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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5년 5월
평점 :
요즘도 여자들은 우리의 어떤 행동이, 어떤 말이, 어떤 옷차림이, 우리의 모습 자체가, 우리가 여성이라는 사실 자체가 남자에게 욕망을 불러일으켰으므로 응당 그 욕구를 만족시켜주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 그들에게 우리에 대한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193p
이 내용은 <이슬람 여자들의 숨겨진 욕망>같은 책에나 나오는 게 아니다. 9초마다 한번 매 맞는 여성이 발생하고(187p), 남자들이 현재 배우자나 옛 배우자를 살해하는 것이 매년 1000건이 넘으며 여성의 1/5이 강간 생존자인 미국 여성 얘기다. 숫자로 읽으니 더 와 닿는다. 이런 대규모의 폭력과 살인을 여태 그냥 지나치고 있었다는게 놀랍다. 이 정도면 우리 모두가 나서서 방지책을 찾을만 하지 않은가.
강남 여성 살인 사건에서도 이런 종류의 생각이 읽힌다. 여성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살해했다는 범인은 그 화장실에 드나들던 수많은 남자들은 그냥 보냈다. 자신을 무시하는 여성의 목숨은 자기가 처리해도 된다는 성적 권리 의식. 집안 망신시킬까 누이를 살해하는 이슬람 남자의 생각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여성을) 가르치려 든다.˝ 는 ˝남자들은 내게 발언할 권리를 주지 않고 상황을 정리할 권리도 없다는 믿음에 의거한 행동을 함˝을 뜻한다. 남자가 여자 입을 다물하고 하거나, 입을 열었을 때 위협하거나, 말을 꺼냈다고 해서 때리거나, 영영 침묵시키고자 죽이는 것. 성적 권리 의식을 행사하는 것은 정도의 문제지 범주의 문제가 아니다.
가부장제는 수천년간 이어져 왔기에, 남녀를 떠나 우리 삶에 뼈속 깊이 박혀있다. 여성들 스스로도 남녀가 평등한 삶을 떠올리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연애나 결혼 생활에서의 성 평등은 게이나 레즈비언 사이의 역할을 상상해 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 둘 중 누가 밥을 하고 누가 빨래를 할까? 누가 바깥일을 하고 누가 집안일을 할까? 누가 육아휴직을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들이 너무 문화나 전통을 훼손한다는 생각이 들어 공포스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화와 전통은 무조건 계승해야만 하는 것인가? 그것이 안 좋은 것임이 드러나면 좀 더 합리적인 쪽으로 바꿔나가면서 그것을 지금부터 전통으로 키워나가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나는 늘 나 자신에 대해 궁금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사는데 있어 무엇이 옳은지, 미래의 나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말이다.
페미니즘 관련 책을 읽으면서 나도 미처 몰랐던 내 마음을 훌륭한 글솜씨로 대변해주는 글귀를 읽어내려가면서 후련했다. 그리고 나를 조금씩 찾는 느낌이 든다. 특히 여성으로서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타인의 눈에 비칠 내가 아닌 내가 생각하는 나에게 시선을 돌리게 되었음을 인지한 순간엔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를테면 설명남이 ˝여자는 차에 대해 잘 알면 곤란해˝란 말에 왜 입을 다물었는지, 내가 입은 브래지어가 정말 나 자신을 위한 것인지 하나씩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것이다.
주체적 여성이 되는 것. 여성해방의 시작이자 본질이 아닐까 싶다. 아마 더 많은 여성들에게 이런 느낌을 주는 것이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여러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