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8
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종길 옮김 / 민음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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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오는 느낌의 소설

폭풍의 언덕은 영국의 에밀리 브론테가 일생에 단 한번 낸 소설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세계는 무척 작다. 워더링 하이츠, 드러시크로스 두 집만이 유일한 무대이고 가끔 런던이 언급되는 정도다. 두 집과 그 주변 풍경은 천국처럼 아름다운 반면 등장인물 간의 관계는 무례함과 속임, 무력감, 비난과 욕설이 가득하다.

사실 이 책은 도서관에서 태교삼아 읽으려고 고른 것이었다. 고전 코너에 꽂혀있는 책들 중 유난히 때가 많이 타 있기에 인기가 있어 그런 것이겠거니 생각했다. 조금만 더 눈치가 있었더라면 `폭풍의 언덕`이란 제목만 보고도 내용이 심상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협소한 독서 이력에 영국을 배경으로 여성이 쓴 작품은 오직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뿐이었다. 그래서 이 책도 으레 발랄한 아가씨, 위트와 격있는 대화, 사랑(그것도 폭풍같은)이 등장할 것이라고 넘겨짚고만 것이다.
결국 기대와 달리 책을 읽으면서 처음부터 좋지 않은 예감을 받아야 했고, 끝없는 음울함의 터널을 지나야만 했다. 작가는 중간중간 우울함을 달래주는 법도 없이 끝이 보이지 않는 불안의 구렁텅이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이 책에서 밝은 부분은 캐시와 린튼이 천국을 묘사할때 뿐이었다... 그 부분을 읽을 때의 달콤함은 소설 나머지 어두운 부분에 대비되어 눈부시게 빛났다. 나는 민음사에서 나온 책을 읽었는데, 역자가 주로 시를 번역한 분이었다. 그래서인지 소설도 시처럼 아름답게 번역되어 만족감이 높았다.

햄릿이 그랬듯 소설 끝까지 음울함이 계속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나름 희망적으로 끝이 났다(히스클리프 입장에선 절망으로 끝났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결국 복수는 허무한 것이라는 것을 이들의 일생을 통해 보여준다.

또 하나 이번 독서의 희망적이었던 부분은 ˝둔덕이 진 뗏장 위에 기대게 할 때˝ 라는 표현을 잘 몰라 구글 검색을 했을 때 느꼈다. 검색 결과로 나온 더러운 예제들을 접하고 보니 내가 속한 현실보다는 음울한 고전 속 이야기가 덜 더럽고 덜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희망들 덕에 결과적으로는 이번 독서가 태교에 좋았다고 해석하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심상치 않은 어둠이 가득한 고전. 그럼에도 이 책이 좋은 고전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등장인물들의 짜임새 있는 대화가 계속 긴장감을 유지해주고, 일단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재밌게 술술 읽히기 때문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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