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장미 비파 레몬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8년 10월
평점 :
장미 비파 레몬은 에쿠니 가오리의 냉정과 열정사이, 반짝 반짝 빛나는 에 이어 세번째 만남이다.
사랑이란 감정을 잊어가는 것만 같다고 친구에게 하소연했다가 추천받았다.
짤막짤막한 문장에 아담한 사이즈라서 금방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일본을 잘 모른다.
그녀의 세상에서 자꾸 이것이 일본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게..
아무래도 내가 주변에서 봐왔던 것 혹은 같은 아시아 배경이라 우리네와 닮았으리라 상상하던 것과는 다른 점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양파수프와 소세지, 야채를 끓여 먹고, 라쟈나를 저녁으로 만들어 먹는다.
(이 책에서 알아 들은 음식은 '고등어구이 정식' 뿐.)
이름만 들어선 맛이 전혀 상상되지 않는 케익 이름들을 잘도 외우고, '먹고 싶다'고 한다.
그녀의 묘사에서 세상은 참 느긋하다. ('느긋하다' 라는 말 참 많이 나온다.)
자세하게 늘어놓는 정적인 것들 - 작은 컵,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커다란 창, 먼지 한톨 없는 집안, 느긋하게 마루에 엎드려 케니지를 듣는 여자.
이 모든 것들이 내겐 지나치게 낭만적이다.
다리가 예쁘고 긴 여자, 삐쩍 마른 여자, 혹은 음식이나 집안일을 완벽하게 하는 여자 가 등장하고,
그런 여자를 보며 좋아하는 남자가 나오는게, 너무 여성을 여성적 역할에 가둬 버리는 듯한 시선 같아서 거부감이 느껴졌다.
마치 어릴적 완벽한 외모의 바비 인형을 가지고 커다란 집이 있다고 상상하며,
그 안에서 요리를 하고 소소한 행복을 연기하던 인형 놀이를 닮았다.
가장 이상한 점은 바람 피우는 것이 이상하게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바람 피우는 것 치곤 너무 '느긋하다'.
들킬 것에 대한 염려보다는 새로운 사랑에 열중하거나 집착하는 모습이 더 자연스럽게 보일 정도다.
그것을 알게 되는 상대방의 모습은 거의 나오지 않거나, 분노는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혹은 조용히 이루어 진다.
배우자의 바람에 대응하는 자세가 너무 소극적이고 등장인물마다 그런 소극적인 자세가 일관되게 나온다.
차라리 감정을 폭발시키고, 싸우고, 피바람 나고 그런 것들이 더 현실적인 것 같은데..
이 곳 인물들은 왜 불륜 관계를 그리 쉽게 가지는지, 유부남의 아이를 왜 가지고 싶어 하는지, 왜 그렇게 맹목적인지 이해가 잘 안되었다.
그럴듯한 설명이 있어야 공감이 갈 것 같은데 전혀 다른 세계 사람들 같았다.
게다가 왜들 결혼했는지 모르겠지만 다들 결혼으로 인해 행복한 순간이 거의 없거나 표면적이다.
이것이 그들의 세계인가, 나는 잘 모르는 걸까, 보는 내내 드는 생각이었다.
전체적으로 몽환적이고 파스텔 톤에 결혼에 대한 낭만을 꿈꾸는 소녀 감성이 충만하달까.
그녀의 팬이라면 이 책도 좋아할 것 같다만..
나는 나이가 들어 그런건지 안맞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혹은 내가 너무 촌스러울 수도 있겠다.
결혼과 새로운 사랑, 이혼과 삶의 고민을 다룬다는 면에서 내용은 비슷하지만
질투, 분노, 사랑, 살인까지 나오는 미드 '위기의 주부들' 이 너무나 그리워지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