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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열 살의 유지가 실종된다.
부촌의 고급 아파트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평안하게 사는 듯 보였던 유지의 가족.
아이의 치약처럼 "진짜 딸기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딸기향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는 인공 향기"가 가득했던,
그들 가족의 외피가 벗겨진다.
매사에 무관심하고, 아들의 전화번호가 무엇으로 저장되어 있는지도 모르는 유지의 아빠 상호.
남몰래 찾은 병원에서 충동조절장애와 울증을 진단받고, 모든 것을 뒤엎고 싶은 충동과 싸우며 위태롭게 살아간다.
지겹게 싸우던 전처와 헤어지고 옥영을 만났으나, 집안을 메운 적막함에 때로 전처가 그리울 지경.
화교인 옥영은 중국 여자도, 한국 여자도 되지 못한 채 세상을 부유하듯 살아왔다.
"서로의 영혼을 샅샅이 읽어낼 의무가 없는 관계"가 오히려 편안해 아이가 둘 있는 이혼남 상호와 결혼하고, 유지를 낳았다.
상호와 전처 사이의 맏딸 은성.
이별을 막기 위해 연인 앞에서 자해 쇼를 벌이기도 하지만, 진심으로 생을 끝낼 생각은 없다. 자신에게 안정을 줄 사람을 갈구할 뿐.
자신이 부모의 과오로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늘 불운만이 찾아온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그런 그녀에게 유일한 행운은 동생 혜성의 존재다.
"나를 위해, 나를 고독하지 않도록 할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아기! 그것이 동생 혜성이었다."
혜성에게, 누나의 존재는 반갑지 않다. 그는 차라리 완벽한 혼자이길 꿈꾼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전부 다 타인이라면, 그렇다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것조차, 그에겐 두려움이다.
이것이 그들 겉껍질의 전부라면 다행이련만, 끝이 아니다.
상호는 불법 장기 매매업자. 옥영에겐 이십 년 된 연인이 있다. 유지는 상호가 아닌, 숨겨진 연인과의 사이에서 만들어진 딸이다. 은성은 한때 유지를 유괴해 아빠에게 돈을 뜯어낼 모의를 한 적이 있고, 모범적으로 보이는 의대생 혜성은 상습적 방화범. 불을 지를 때야 스스로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실종된 유지의 삶은 어땠을까. 엄마가 화교라는 이유로, 세컨드라는 오명으로, 사람들의 악의를 접하며 세상을 배워간다.
자신을 감추는 것을 배우느라 스스로의 취향조차 생각할 겨를이 없다.
위태로운 가족, 이들 중 가장 정상으로 볼 수 있는 관계는 혜성과 유지였다.
다정하진 않지만 서로의 존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식구.
"어느 날 갑자기 불행한 사고가 일어났을 때, 한마음 한뜻으로 협력하고 서로를 마냥 보듬어주기만 하는 가족은 없다. 가족 구성원들은 분열하고 싸우고, 상대에게 책임을 떠넘기느라 몹시 바쁘다."
유지의 실종 후, 상호는 자신의 사업에 관련된 유괴 사건이라고 단정 짓고 경찰에 실종신고도 하지 않은 채 아이를 찾으려 한다.
옥영과 혜성은 수상함을 느끼고, 서서히 그의 비밀이 밝혀지기 시작한다.
각각의 캐릭터는 흥미로웠다. 은성의 캐릭터는 (잘 모르지만) 정신 분석의 표본이라고 봐도 될 것 같았다.
다른 남자를 만나야만 이전 남자와 정리할 수 있는, 헤어짐을 막기 위해선 자해라도 불사하는 여자.
거칠게 보이지만 실상은 남에게 미움을 살까 두려워 사소한 거절도 하지 못하고, 남에게 보이는 것으로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는 사람.
자기 연민에 빠져 허우적대는 인간 군상.
그 볼썽사나운 자기연민은 은성이 독보적이지만, 다시 들여다보면 그 어떤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모든 캐릭터들에, 작가는 한걸음 떨어져 있는 듯 보였다.
이들이 타인을 공감하게 되는가, 기대했다.
옥영은 실종신고된 다른 아이들의 사진을 보며 절박함을 느낀다.
"타인의 참담이 제 것처럼 아프게 심장을 찌를 수 있다는 사실이 진저리치도록 낯설었다."
그러나 상호는, 끝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지 못하는 듯하다. 쓴맛이 올라온다.
"수입의 절반 이상은 아내에게 생활비로 주었으며, 전처의 아이들을 보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자신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였다. 그의 인생은 그렇게 굴러갔다. 그런데, 왜?"
전처의 아이들이라니. 제 아이들이 아닌가. 가족을 위해서였다니. 타인의 생명으로 내 생명을 부지하는 것이 그토록 당당한가. 남의 생명으로 내 생명을 대체하는 것이 그토록 당연하다면, 유지가 없어진 것이 어찌 억울한가. 세상의 섭리일 뿐인 것을.
"그의 고객층은, 죽음을 쉬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것이 스스로의 죽음이든 아니면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든."
그러니까, 그의 고객이나, 그나, 한통속들.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세상에 결코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며, 타인의 죽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뿐.
선천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제 아이를 위해, 뒷거래로 8개월된 영아의 심장을 구한 아기 엄마는 감격에 겨워 감사 인사를 반복한다.
그녀와 그녀의 "초식동물처럼 순하게 생긴" 남편, 이들에게 상호는 선일까, 악일까. 자신의 아이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준 은인.
제 목숨보다 귀한 아이를 살리고 싶은 심정을 어찌 모르랴마는, 그들, 정녕 그 심장의 출처를 모를까.
모른다면, 알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닐까.
<너는 모른다>는 제목은, 우리는 타인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더이상 알려 하지 않는다, 일지도.
어떤 의미에서는, 때때로 자발적 모름을 택하는 나 역시.. 한통속.
표피에만 집착하는 자본주의의 저속함이라며 꼬집는 누군가의 말이, 행복에 대한 오해로 여겨져 실감났다.
"졸부가 집 한 채 사서는 신발장부터 변기까지 죄다 번쩍번쩍 황금으로 발라놓은 꼴이지. 칫, 그러면 뭘 해. 황금 변기가 푸세식인데."
타인에 대한 공감이나 연민일랑 없이, 세상을 오직 약육강식 동물의 세계로만 보는 자들, 딱 그꼴이다.
상호, 의대에 들어간 아들이 자랑스럽지만, 아들의 행복이나 소망에는 호기심조차 느껴본 적 없다. 아들이 명품 넥타이를 스스로 살 정도가 된다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인간.
천신만고 끝에 유지가 돌아온다.
냉담하던 가족은 함께 하길 선택한다. 서로의 온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남편은 중국의 감옥에 갇혀 있고, 돌아온 아이는 건강하지 못하지만, 옥영은 이제 콧노래를 부를 수 있다. 자기만 알았던 은성은 기꺼이 아픈 유지를 돌본다.
그러나 작가는 모든 것이 뒤바뀌어버리는 결말을 택하지는 않는다. 혜성은 생각한다.
"문득 내가 이들을 영원토록 알 수 없으리라는 예감이 든다.
그곳을 향해 나는 가만히 한 발을 내딛는다."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지니.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오만일랑 떨지말되, 서로를 알려는 것을 포기하진 말지어다.
<너는 모른다 - 정이현 장편소설/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