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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봉

매봉에 앉으면 나는 독수리다. 하루 동안에 사면팔방을 주유하고 정오가 되면 이곳에 날개를 쉰다. 북한강을 퍼 마시고 바람을 맞으며 땀을 날리고 산과 산을 연이어 바라본다. 사시사철이 좋으나 울긋불긋한 가을산이 좋아라.

흑암 어둠의 사신 죽음의 사자가 칼과 창을 쨍그렁 쨍그렁 흔들며 나를 잡으러 온다. 순수 백설은 바람에 나부끼며 나를 좁은 길로 인도하는구나. 절명의 순간에도 처절한 환희를 맞보며, 장승 같은 죽음의 사자들 다리 사이를 웅크리며 필사적으로 빠져 나온다. 골수를 얼게 하는 비참과 치욕을 참으며, 세포 세포의 살아 용약하는 힘을 모아 희미한 빛으로 향한다. 나는 아직 죽지 않는다 살고 싶다. 여신이여! 뜨거운 심장의 피를 나에게 부어주오.백설이 흩날리는 광야 방황하는 나에게 안식처가 되어주오. 매봉으로 가자. 거친 피부를 할퀴는 마귀 할망구가 낄낄대고 웃더라도, 북한강 갈증에 허덕이는 목구멍을 적시자. 드디어 아침이 오고 있다 밝은 해가 뜬다. 죽음의 사신이 도망간다. 산과 나무들이 고개를 숙이고 경배를 올리니 나는 왕이로소이다.

희망 청록의 맹아 나의 아들아. 황하의 진흙먼지 헤치며 누더기 걸치고 힘든 보리고개 넘어간다. 진달래꽃잎 씹으며 풀피리 분다. 사랑하는 여인이여! 울끈불끈 핏줄 넘치는 이 팔뚝을 보라. 나에게 안겨 넘치는 생명을 나누어 받으라. 시작이여 인생의 시작이여. 꿀벌은 부지런히 집을 짓고 화초를 오가며 꿀을 따는구나. 나무의 거친 숨소리가 매봉에 가득하다. 독수리는 구름 위를 빙빙 돌며 얼음을 씹는다. 산이 쑥쑥 자라고 바람은 노래를 부르고, 저녁 어스름 푸른 강 어부가 그물을 친다.

질투 풍요 속의 빈곤. 고독한 나그네 방랑의 시작. 비는 내리고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길이 보이지 않는다. 뙤약볕 아래 노동자의 비애는 비참하다. 무참한 진화는 차라리 전쟁 사랑도 이제는 전쟁. 욕망이 춤추는 매봉에는 쉴 곳이 없고 폭풍우 몰아치는 마을 처마 밑에 몸을 숨긴다. 독수리는 낮게 선회하며 살찐 토끼를 노리고 사람들은 저자 거리로 모인다. 광기는 숲 속에 가득하고 새소리 요란하구나. 강 안개 몽실거리는 새벽에 어부가 무거운 그물을 거둔다.

산마다 홍엽 냉기는 푸른 생명을 난도질한다. 핏빛으로 물드는 산하 차라리 성스럽구나.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애욕과 야망 떨구고 빈 마음으로 돌아가리라. 탐스런 감 서너 개 손에 들고 매봉으로 돌아가리라. 어린 새끼들 짹짹거리고 겁먹은 암컷 기다리는 감옥으로 돌아가리라. 짧은 형기를 마치는 날 낙엽은 우수수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 서리를 따 먹으며 살리라. 강 위에는 눈부신 햇살 받으며 빈 배가 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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