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댓 이즈
제임스 설터 지음, 김영준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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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면에서 필립 로스를 떠올리기도 했는데, 어느 쪽에게 밑지는 말일지 모르겠다. 

물론 압축의 미 측면에선 완벽하게 반대에 서있다만. 


가미카제로 대표되는 일본의 전쟁에 대한 광기는 아무리 들어도 거 참. 

전쟁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무수히 많은 인물들을 등장시키며 펼쳐진다. 


어린 나이에 참전했던 주인공 보먼의 삶이 중심이다.   

전쟁을 직접 겪은 보먼, 그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

전쟁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이야기할 줄 알았건만, 꼭 그렇진 않다. 

단지 삶을 말한다. 그것도 아주 다양한 삶.


보먼은 물질적으로 부유하고 정신적으로 빈곤한 집안의 딸과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성격은 애초부터 맞지 않지만, 사랑에 빠졌다고 믿는 젊음들에게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의 엄마는 며느리를 "아들을 마법으로 호린 젊은 이교도 여신처럼" 생각하고, 장인 또한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지만 딱히 방해도 않는다.

보먼은 아내 몰래 유부녀와 간통을 저지르며 "도시를 소유한 기분"을 느끼기도 하고,  

곧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한 채 이혼당한다. 

그 후로도 여성을 만날 때야 성취감을 느끼는 보먼은,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톡톡이 복수를 하기도 하며, 그렇게 사랑하고 이별하며 살아간다. 


등장하는 인물들 하나 하나 특이하면서도, 평범하다. 이 말이 동시에 성립 가능하다는 아이러니. 

가령, 친구의 딸에게 욕정을 품는 스텀프 판사는, 한 때 사랑하는 여인에게 차여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 자이고. 


베트남전을 묘사한 문장은 흥미로웠다. 

"이제 이 전쟁은 방탕한 아들처럼 되어버렸다. 믿을 수도 고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쫓을 수도 없는 아들놈."


성 평등 요구에 대해 등장 인물들은 일갈한다. "어이없네."라고. 

시대를 그대로 드러낸다. 


보다 압축했다면 어땠을까 생각도 들지만, 한 인간의 삶을 집중해서 들여다보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 있었다.

나의 인생 역시 멀리서 본다면 어떠할까, 하는.


<올 댓 이즈 - 제임스 설터 지음, 김영준 옮김/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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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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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의 유지가 실종된다.

부촌의 고급 아파트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평안하게 사는 듯 보였던 유지의 가족. 

아이의 치약처럼 "진짜 딸기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딸기향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는 인공 향기"가 가득했던,

그들 가족의 외피가 벗겨진다.  


매사에 무관심하고, 아들의 전화번호가 무엇으로 저장되어 있는지도 모르는 유지의 아빠 상호.

남몰래 찾은 병원에서 충동조절장애와 울증을 진단받고, 모든 것을 뒤엎고 싶은 충동과 싸우며 위태롭게 살아간다. 

지겹게 싸우던 전처와 헤어지고 옥영을 만났으나, 집안을 메운 적막함에 때로 전처가 그리울 지경.


화교인 옥영은 중국 여자도, 한국 여자도 되지 못한 채 세상을 부유하듯 살아왔다. 

"서로의 영혼을 샅샅이 읽어낼 의무가 없는 관계"가 오히려 편안해 아이가 둘 있는 이혼남 상호와 결혼하고, 유지를 낳았다. 


상호와 전처 사이의 맏딸 은성. 

이별을 막기 위해 연인 앞에서 자해 쇼를 벌이기도 하지만, 진심으로 생을 끝낼 생각은 없다. 자신에게 안정을 줄 사람을 갈구할 뿐. 

자신이 부모의 과오로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늘 불운만이 찾아온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그런 그녀에게 유일한 행운은 동생 혜성의 존재다. 

"나를 위해, 나를 고독하지 않도록 할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아기! 그것이 동생 혜성이었다."


혜성에게, 누나의 존재는 반갑지 않다. 그는 차라리 완벽한 혼자이길 꿈꾼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전부 다 타인이라면, 그렇다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것조차, 그에겐 두려움이다. 


이것이 그들 겉껍질의 전부라면 다행이련만, 끝이 아니다. 

상호는 불법 장기 매매업자. 옥영에겐 이십 년 된 연인이 있다. 유지는 상호가 아닌, 숨겨진 연인과의 사이에서 만들어진 딸이다. 은성은 한때 유지를 유괴해 아빠에게 돈을 뜯어낼 모의를 한 적이 있고, 모범적으로 보이는 의대생 혜성은 상습적 방화범. 불을 지를 때야 스스로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실종된 유지의 삶은 어땠을까. 엄마가 화교라는 이유로, 세컨드라는 오명으로, 사람들의 악의를 접하며 세상을 배워간다.

자신을 감추는 것을 배우느라 스스로의 취향조차 생각할 겨를이 없다.  


위태로운 가족, 이들 중 가장 정상으로 볼 수 있는 관계는 혜성과 유지였다. 

다정하진 않지만 서로의 존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식구. 


"어느 날 갑자기 불행한 사고가 일어났을 때, 한마음 한뜻으로 협력하고 서로를 마냥 보듬어주기만 하는 가족은 없다. 가족 구성원들은 분열하고 싸우고, 상대에게 책임을 떠넘기느라 몹시 바쁘다."


유지의 실종 후, 상호는 자신의 사업에 관련된 유괴 사건이라고 단정 짓고 경찰에 실종신고도 하지 않은 채 아이를 찾으려 한다.

옥영과 혜성은 수상함을 느끼고, 서서히 그의 비밀이 밝혀지기 시작한다.


각각의 캐릭터는 흥미로웠다. 은성의 캐릭터는 (잘 모르지만) 정신 분석의 표본이라고 봐도 될 것 같았다. 

다른 남자를 만나야만 이전 남자와 정리할 수 있는, 헤어짐을 막기 위해선 자해라도 불사하는 여자. 

거칠게 보이지만 실상은 남에게 미움을 살까 두려워 사소한 거절도 하지 못하고, 남에게 보이는 것으로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는 사람.

자기 연민에 빠져 허우적대는 인간 군상. 

그 볼썽사나운 자기연민은 은성이 독보적이지만, 다시 들여다보면 그 어떤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모든 캐릭터들에, 작가는 한걸음 떨어져 있는 듯 보였다.


이들이 타인을 공감하게 되는가, 기대했다. 

옥영은 실종신고된 다른 아이들의 사진을 보며 절박함을 느낀다. 

"타인의 참담이 제 것처럼 아프게 심장을 찌를 수 있다는 사실이 진저리치도록 낯설었다."


그러나 상호는, 끝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지 못하는 듯하다. 쓴맛이 올라온다. 

"수입의 절반 이상은 아내에게 생활비로 주었으며, 전처의 아이들을 보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자신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였다. 그의 인생은 그렇게 굴러갔다. 그런데, 왜?"

전처의 아이들이라니. 제 아이들이 아닌가. 가족을 위해서였다니. 타인의 생명으로 내 생명을 부지하는 것이 그토록 당당한가. 남의 생명으로 내 생명을 대체하는 것이 그토록 당연하다면, 유지가 없어진 것이 어찌 억울한가. 세상의 섭리일 뿐인 것을.


"그의 고객층은, 죽음을 쉬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것이 스스로의 죽음이든 아니면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든."

그러니까, 그의 고객이나, 그나, 한통속들.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세상에 결코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며, 타인의 죽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뿐. 


선천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제 아이를 위해, 뒷거래로 8개월된 영아의 심장을 구한 아기 엄마는 감격에 겨워 감사 인사를 반복한다.

그녀와 그녀의 "초식동물처럼 순하게 생긴" 남편, 이들에게 상호는 선일까, 악일까. 자신의 아이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준 은인.

제 목숨보다 귀한 아이를 살리고 싶은 심정을 어찌 모르랴마는, 그들, 정녕 그 심장의 출처를 모를까. 

모른다면, 알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닐까. 

<너는 모른다>는 제목은, 우리는 타인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더이상 알려 하지 않는다, 일지도. 

어떤 의미에서는, 때때로 자발적 모름을 택하는 나 역시.. 한통속. 


표피에만 집착하는 자본주의의 저속함이라며 꼬집는 누군가의 말이, 행복에 대한 오해로 여겨져 실감났다.

"졸부가 집 한 채 사서는 신발장부터 변기까지 죄다 번쩍번쩍 황금으로 발라놓은 꼴이지. 칫, 그러면 뭘 해. 황금 변기가 푸세식인데."

타인에 대한 공감이나 연민일랑 없이, 세상을 오직 약육강식 동물의 세계로만 보는 자들, 딱 그꼴이다. 

상호, 의대에 들어간 아들이 자랑스럽지만, 아들의 행복이나 소망에는 호기심조차 느껴본 적 없다. 아들이 명품 넥타이를 스스로 살 정도가 된다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인간. 


천신만고 끝에 유지가 돌아온다. 

냉담하던 가족은 함께 하길 선택한다. 서로의 온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남편은 중국의 감옥에 갇혀 있고, 돌아온 아이는 건강하지 못하지만, 옥영은 이제 콧노래를 부를 수 있다. 자기만 알았던 은성은 기꺼이 아픈 유지를 돌본다. 


그러나 작가는 모든 것이 뒤바뀌어버리는 결말을 택하지는 않는다. 혜성은 생각한다. 

"문득 내가 이들을 영원토록 알 수 없으리라는 예감이 든다. 

 그곳을 향해 나는 가만히 한 발을 내딛는다."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지니.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오만일랑 떨지말되, 서로를 알려는 것을 포기하진 말지어다. 


<너는 모른다 - 정이현 장편소설/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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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의 90%는 걷기만 해도 낫는다 - 아프지 않고 100세까지 사는 하루 1시간 걷기의 힘
나가오 가즈히로 지음, 이선정 옮김 / 북라이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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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걷기 예찬이다.  

첫장부터 제목에 대해 "구체적 근거가 없으므로 과장이라 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해 살짝 당황스럽긴 했지만, 

내가 얻은 소득은 생각외로 실하다. 


저자는 동네 의사라고 본인을 소개한다. 

(의료 시스템이 우리와 다른지) 고혈압은 물론 우울증, 불면증, 치매, 암, 요통 등의 정형외과 환자까지 진료를 하고 있다고.

의사로서 그는 병의 대부분이 걷지 않아서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체중만 조절해도 모든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가는데, 그 체중을 조절하는 제일 좋은 방법이 걷기이며,

움직이지 않을수록 암에 걸리기 쉬운데, 이때 가장 좋은 운동 역시 걷기라는 것이다. 

왜 반드시 걷기여야 하는지 보다는, 왜 운동이 필요한지를 설명한다고 보는 게 타당한 듯하다. 


인간의 약 30%가 암으로 사망하는데 반해, 다른 동물들의 암 사망률은 매우 낮다고 한다. 

인간과 유전자가 거의 흡사한 침팬지도 2%이하의 암 사망률을 보이고, 개·고양이도 1%이하를 보이는데, 

특기할 점은, 집에서 기르는 개·고양이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암이 많고, 애견의 30%가 암으로 사망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고 한다.


"인간과 함께 생활하는 스트레스가 암 발생률을 높이는지도 모른다"고 하면서도, 이로써 암을 문명병이라고, 걷는 것으로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암은 유전자 손상이 원인인데, 유전자 손상 확률을 낮추고, 면역 세포를 활성화할 수 있는 것은 걷기라는 것이다. 

위와 장 관련 질환도 마찬가지로 해석된다. 자율신경 기능이 저하된 것이 원인이므로, 이를 개선하는 것은 걷기만한 것이 없다고.

우울증, 수면장애, 공황 발작, 감기 등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부작용이나 의존증을 야기할 수 있는 약물이 아닌, 다른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에 무게를 두고 보면 좋을 듯하다. 


병에 이름을 붙이고, 시장을 개척하는데 혈안이 된 의료계의 현실과 세계적 제약회사의 병폐를 지적하기도 한다.

의료계의 부조리를 깨닫고, 자가 치료를 중요시할 것을 강조한다. 물론, 여기서도 논의는 걷기로 귀결된다.


저자는 골절상을 입어도, 걸을 수만 있으면 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에게는 자연치유력이 있고, 노인 환자의 경우에는 특히, 푹 쉬다가 오히려 활동의 제약이 더욱 심해지는 경우도 있다고. 


걷기는 치매 환자나 그 간병인에게도 세로토닌과 옥시토신 호르몬을 증가시켜 좋다고 한다. 

세로토닌은 행복을 느끼게 하고, 기억력과 학습에도 영향을 미치며, 옥시토신은 사랑 호르몬이라고 불릴 만큼 안도, 행복, 신뢰감 등을 높인다고. 


요약은 끝났다.

책의 핵심은 물론 걸으라는 것이고, 내가 느낀 이 책의 장점은 걷고 싶은 마음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평생 운동이라고는 해보지 않은 나지만 걷고 싶어 온몸이 들썩들썩. 

걷기를 운동이라 할 수 있다면, 유일하게 좋아하는 운동이 걷기고, 몇 시간도 할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이 걷기다. 

문제는, 오롯이 걷기만을 위한 시간을 내 본 적은 없다는 것.

좋은 습관이라 생각했지만, 이걸론 부족하다. 앞으론 일부러 걷는 시간을 내봐야겠다. 


걷고 싶은 마음이 자극되었으니 책의 목적은 달성된 셈이고, 쉬어가는 독서를 할 수 있어 좋았다.


<병의 90%는 걷기만 해도 낫는다 - 나가오 가즈히로 지음, 이선정 옮김/ 북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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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 자서전 - 바람만이 아는 대답
밥 딜런 지음, 양은모 옮김 / 문학세계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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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에 의하면, 그는 "살아 있는 포크의 전설"로 불린다고 한다. 


"구전 민요였던 포크 음악을 창작자가 있는 예술 작품으로 격을 높인 우디 거스리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밥 딜런은 시적인 가사, 강렬한 보컬, 곡조와 박자를 무시하는 듯한 창법으로 포크 음악은 물론 일반 팝음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책 초반엔 그가 가명을 짓게 된 과정, 열악한 카페나 다방에서 노래하며 생계를 유지했던 일들, 

연줄 때문에 낭패감을 느끼면서도 그것들을 극복했던 일 등이 나온다. 

자신의 성공을 상상하고, 음악으로서 피카소 같은 혁명가가 되기를 원하는 모습은 -그것이 현실로 이뤄졌는지 여부와는 무관하게- 솔직하게 다가왔고, 그래서 신선했다.


1941년생 밥 딜런에게 펼쳐진 세상은 음험했다. 

태어났을 때는 2차 세계 대전이 있었고, 미국이 참전을 앞두고 있었다. 50년대에도 늘 전쟁을 염두에 둬야 했다. 

그 시대를 살아온 밥 딜런은 그가 사랑한 포크송으로, 세상을 노래하게 된다. 


"포크송은 내가 우주를 탐구하는 방식이었고, 그림이었다. 그 그림은 말로 할 수 있는 어떤 것보다 가치 있고 생생한 묘사였다. 나는 사물의 내면적인 실체를 쉽게 가사와 연결할 수 있었다."

"포크송은 신앙처럼 내 마음에 깊이 새겨졌으므로 추락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포크송은 현재의 문화를 초월하는 음악이었다."


그러나 유명세를 떨치게 되자, 과도한 관심과 원치 않던 수식어를 갖게 되어 고통스러웠음을 고백한다.

그는 자신을 시대의 양심, 대변자, "기적을 부르는 설교자" 취급하는 언론에 분개한다.  


평범하고 조용한 삶을 원했으나 그의 사생활은 없어지고, 그의 터전은 "악몽과 혼돈의 장소로 변했다."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 속에서, 그는 가족을 생활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예술은 삶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므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무튼 나는 더 이상 예술에 대한 굶주림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대중과 언론의 과도한 관심은 그의 생활과 예술혼 마저 뒤흔든다. 


"그날의 사건들, 모든 문화적 우상들이 내 영혼을 가두고 구역질나게 만들고 있었다."


민권운동가와 정치지도자들이 총에 맞고, 정부의 일제단속이 이뤄지고, 

학생들의 시위와 이에 맞선 경찰의 진압 등 미국이 분노로 들끓던 중, 밥 딜런은 다른 길을 택한다. 

개인적인 길을 택했다는 사람들의 비난에 대해, 그는 솔직당당하게 대답하는 듯하다. 


"나는 그것들을 모두 초월하기로 결심했다. 이제 가족이 있는 사람이었고 그런 집단에 끼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자유와 독립의 나라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므로 항상 평등과 자유의 가치와 이상을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그런 이상을 가지고 우리 아이들을 양육하기로 결심했다."


쉽게 말할 수 없다. 

한 사람(혹은 집단)에게 본인이 결코 원치 않았던 영향력이 주어졌다면, 그는 본인의 삶을 희생해야 할 의무가 있는가. 

어떤 결론을 내리든, 재고의 여지가 없이 단순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자서전 전체에 걸쳐 등장하는 그의 책 사랑이다. 

"책은 실제로 가슴 설레는 꿈을 줄 수 있다."


우울한 습관을 버리고, 스스로를 안정시키기 위해 문학에 몰입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2016년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밥 딜런이지만, 처음부터 작사를 꿈꾼 것은 아니라고 한다. 


"작사는 내 각본에 없었다. 나의 미래에 없었다. 미래는 무엇일까? 미래는 단단한 벽이고, 약속된 장래도 없고, 위협적이지도 않다는 것, 모두 허튼소리였다.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인생은 하찮은 것이 아니라는 보장도 없었다."


인생은.. 역시 신비롭다. 

그가 자신의 노래를 표현하는 말은, 더도 덜도 말고, 딱 문학을 말하는 듯하다. 


"가끔 우리는 인생의 여러 가지 일들이 마음에서 악취가 나고, 내장이 병들고, 구역질이 나게 만드는 것을 보면서, 그 특별한 것들을 욕하지 않고 그 감정을 포착하려고 애쓰는 것을 본다. 그것을 위한 특별한 시들이 여기 있다." 

"어휘는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어휘의 결합이 모두 소진될 수 있었다. 어휘들은 어떤 초자연적인 단계에서 서정적으로 작용하면서 그들 나름의 의미를 지녔다. 그 뜻을 이해할 필요가 없었다."


이런 그가 문학인이 아닐리가. 


책에 나오는 노래들과 가수들을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더욱 흥미로웠을 것이다.

그렇지 못해 아쉽기도 하나, 그의 열렬한 문학 사랑을 엿본 것만으로도 매우 반갑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아주 많이. 


<바람만이 아는 대답 - 밥 딜런 자서전, 양은모 옮김/ 문학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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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5년, 빚 없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 - 돈 걱정 없는 노후를 위해 지금 당장 알아야 할 부채 관리 전략
백정선.김의수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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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보다 많이 담겼다.

미래 전망이 맞을지 안맞을지는, 누구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는 단지, 보다 합리적이고, 이왕이면 정의로운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할 뿐.

책의 내용은 방대하지만, 내가 받아들인 핵심만을 정리한다.


저자는 현재의 한국이 빚 권하는 사회라고 진단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빚을 갚을 능력이 되는지 제대로 심사하지 않고 돈을 빌려주면 '채권자의 도덕적 해이'로 간주해서 책임을 묻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일방적으로 빚진 사람의 책임만을 따진다.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빚잔치판의 민낯이다."


정부는 국가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소비 심리를 진작시켜야 했고, 국민이 소비를 늘릴 여력이 없으니 빚을 내기 쉽게 만들었다는 것이 저자들의 진단이다. 그러나 유혹에 이끌린 사람이 빚에 허덕일 때, 빚 권하던 사람들은 태도를 바꾼다고. 당신이 부채에 신음하는 것은 "개인의 책임", "도덕적 해이"라고. 


저자의 두번째 진단은 이미 부채 폭탄 돌리기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최근의 가계 부채는 저리, 장기의 주택담보대출이 주를 이루니, 막대한 가계부채에도 불구하고 공포심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생계를 대출로 버티던 저소득층의 연체율이 급증하며 가계부채에 이상 신호가 생기면, 금융기관도 부실을 막기 위해 신규 대출을 엄격히 하거나 금리를 더 올리고, 혹은 대출금을 회수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고.

원금은커녕 이자를 갚는 것만으로도 허덕이던 가계는 기존 대출의 만기 연장이 되지 않으면 초토화될 수 있고,

결국 가계는 물론 금융권도, 국가 경제 전체의 기반이 뒤흔들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세상에 '돈 버는 소비'는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포인트 재테크, 무이자 할부, 청구 할인 등은 불필요한 소비를 조장한다. 

기업이 요구하는 조건을 채우기 위해 불필요한 소비를 하며,꼭 필요한 것을 산다는 자기 최면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돈이 없으면 빚을 내서라도 갖고 싶은 것을 가져야 하는 문화는, 서민들을 더욱 빚의 코너로 몰아갈 뿐이니, 생각의 전환을 강조한다.


한국 사람의 체면치레 문화 역시 부채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신혼부부가 무리한 결혼식, 분수에 넘치는 집과 혼수까지, 부모의 체면 때문에 빚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고.

이것은 자녀뿐만 아니라 부모마저 불안한 노후를 맞이하게 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빚을 경계, 또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가 건네는 조언이다. 


"경제 성장도 좋고 내수 경제 활성화도 좋지만 국민이 무리하게 빚까지 내 가면서 희생해야 할 이유는 없다. 정부와 기업의 의도에 무작정 휩쓸려 가서는 곤란하다."


저자는 보다 불편한 소비 방식을 추구할 것을 권한다. 신용카드보다는 체크카드를, 체크카드보다는 현금을 이용해야 한다. 

현금이 주는 압박감을 느껴야 지출에 불편함을 느끼고 통제력이 커진다고 한다.


"돈을 쓰는 편리함과 멀어질수록 불필요한 소비, 무리한 소비와도 멀어진다."


그 외, 책은 정확한 빚 규모를 확인하는 방법과 어떻게 탈출할 수 있는지, 이자 부담을 줄이는 방법까지도 구체적으로 조언하고 있다. 

지출의 90% 이상을 구체적으로 계획하는 것을 목표로, 매달 초 예산을 세워 월말에 결산을 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한다.

또한, 보험같은 금융상품들을 면밀히 살펴 불필요한 지출 때문에 오히려 빚을 지지 않도록 재무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OECD국가 중 노인빈곤율 1위라는 불명예의 한국에서, 우리는 불안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노후 준비로 저자는 부부간의 '대화'를 꼽는다. 

무엇보다 삶의 원천이 되는 가족들과 누리는 기쁨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빚은 두려운 것이 맞지만 두려움에 잠식될 필요는 없다고 강조한다. 


"더 자극적이고, 뭔가 가져야만 다른 사람과 차별되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 속에서 가족들과 함께 작은 것들을 행해보는 것이 우리의 미래에 희망을 가져다줄 것이라 생각한다."


돈과 무관한 행복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것이, 행복과 더 가까워지는 법이라고 나 역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앞으로 5년, 빚 없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돈 걱정 없는 노후를 위해 지금 당장 알아야 할 부채 관리 전략) - 백정선, 김의수 지음/ 비즈니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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