람 마음을 읽어 들려주다_ 전통문화 저술가 허균
가장 이상적인 지식인 글쟁이의 모델_ 서양사 저술가 주경철
“나는 내 직업을 만들었다”_ 출판칼럼니스트 표정훈

    


책은 살아 있다. 그리고 세상은 저술가를 필요로 한다.
우리 시대를 바꾸는 18인의 글쟁이와의 유쾌한 만남


정민 이주헌 이덕일 한비야 김용옥 구본형 이원복 공병호 이인식
주강현 김세영 임석재 노성두 정재승 조용헌 허균 주경철 표정훈


글 하나로 먹고사는 이들, 글쓰기가 삶의 중심인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글쟁이, 저술가다.
우리의 눈에는 학자들의 탁월한 논문과 저널리스트들의 훌륭한 특종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세상을 바꾸는 것은 그 시대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대중에게 이야기해주는 저술가들의 책일 수 있다.
세상은 저술가를 필요로 한다....
책은 살아 있다. 그리고 세상은 저술가를 필요로 한다.
우리 시대를 바꾸는 18인의 글쟁이와의 유쾌한 만남


정민 이주헌 이덕일 한비야 김용옥 구본형 이원복 공병호 이인식
주강현 김세영 임석재 노성두 정재승 조용헌 허균 주경철 표정훈


글 하나로 먹고사는 이들, 글쓰기가 삶의 중심인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글쟁이, 저술가다.
우리의 눈에는 학자들의 탁월한 논문과 저널리스트들의 훌륭한 특종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세상을 바꾸는 것은 그 시대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대중에게 이야기해주는 저술가들의 책일 수 있다.
세상은 저술가를 필요로 한다.

대한민국 대표 작가 18인의 서재를 만나다

<한겨레> 문화부 책 담당 기자가 1년간 취재한 글쟁이 18인의 아주 특별한 서재 이야기. 그들만의 글쓰기 노하우와 자료 정리법, 정보 습득 기술을 총체적으로 공개한다. 특히 글로만 만나오던 글쟁이들의 편안한 모습과 사적인 공간을 사진기자의 카메라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최고의 글쟁이들이 풀어놓은 비장의 무기들은 각 장별로 팁으로 묶어 독자들에게 보너스로 선사한다.

대중 독자와 예비 작가들을 위한 최고의 外傳!

한 명의 글쟁이를 너무나도 사랑하여 그의 작품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독자들에게 작가의 서재를 엿볼 수 있는 기회는 ‘초콜릿 공장에 들어가는 찰리의 황금티켓’만큼이나 값진 것이다. 독서광들 역시 책을 읽기 전에 작가에 대해 조사해보는 것이 기본이다. 한 달에 책 한 권도 안 보는 ‘독서꽝’이라 해도 관심 있는 분야를 알기 위해서는 그 분야 최고 글쟁이들의 책을 읽을 수밖에 없을 것인데, 제대로 된 마스터피스를 고르기 원한다면 <한국의 글쟁이들>을 앞서 권한다. 매일 일기를 쓰는 청소년부터 작가를 꿈꾸는 지망생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고민하는 이 땅의 수많은 글쟁이들에게도 이 책은 밝은 등불이 되어줄 수 있다.

활자로만 만나온 특급 작가들의 인간적인 고백록

긴 취재를 통해 대중이 쉽게 만날 수 없는 골방 속 작가들의 일상과 지나온 인생길, 글 쓰는 고통에 대한 진한 고백들을 담았다. 얼마나 많은 땀과 정성과 시간을 쏟아야 한 권의 책이 나오고 연재 칼럼이 쓰이는지, 어느 정도의 희생이 감내되어야 한 분야의 글쟁이로 우뚝 설 수 있는지 이 시대 최고 작가들의 육성을 통해 들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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